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방학은 엄마들의 개학이라고 했던가. 이미 방학 전에 아이와 엄마는 크고 작은 계획들을 세운다. 치과에서 치열 교정을 하겠다, 태권도로 몸을 다지겠다, 살을 빼서 예뻐지겠다, 영어공부를 시작하겠다. 어느 누구도 늦잠 자고 일어나 리모콘으로 텔레비전 조종하고 방학책도 없으니 실컷 놀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어떤 면으로 방학은 좀 더 자율적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에겐 사탕발림의 후식일지도 모를 일이다.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좥여름방학 독서교실좦에 참석한 아이들도 자기가 원해서 왔다는 아이보다 엄마의 계획대로 왔다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나는 독서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독서감상문은 안 써도 좋으니까 학습만화에서부터 동시 동화 소설까지 골고루 읽어 국어 교과서에서 얻을 수 없는 재미와 감동에 빠져 보라고 한다.
초등하교 4~6학년 어린이의 한 학기 평균 독서량은 29권(98년 통계). 개중에는 대여섯권에도 못 미치는 아이도 있고 상당한 수준의 책을 소화해내는 아이도 있다. 대체로 책읽기에 맛들이지 못한 아이들에겐 독서감상문이라는 과제는 책읽기에 불편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요즘의 어린이 글쓰기는 어떤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꿰어 맞추는 글을 쓰고 있다. 독서감상문도 예외는 아니다. 독서가 주는 재미와 기쁨은 책을 읽고 난 뒤에 오는 어떤 느낌을 아끼고 음미하는 데에 있다. 그 진한 느낌을 흘리지 말고 자발적으로 일기장 끝에 기록해 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책을 읽는 일이 컴퓨터 게임만큼 혼을 빼는 재미는 없어도 은근히 좋아지는 일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 그것은 엄마의 몫이다.
미취학 때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눈과 귀로 하는 그림보기(읽기)에서, 글을 깨우쳐 스스로 읽게 되는 시기에는 재미있고 함축된 저학년용의 책으로 연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독서과정이다. 그래서인지 저학년용의 도서는 그나마 엄마의 관심과 성화 때문에 팔리는 책에 들어간다고 한다.
좋은 친구와 영양있는 음식을 선택하는 일 만큼 좋은 책은 선택하고 읽도록 도와주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아이 손을 잡고 책방 나들이를 하고 읽을거리에 관심을 가져주는 일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그다음 책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보탬이 될 것인가는 아이들에게 맡기면 된다. 그건 아이들의 차지다. 『나는 아무래도 글재주가 없나 봐요』그런 말에는 솔직히 씁쓸하다. 손재주가 있듯이 글재주라는 것이 있어 재주가 있으면 글을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 『작가가 되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어요?』 이런 질문은 당혹스럽다.
책을 읽으면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내 말에 물어온 말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은 책읽기 싫으면 어떻게 하세요?』 아이들은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
『책 읽기 싫을 때? 그 땐 책을 탁 덮으면 되지. 책은 그렇게 할 수 있어 좋은 거란다』 더운 여름날, 지루했던 아이들은 책을 덮을 자세가 되어 싱싱해진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진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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