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조카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무엇엔가 열중하고 있다. 뭘 하냐고 기웃거리니까 아이의 엄마가 대신 대답해준다.
『담임 선생님께 편지 쓴다나봐요, 선생님께 편지쓰기를 숙제로 받았구나』
『아니예요 고모. 우리 선생님 지금 굉장히 불행해. 내가 위로해 드려야 하거든』 부끄러워하는 아이의 허락을 받은 편지를 일부 공개한다.
『선생님, 우리 식구들은 양평도로에 다녀왔어요. 갈 때 휴게소에서 쉬었는데 호도과자를 팔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내 고향 천안은 호도과자가 유명해. 그래서 호도과자를 좋아한단다」라고 하셨던 생각이 나고, 선생님 생각이 자꾸 났어요. 선생님께 드리고 싶다고 엄마께 말했더니 날씨가 더워서 상할 것이라 안된다고 하셨어요.
선생님, 호도과자를 보고 선생님 생각이 났는데 선생님은 저를 생각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편지는 생각보다 길었다.
조카 선생님의 남편은 병으로 돌아가신 지가 2개월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선생님은 얼마나 불행하시겠냐고 자기가 편지로 위로해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편지는 이번 방학에 아버지가 허락하신 롤러브레이드를 탈 것이라고 했고, 선생님 건강하시라고 그리고 많이 사랑한다고 끝을 맺었다.
나는 가슴 한 쪽이 찡해 왔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
일년동안 수업을 받고 그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초등학교 과정을 거쳐온 우리는 모두 안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을 찾아 서로가 변해버린 모습에서도 또렷하게 일치를 보는 지난 시절의 기억들.
그들의 웃고 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을 정지시킬 수 있는 기억의 큰 힘을 느끼게 된다.
선생님의 속을 많이 상하게 했거나 반대로 사랑과 관심을 받았거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만큼 자신의 삶에 인화된 추억이 있겠는가? 숱하게 많은 선생님들과의 인연이 있었다고 해도.
내가 초등학교 현직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인데, 초·중·고·대학의 순서가 임금이나 사회적 지위의 순서가 아니었음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들 교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봉투 따위 아예 거들떠보지 않도록 학부형들이 업신여기지 않도록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선생님의 당당한 모습을 보는 교육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여리고 귀한 싹 같은 어린 학생들에게 크고 작은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느라고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선생님. 어린이와 생활하다보니 늙어질 기회를 놓쳐버린 선생님을 뵙는 것도 특별한 일이 되리라. 조카아이의 담임은 좋은 선생님이신 것 같다. 조카아이의 편지가 선생님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불현듯 나도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중학교 때 담임을 맡으셨고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J수녀님. 몇 년전, 내가 허우적거렸을 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던 S선생님. 또 고마운 H선생님. P선생님.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분들은 내 속 깊숙이 있는 부분까지 명경 보듯 하시리라 믿어지는 선생님들이시다.
선생님,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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