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 절이 있는 그 마을은 집단시설로 모여있는 음식점들과 넓은 주차장, 여관과 노래방들로 자리잡고 있었다.
절을 오르는 콘크리트 길과 너무 큰 부속건물들 때문에 고색창연한 대웅전이 파묻혀 보이는 아쉬움을 접으면 산의 청청한 숲이며 물 흐르는 계곡이 드물게 좋은 곳이었다. 전국 어느 명승지엘 가도 똑같은 물건을 파는 가게를 건성으로 지나가다 그 아이를 본 것은 주차장 입구 공중전화 옆이었다.
요란한 옷을 입고 캉캉 춤을 추는 여자들의 모습이 프린트된 나팔꽃 모양의 부채와 요술공과 요요, 전지의 힘으로 성마르게 때똑거리는 오뚜기 인형 따위를 상자 위에 놓고 파는 좌판이 있는걸 언뜻 봤다. 여남은 살 되어보이는 꼬마가 상자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게 그 좌판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약해 보이는 팔과 다리는 햇볕에 타서 까맣게 반들반들 했고 야구모자를 눌러 쓴 머리모습은 작고 예뻤다. 체격은 왜소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얘, 점심 먹었니? 오라, 니가 이 물건의 주인이구나』 아이는 차돌같은 까만 눈으로 나를 봤다. 주먹만한 것이 구르면서 커다랗게 벌어지는 알록달록한 요술공을 만지며 사겠다고 하니까 아이는 『개시예요. 싸게 드릴께요』한다. 『매일 나오는 거니? 친구들이랑 놀러가고 싶지는 않니?』 『비오는 날은 장사 안해요. 전 친구 없어요, 이따가 저기 가게 형이란 놀면 돼요』 아이는 묻는 말에 또박또박 대답한다.
『아줌마는 언제 오셨어요? 여기 뭐가 볼 게 있는데요?』 아이는 경계를 풀고 내게 묻는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참 좋은 곳이야』 『부처님이 저 산 밑에 절을 지으라고 하셔서 세운 절이래요. 할머니가 그랬어요』 『할머니가 계시는구나. 부모님은?』 『엄만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요? 필요없어요. 어쩌다 집에 들어오면 난리나 치고 가는데요 뭘. 한번만 더 할머니한테 못되게 굴면 그때는 내가 안 참아요』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아이의 입은 분노로 앙다물어졌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갖게 되는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는 죄가 없다. 나는 어두워진 아이의 얼굴을 더 볼 수 가 없어 좌판 위의 부채를 집어 부치는 척했다. 『아줌마는 왜 혼자 왔어요? 혹시 가출하신 거 아니예요?』
아이는 제 말이 심했다 싶었는지 히히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저어기 「문경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도 대전에서 왔다는데 아무래도 집 나온 것 같애요. 멍청할 때가 많거든요』 아이는 나보다 한수 위가 분명하다.
가출, 이혼, 고독이라는 단어를 예사로이 사용하는 아이, 너무 빨리 어른들의 어두은 면을 익히고 있는 아이는 문제 가정에서 살고 있지만 문제 아동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제 환경에 순응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아이일 뿐이다.
돈을 모아서 뜨내기 장사말고 작은 가게를 갖고 싶다는 아이의 꿈이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 측은하고 그 꿈이 더디 이루어질 것을 예감하기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 게 요술공처럼 크게 빨리 그런 행운은 오지 않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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