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현양의 길
한국교회는 탄압과 박해에 목숨으로 신앙을 증거했던 순교의 전통을 존중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순교자 현양운동은 한국적 신심운동으로 정착, 발전하고 있다.교회는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는 운동을 교회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순교정신의 근거가 되었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신앙인 본연의 자세로 혼란시기의 신자들을 일치로 이끌었다. 이런 노력은 구체적으로 '한국순교자현양회' 의 재건과 새남터 순교자기념탑 건립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본받을 자세
오늘날 순교자들에게서 본받고자 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첫째, 하느님 신앙과 하느님에 대해 알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성서 읽기를 들 수 있다. 순교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느님을 알기 위해 성서 뿐 아니라 주요 교리서들을 한글로 번역 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미 120여 종에 이르는 교회 책자 가운데 83종이 한글로 번역돼 읽혀졌다. 이 책들 가운데 특히 많이 읽혔던 것은 '성경직해' 로 신약성서 사복음서의 약 30.68%를 차지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주일과 축일용 성서였다.
둘째, 하느님을 창조주이자 사랑으로 이해한데서 비롯한 자신과 이웃, 곧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이의 실천이다.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대군대부(大君大父)로 보았고, 하느님 외의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고 보았다. 이런 인식은 모든 인간은 사랑으로 창조돼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져 사랑의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으로 공유됐다.
셋째, 하느님을 앎을 통해 세속 권력을 상대화시킴으로써 복음을 신분해방.인간해방이라는 사회적 복음으로 이해하고 이 해방운동에 자신을 일치시켰다.
넷째, 복음이해를 기초로 박해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다. 이 대항은 곧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진리를 수호하여 평화를 이루고자하는 결의였다.
끝으로 그리스도가 가르친 신.망.애 삼덕(三德)을 생활의 주요한 덕으로 추구하고자 했다. 순교의 길은 삼덕의 완성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 인간해방과 완성의 길이었고, 하느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었다.
순교자들 삶 공유
순교는 죽음에 직면해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인간 자유를 선언하는 행위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신앙과 진리를 가장 극적으로 증거하는 행위이며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인간이 다른 인격적 존재를 존경하는 행위는 항상 사랑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순교는 지극한 사랑의 행위다.
오늘날은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박해를 받는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일상 가운데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에는 많은 측면의 내적 장애물이 있다. 이 시대는 어느 면에서 회의주의, 허무주의가 지배적이고 근원적인 전제들이다. 개인과 가정, 인류의 삶을 이끌어 나가야 할 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틈새에 우리의 삶의 자리가 보인다.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 그 자체로 이해했던 순교자들의 신앙의 전통이 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해체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돋보이는 것이 사랑이다.
순교자 현양의 길은 사랑의 완성에로 불리움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현양을 위해서는 이 사랑의 길을 먼저 살다간 순교자들의 삶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삶을 공유하고자 하는 길은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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