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습학원이 있는 건물 밖 공중전화는 아이들로 복작인다. 전화카드를 꺼내들고 「나도 전화하려고 해」하는 자세로 기다리고 서 있어도 그 여자 아이는 전화가 길다. 아예 등을 돌리고 이쪽은 안보겠다는 모습으로 통화하고 있다.
『야, 야! 너 내 손에 죽을 줄 알어!』
나는 아이의 말이 너무 거칠고 큰 소리여서 눈이 동그래진다.
『벼엉신, 진즉 그럴 것이지』
이번엔 싸울 것 같던 아까의 말투와 사뭇 다른 눅어진 목소리다.
전화걸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갈까 말까 생각하고 있는데 『이 말코! 그만 끊어!』
머리를 삐삐 모양으로 묶은 아이가 어디선가 뛰어와 전화 걸고 있는 제 친구 종아리를 무릎으로 박는다. 야! 야! 그들은 떠들며 횡단보도를 건너 간다. 나는 전화 거는 것도 잊어버린 채 얼이 빠져서 서 있었다.
저 아이들은 일상의 대화가 욕이로구나. 상소리같은, 저들끼리의 암호같은 단어를 주고 받고 거리낌없이 사용해야 동류의식을 느끼고 「따」 당하지 않는 것인가 보구나. 내가 알기론 욕은 무서운 것이었다. 부끄러운 것이었다. 매를 맞는 것보다 욕을 들으면 더 아프게 귀와 가슴에 꽂히는 것이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일기장에 『아침부터 그 ○ 때문에 기분이 잡쳤다』라고 적혀있는 걸 담임 선생님이 보았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건 그대로 옮길 수 없어서다) 그가 누구였겠느냐는 물음에 「친구? 언니, 동생?」
나의 답에 내 친구는 동그라미 속에 지칭된 사람은 「엄마」라고 말해주어서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날 아침, 아이는 늦잠은 자다가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거나, 무엇인가 요구한 것에 대한 거절에다 꾸중까지 들었기 때문일 거라고 이해하는 척 관대해야 하는가. 아무래도 그래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일기는 너무 솔직한(?) 내용이지만 두 번 다시 쓰지 말아야 할 일기이다.
학교에 비치된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수업시간 시작하기 전 아이들의 목소리.
『엄마, 내 체육복. 정신 나갔어! 몰라』
『아유 엄만 뭘 하는 거야. 그걸 잊어버리면 어떡해!』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한 탓을 모두 엄마에게 돌리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엄마는 욕을 해도 되고, 막된 말을 해도 좋은 엄마 스스로 낮춰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고 가르치는 것보다, 고운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더 시급한 일이 되었다. 가깝고 친한 사이에 통용되는 욕. 정도가 심할수록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는 그들의 어긋나게 맺어지는 우정을 바로 잡을 순 없을까? 사실 아이들은 또래의 욕에 익숙해지며 생활한다. 어쩌면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듣게 되는 어른들만 놀라고 실망할 뿐이다.
게정부리는 행동과 말투를 가끔은 흉내내고 싶은 아이들의 숨겨진 모방심리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지극히 교과서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반듯한 고운 말을 하는 얼굴은 당연히 그 아이 전부를 빛나게 한다는 것. 그들이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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