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본문이 엘로힘계 전승인 출애굽기 18장에서는 모세의 가족들과 미디안의 사제인 그의 장인이 등장한다. 특이한 것은 모세의 장인이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를 주관하고 그 음식을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느님 앞에서 먹는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미디안족과 이스라엘인들 사이의 종교적 관련성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이튿날 모세는 장인의 충고에 따라 최초의 민주주의의 실현이라 할 수 있는 권력분산 즉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백성을 다스리게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전승이 다른 민수기와 신명기에서는 상당히 달리 묘사된다.
민수기: 『어찌하여 이 종에게 이런 꼴을 보이십니까? 제가 얼마나 당신의 눈밖에 났으면, 이 백성을 모두 저에게 지워 주시는 겁니까? 이 백성이 모두 제 뱃속에서 생겼습니까? 제가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이 백성을 품고 선조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이 많은 백성을 저 혼자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진정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백성을 지도해온 장로 칠십 명과 함께 나에게로 오너라. 그들을 데리고 만남의 장막으로 와서 서 있어라. 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리라. 그리고 너에게 내려주었던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그들이 백성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나누어져서 너 혼자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에 모세는 백성에게 나아가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 가운데서 나이 많은 장로 칠십 명을 불러모아 장막 주위에 둘러 세운다. 야훼께서는 구름 속으로 내려오시어 모세와 말씀하신 다음 그에게 내리셨던 영을 칠십 장로들에게도 나누어주신다. (민수 11, 11~30 참조)
신명기: 『그때 나는 너희에게 말했다. 「나 혼자서는 너희 모두를 맡을 수 없다. 너희는 너희의 하느님 야훼께서 불어나게 하시어 오늘날 하늘의 별처럼 많아졌다. 너희 가운데 귀찮고 시끄러운 일이 생기고 시비가 벌어지게 되면, 나 혼자서는 너희를 맡을 수 없으니, 각 지파에서 지혜로우며 슬기롭고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을 뽑아라. 내가 그들을 너희의 지도자로 세워주리라」 그러자 너희는 나의 제안을 좋다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너희 가운데서 지혜로우며 슬기롭고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들을 골라 너희를 다스리는 지도자로 세워 주었고, 천 명, 백 명, 오십 명을 거느리는 장교와 열 명을 거느리는 하사관으로, 또 너희 각 지파의 공무원으로 임명해 주었던 것이다』(신명 1, 9~18)
모세를 빼고는 출애굽 사건이 이야기될 수 없지만, 위에서도 보았듯이 전승에 따라 세부 사건의 의미나 모세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다르다. 이 기회에 각 전승에 따른 모세의 역할을 성서학계의 석학 G. 폰 라트의 견해에 따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야훼계 전승: 모세가 맡은 역할이 비교적 미미하다. 모든 일을 주관하고 이루는 주체는 오로지 야훼 하느님 한 분이시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은 영감(靈感)받은 목자(牧者)에 불과하다. 그래서 야훼계 전승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뜻을 알려준 뒤 야훼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갈대바다의 기적을 그들과 함께 구경만 한다(출애 14, 13~14 참조).
엘로힘계 전승: 야훼계 전승에 비해 모세의 역할이 좀더 강조된다. 모세는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라는 사명을 받고(출애 3,10.12), 마술사처럼 지팡이로 이러저러한 기적을 행하기도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세는 아론이라는 대변자를 둔 창조적 주도자이자(출애 4, 16) 자신의 카리스마를 70인 장로에게 나누어 주는 행동하는 예언자이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백성 대신 저주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제이기도 하다.
신명기계 전승: 모세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명기계 전승에서 모세는 모든 예언자들의 전형(典型)이다. 『나는 네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키리라. 내가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주리니, 그는 나에게서 지시받은 것을 그대로 다 일러 줄 것이다』(신명 18, 18). 또한 신명기계 전승을 보면 야훼께서는 오직 모세를 통해서만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다. 모세는 수난 당하는 중개자이며, 땅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자 순종의 모범이다.
사제계 전승: 사제계 전승의 큰 특징은 모세의 모든 활동을 시나이 계시 사건과 관련시켜 설명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기적가나 예언자라기보다는 하느님의 계시(啓示)를 받아 전하는 존재이며, 기적을 행하는 지팡이를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은 아론이다.
사제계 전승에서 야훼와 자유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모세 뿐이며, 그는 홀로 시나이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하느님과 대화하며 그곳에 머문다. 그는 하느님과 가까운 그만큼 사람들로부터는 멀리 있으며 또한 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제계 전승의 모세는 보통 사람들과 말하기 위해서 자기 얼굴의 광채를 가린다.
모세의 역할에 대한 각 전승들의 이해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이 어느 한 인격체에 대해 이해하고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을 터이다. 누구라도 한 사람을 온전히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인간에 대한 이해도 그러하려니와 하물며 하느님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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