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은 올해 창간 74주년기념호를 기해 「생명의 문화 건설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우리앞에 도전으로 놓여있는 생명 윤리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기 위해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기획으로 연재한다.
생명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속해 있지 않은 것이며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명의 존엄성이 나오며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임의대로 생명을 훼손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막중한 죄를 짓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명윤리와 관련된 전통적인 영역들은 물론 생명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윤리문제들을 심사숙고함으로써 참된 생명 문화의 건설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생명의 기원은 바로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느님에게 있으며 따라서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 우리 사회와 국가, 세계 안에 만연해 있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인 도전 앞에서 「생명의 문화」 건설을 부르짖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오늘날 교회와 세계가 직면한 생명 가치의 구현을 위해 매우 민감하게 응답하고 있다.
무너지는 생명의 존엄성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처럼 신성한 생명이 수없이 침해받는 것을 목격해왔다. 인간이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됐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임의대로 빼앗는 전쟁이 끊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수십 수백만의 존엄한 생명을 집단적으로 앗아가는 집단학살의 비극을 목도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는 여기에 더해 소위 「생명공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한 더욱 근본적인 윤리적 혼란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 행위를 보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지금까지의 어떤 훼손보다도 더욱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게놈지도, 유전자 복제 등 생명과학의 발달에 따라 속속 파헤쳐지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인간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는 이제 창조주의 영역까지 넘보면서 급기야는 인간을 복제한다는 허황하고 사악한 실험까지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낙태, 사형, 안락사, 살인, 자살 등등 생명권과 관련된 전통적인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으며 개인주의, 자유주의, 물질주의, 쾌락주의 등의 영향으로 인해 점점 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그 시초부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을 오직 하느님께로만 돌려야 한다고 가르쳐온 교회는 오늘날 생명 가치의 훼손을 깊이 우려하고 여러 문헌을 통해 인류에게 그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소명 중의 하나는 바로 이처럼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의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하느님의 창조 질서대로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며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죽음의 문화」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인위적인 생명 조작
오늘날 생명윤리 영역에서 가장 첨예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는 바로 생명공학이라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한 인위적인 생명 조작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많은 주제들이 포함된다. 즉 불임수술, 인공피임, 체외수정, 태아감별, 대리모 출산 등의 문제가 그것들이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급진전하고 있는 유전자 연구에 따른 생명복제의 문제는 생명 문제 영역에서 그야말로 핫 이슈가 되고 있다. 복제양 돌리에 이어 지난해말부터는 인간 복제를 시도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졌다.
불임수술이나 피임은 너무나 널리 확산돼 있고 이미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이러한 시술을 하고 있다.
혈육에 대한 전통적인 애착은 소위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키는 체외수정을 시술하게 하고 나아가 대리모 출산까지도 감행하게 한다. 아직도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은 태아감별을 통해 낙태로 이어진다.
인간복제
1997년 최초의 생명 복제 성공으로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다. 이후 쥐, 소, 원숭이 등 생명체 복제 실험의 영역이 넓혀져 왔으며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됨으로써 생명체 복제의 가능성은 더욱 확장됐다.
그러면 동물의 복제가 이처럼 일반화됨에도 불구하고 인간 복제는 왜 금지돼야만 하는가. 그것은 결혼과 가정제도의 파괴, 인간의 존엄성 파괴라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 동물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만들어졌다. 한 의대 연구팀에 의해 복제 송아지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돌리 탄생 2년 반만의 일이다.
생명체 복제는 인류에게 부족한 식량을 풍성하게 제공하고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간 배아를 복제하고 조작하며 실험하는 그 과정에서 하나의 생명체이자 인격체인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할 것인데 그것은 곧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송두리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낙태
교회는 현대사회의 변화된 상황과 가치관에도 불구하고 어떤 형태의 낙태도 단호하게 배격하며 이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낙태에 있어서 만큼은 가톨릭 교회는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두고 있지 않다.
낙태는 여권의 하나 또는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되는 경향과 함께 저개발국의 인구 조절 정책에 힘입어 오늘날 가장 만연한 반생명적인 행태가 되어왔다. 한국에서만도 매년 150여만건이 넘는 엄청난 시술로 인해 가장 무력한 존재의 생명권이 침해받아왔다.
한국교회는 이에 따라 낙태를 조장하는 악법의 하나로 간주되는 모자보건법의 폐지를 일찍부터 주장해왔으며 최근 들어서 광범위한 서명운동을 거쳐 국회에 폐지를 청원해둔 상태이다.
또 낙태와 관련해 더욱 교묘한 낙태 방법들이 고안되고 있다. 이른바 「RU-486」이라는 이름으로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는 낙태약은 오늘날 그 간편성으로 인해 낙태를 더욱 만연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한편 인공수정을 위해 보관되는 냉동수정란의 폐기나 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한 실험과정에서 배아세포들을 폐기하는 것 역시 교회는 엄연한 인간 생명을 살해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수정란의 폐기나 배아 복제 등의 실험이 다반사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윤리적인 지침과 규제가 시급한 상황이다.
사형제도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사형제도를 인간 사회의 가장 야만적인 제도로 간주한다.
인간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도 속해 있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께만 속해있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생각해볼 때 어떤 경우라도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인간 생명은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박탈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범죄예방이라는 미명 하에 시행되고 있는 사형제도는 따라서 하루속히 폐지돼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입장이다. 더욱이 사형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 역시 여러 가지 연구에 의해 오류임이 밝혀지고 있다.
1999년말 현재 사형제도 폐지 국가는 전세계적으로 106개국이며 존치국은 89개국 뿐이다. 그 가운데 30여개국은 제도상으로는 사형제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사형제도를 아직 폐지하지 않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다. 최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해 각 종단의 대표자들은 범종교연대를 결성해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국민적인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락사
윤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안락사는 어떤 형태의 것일지라도, 환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불법이자 살인이다. 자살은 물론 자살의 협력 또는 무고한 자에 대한 살인도 이에 포함된다. 교회는 안락사를 절대적으로 단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윤리학자와 법학자, 의사들도 이를 배격한다.
안락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고 소위 「인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해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며 생명의 포기는 하느님이 설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환자의 조건으로 보아 이미 필요하지 않은 것을 보이는 특정 의료행위를 그만두기로 하는 것은 생명의 포기나 안락사와는 구별된다.
뇌사와 장기기증
교회는 인간의 죽음의 순간에 대한 판정 기준이 뇌사라고 확정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뇌 기능에 의거한 죽음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93년 뇌사에 의한 사망 기준을 선포했고 가톨릭 계열의 종합 병원에서도 뇌사자의 장기를 이용한 장기이식 수술을 해오고 있음을 볼 때 교회는 뇌사를 죽음의 기준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여기에서 분명히 우려할 만한 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뇌사 판정에 있어서 고도의 정확성이 보장돼야 하며 뇌사 판정에 대한 연구가 장기이식의 용이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제도와 가정의 붕괴
혼인이라는 신성한 계약을 통해 구성되는 가정은 생명의 원천이다. 남녀간의 결합을 통해 인간은 사랑과 약속으로 가득한 가정을 형성하게 되고 가정이 건실하게 유지될 때 그 사회와 국가는 올바르게 발전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생명 가치의 보루로서 가정과 결혼제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때로는 가정의 존속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오늘날 가정의 위기는 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관의 변화에서 그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혼전 성 관계가 당연시되고 혼인하지 않거나 또는 혼인하더라도 자녀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 이혼이 늘어나면서 편부 편모 슬하에서 참다운 사랑을 받으며 크지 못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