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힘으로 버텨왔던 3년이라는 시간이 어느새 훌쩍 흘러버렸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을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과거의 일이 돼버렸다. 「미혼모」라는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택한 것, 후회 없는 선택이다. 두 살배기 아들을 볼 때마다 가끔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젠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게 키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에 위치한 「성심의 어미니집」에서 「왕언니」로 살고있는 김서연(가명·29·예비신자)씨. 3년 전 불룩한 배를 안고 이곳으로 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수녀들과 함께 성심의 어머니집을 꾸려가는 한 가족이 됐다.
지금처럼 자신감을 갖고서 열심한 마음으로 살기까지 김씨에게 용기를 준 은인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친가족처럼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고 있는 이곳 수녀들, 낙태도 살인이라며 죄의식을 일깨워준 산부인과 의사, 그녀가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배려해준 간호사, 그리고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성심의 어머니집 식구들….
임신 사실을 알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의 말은 잊을 수가 없다.
3개월이 지난 아기를 낙태했을 때 아기를 들어내면 1시간은 울다가 죽는다는 것, 그리고 비록 뱃 속에 있지만 낙태는 살인행위라는 것. 많은 갈등을 했고 수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아기를 낳으려니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뱃 속에서 지우려니 평생 죄를 짓고 사는 것 같고….
그러나 결국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점차 배는 불러오는데 마땅히 아기를 낳을 곳이 없었다. 그 때 그녀를 인도해준 사람, 바로 병원의 간호사였다. 미혼모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챈 그 간호사가 이곳 성심의 어머니집을 일러준 것이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 간호사는 행여나 그녀가 다른 맘을 가질까 걱정하며 진심으로 그녀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줬다.
『애기를 낳을 수 있고 이렇게 건강하게 키우며 제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만약 이 곳이 없었더라면…』
다수의 미혼모들은 출산 후 아기를 입양기관으로 보낸다. 경제적인 여력도 없고 아기를 키울 수 있는 형편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아들을 키우기로 결심했다. 행여나 아들이 훗날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힘들어할까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늘 기도하며 곁에서 아들을 지키기로 했다.
김씨는 요즘 성심의 어머니집에서 수녀들만큼이나 바쁜 하루일과를 보내고 있다. 공부를 하기 전에는 집안 일 돌보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입양원 가서 예전에 일했던 실력을 되살려 아이들의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보육교사과정을 공부하느라 더 바쁘다.
또 몇 달전부터 단순한 재봉기술을 익혀 집에서 앞치마를 만들고 있다. 작은 소일거리지만 가족들의 용돈을 마련해보자는 수녀님의 제의로 김씨가 도맡아 만들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없고 교구 사회복지회의 지원과 은인들의 도움, 수녀들의 변통으로 꾸려지다보니 용돈을 챙겨줄 만큼 넉넉한 생활은 안된다.
김씨는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애기를 낳은 뒤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자활의 장을 만들고 싶어하는 수녀님의 뜻을 깊이 헤아려 도움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함께 하기로 했다.
『서연씨가 자기를 내놓고서 이렇게 도움을 주고있어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집 식구들이 많은 힘을 얻는것 같아요』
성심 어머니의집을 이끌어가는 신 가우디아 수녀는 도움을 주는 것 보다 오히려 김씨에게 받는 것이 많다며 이렇게 말한다.
화려한 장미빛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하루 하루 생활에 충실하려는 김씨.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오는 4월 15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개신교를 믿으며 살아왔던 그녀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그날이다. 같은 뿌리에서 내려온 종교가 왜 그렇게 갈라졌는지 알고 싶기도 하고 어머니의 믿음을 이해하고 싶기도 해서이다.
김씨는 올해 부활을 남다르게 맞이할 것 같다. 가톨릭 전례 속에서 맞는 부활도 그렇고 사람들의 편견을 벗고 새 세상을 사는 부활의 마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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