백화점과 지하철 입구가 연결되어 있는 곳. 백화점이 문을 닫은 이후에도 지하철 이용객을 위해 열려 있는 통로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통행인의 왕래가 잦다.
그곳의 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마냥 제멋대로인 모습으로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어리게는 초등학교 학생에서 중학생 또래들. 그 모양새라면 그들은 갈 곳도 없고 급할 것도 없는 머리 염색하고 이어링 한 방랑자다. 소문대로라면 그들은 그곳에서 잠자고 아침이면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그리고 그 날이 그 날인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이란다.
처음엔 놀라웠다. 서울역에서 보았던 노숙하는 어른들의 모습보다 더 가슴이 떨리고 슬펐다.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집이 없는 아이들인가. 아버지는, 어머니는, 학교에서는 이 아이들을 포기했단 말인가. 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가.
벌써 이렇게 궤도 이탈하는 삶에 재미들여진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 친구 애숙이는 겨우 중학생이 되었지만 계속 공부를 할 수 없는 집안 형편을 알고 엄마 몰래 서울행 기차를 탔다.
『식모살이를 해서라도 돈 벌어서 공부할거야』
울먹이면서 했던 이야기가 진짜가 된 거였다.
『그 무서운 서울 바닥에서 어린 것이 어찌 살라고』
아침에서야 딸이 서울로 도망(?)간 사실을 알고 애숙이 엄마는 목놓아 울었다. 무서운 애숙이는 그 무서운 서울을 이겨내었다. 고생이야 끔찍했지만 그녀는 공부를 계속했고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다. 『얘, 그 때 말이다. 나도 수없이 엇길로 갈 생각했단다. 너무 힘들어서』
가끔 그녀의 눈물 섞인 지난날을 들을 때면 힘들고 괴로웠을수록 지금 그녀의 성공은 빛나 보였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가난을 극복하려고, 내 인생을 달리 살아보려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길에서 잠자는 아이들은 극복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들이다. 안되는 걸 되도록 노력해보고 참아도 보고, 그런 다음 기쁨도 얻어보는 일. 그런 걸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은 하루하루가 심드렁해서 담배도 피워보고, 본드도 맡아보고, 슬금슬금 술을 마시고, 여자애들 추근대고, 만만해 보이는 친구 쥐어박아 돈도 뺏어보고, 그렇게 그렇게 재미를 얻어 본 아이들은 누구의 말도 귓등으로 흘리게 된다. 학교도 부모도 시시해 보일 뿐이다. 『우리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 그래요』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 친구의 친구를 추적하면 맨 마지막에 남는 아이는 누구인가. 그 아이가 내 아이고 우리들의 아이다. 오늘도 나는 「우리는 모두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쓰느라고 끙끙대면서 아이들에게 한 자락 꿈을 드리워 줄 힘도 없는 아동문학가라는 이름이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다.
자기위주라는 안경을 쓰고, 내 눈으로 보이는 것만 알 뿐인 턱없이 부족한 시야로 무엇을 하나 하겠다고! 제 할 일을 잃어버린 어두운 아이들 모습을 보며 어른인 나를 자꾸만 벌주고 싶어진다.
청소년과 함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