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도소, 이곳도 직접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머리 속 영화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현실의 대전교도소는 영화 이상의 드라마틱한 삶을 엮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곳에서의 생활을 제멋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곤 생각이 뻗치는 대로 그려본다. 자신이 봤던 영화나 소설 속의 한 장면씩을 삽입해가며…. 그래서 감옥은, 우리 각자 모두에게 있는 감옥은 늘 현실이 아니라 몽상이 된다.
똑같은 크기의 방, 똑같은 푸른색의 수의, 표정없는 재소자들, 사소한 다툼들, 그 사소함이 부르는 너무도 무거운 음모들…. 교도소는 그런 식으로 실재와 괴리돼 대다수 사람들의 뇌리 한 구석에 침잠해있다.
2000여명이 넘게 생활하고 있는 대전교도소, 이 가운데 무기수만 200여명. 그 수치만으로도 삶의 무거움이 충분히 감지되는 이 곳에 천주교 신자들만이 함께 어울려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 「천주교 사동」이 있다.
기도 이어지는 곳
공칙 명칭으로는 「천주교 생활관」. 80여명의 신자들이 이 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삶을 꾸려가고 있다. 한 층 아홉 개의 방을 나눠 쓰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항상 「형제」라고 부른다. 「형제」라는 말이 이 곳에서만큼 진실되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곳이 있을까.
「천주교 사동」의 신자들과 교도소 내 공장 사동으로 출역을 하는 신자재소자까지 합해 170여명의 신자들이 꾸려가고 있는 공동체가 대전교도소 「대정공소」다. 교도소가 있는 지명을 딴 대정공소에도 공소 회장이 있고 공소를 신나게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형제들끼리 함께 삶을 나누고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올해로 5년째 공소 회장일을 맡아 오고 있는 한상준(가명·40·엘리지오)씨는 신자들의 신앙생활 자랑이 여느 회장 못지 않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 종교생활관에 모여 봉헌하는 미사와는 별도로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열리는 레지오 모임도 한 회장의 자랑이다. 지난 1995년 1월에 설립돼 꾸준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는 대정공소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지난해에만 한해동안 45명에게 입교를 권면해 28명이 세례를 받도록 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재소자의 이동이 잦은데다 마음마저 닫혀 있는 이들이 많은 현실이고 보면 적잖은 공이 들었음을 짐작케 하는 면면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부터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 셀 기도모임도 꾸준히 이어지며 웬만한 공소 이상의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다.
천주교 사동의 하루는 일반재소자 사동들보다 빨리 시작된다. 기상 시간인 6시30분보다 30여분 빨리 일어난 천주교 사동의 형제들은 여느 사동이 아직 새벽잠의 달콤함에 빠져 있을 때 아침기도로 하루를 연다. 「천주교 생활관」의 방들이 모두 잠겨져 있어 아홉 개의 방에서 생활하는 이들 모두가 함께 하는 모임은 할 수 없지만 방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하느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신자들의 하루는 저마다의 일하는 공장에서, 하루를 마치고 함께 하는 저녁 자리에서, 취침 전까지 이어지며 소 성무일도를 바치는 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진다.
『이제는 자신이나 형제들과의 대화보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에 훨씬 익숙해진 느낌입니다』 늘 얼굴에서 웃음이 넘치는 공소 총무 박주성(가명·바오르·40)씨의 말은 삶의 즐거움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들의 넘치는 신앙생활의 힘은 이들 가운데 「신독」하는 삶의 기쁨을 만끽하며 구도자의 길을 걸으려고 결심하는 이들까지 나오게 한다. 출소 후 구도의 길을 걸을 마음을 밝히고 있는 이상규(가명·삼손·32)씨, 앳돼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기도는 보는 이마저 감동케 하기 충분하다.
영적 샘 ‘가톨릭신문'
이들에게 외부로부터 다가오는 소식은 그것이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 하더라도 갇힌 자신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탈출구가 된다. 매주 사동으로 배달되는 50여부의 가톨릭신문을 비롯한 교회 소식지들은 이들의 마음을 살찌우고 풍요롭게 하는 영적 샘이다.
한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돌아갈 수가 없어 몇 사람이 돌려가며 봐야하는 신문은 교도소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세상 속의 생생한 교회를 맛보게 하는 창이 된다.
『출역하는 공장에까지 들고 다니며 신문을 읽는 이들이 있어요. 보내주시는 분들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늘 감사하는 마음을 새기며 살고 있답니다』
신문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메워줄 길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새로운 오아시스를 발견한 양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지기도 한다. 이들에게 오아시스란 다름 아닌 올바른 성무일도 방법, 소공동체 활동법, 외부 신자들의 다양한 레지오 활동 모습 등 어쩌면 바깥 세상에서는 너무도 평범한 것들이다.
『밖에 있었으면 너무도 쉬웠을 일이란 걸 알아요. 그래서 외부 신자들의 조그만 관심과 사랑이 생각지도 못한 큰 힘이 되는 데가 이곳입니다』
습작해오던 자신의 시가 실린 가톨릭신문을 늘 지니고 다니는 김태호(가명·빈첸시오)씨에게 신문은 세상과 만나는 장이다. 그러면서도 보다 많은 재소자들이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돼 있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편지 한 장으로, 신문 한 부로 저희들의 세상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답니다』
짤막한 김씨의 한 마디가 그 어느 곳에서 보다 큰 울림으로 전해져왔다.
작은 하느님나라를 체험케 하는 천주교 사동은 그래서 더욱 커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을 한번이라도 찾았던 이들은 어쩌면 이 곳에서 생활하는 이들보다 많은 안타까움을 지니고 있는 지 모른다. 자신들만이 알고 있는 재소자들의 삶을 나눌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마지막 선교지
대전교구 교정사목후원회 김계순(비비안나·52) 회장은 『천진한 아이처럼 하느님을 심어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재소자들은 이미 흉악범이 아닌 하느님을 알아 가는 어린아이일 뿐』라고 강조한다. 교정사목후원회 회원 등 재소자들을 돕는 이들의 하나같은 바람은 사회에서도 버려진 이들을 또 한번 버리는 무관심을 이 사회에서 떨어냈으면 하는 것이다.
대전교구 교정사목 담당 이덕길 신부는 『「만남」의 단절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형제들이 있는 교도소가 마지막 선교지』라고 강조하고 『지속적인 사랑이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묘약』이라며 관심을 호소했다.
침묵이 일상화된 교도소. 이 고통의 침묵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사랑임을 천주교 사동의 형제들은 몸소 보여준다. 마음을 열지 않고, 과거를 열지 않고, 입마저 열지 않는, 침묵의 거대한 벽을 깨뜨리는 것은 느지감치 깨달은 하느님의 사랑임을.
자신에 갇혀 가는 삶, 그 삶을 넘어 가족에게로, 오래 전 벗에게로, 그리고 본원적인 나에게로 다가가길 꿈꾸는 이들에게 탈출구인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은 너무도 작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커지는 사랑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로 향하는 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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