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석 장발 선생
유명화가 가운데는 98세까지 살았던 마르크 샤갈(1887∼1985), 94세에 타계한 중국의 제백석(1863∼1957), 92세에 생을 마친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등이 있지만 모두 100세까지 살지는 못했다.
화가가 천수를 누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한국교회와 미술사에 그가 남긴 업적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장발 선생의 백수를 맞아 지난해 혜화동 성당에서 최종태 윤명로 이종상 조영동 등 기라성 같은 그의 제자와 가족들이 함께한 가운데 조촐한 생신축하 미사를 봉헌한 바 있다.
현재 우석은 미국 맨하탄에서 큰아들 장흔 신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장신부는 지난 2월 백수기념 음악회와 슬라이드 상영으로 작품회고의 시간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는 같은 시기 서울가톨릭미술가회전을 마련하면서 백수 기념 특별 초대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왔던 우석은 현재 건강이 악화돼 거동이 불편하며 대화가 어려운 상태다.
성화의 개척자
국내 서양화단의 선구자, 한국성화의 개척자, 교육자로서 자리매김해온 우석은 1901년 인천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서양회화 양식에 관심을 가졌고 서양화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위해 1920년 도일, 동경 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다녔다. 서양의 조형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일본 동경미술학교 재학시절 「김대건 신부상」을 그렸던 우석은 1926년 로마 바티칸에서 거행된 79명의 한국 순교자 시복식에 다녀온 뒤 명동성당 제단벽화로 남아있는 「14제자화」를 그렸다.
종교적인 열정과 경건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수많은 성화를 남겨왔던 우석은 「14제자화」 이후 「복녀 김 골롬바와 아네스 자매(절두산 순교 기념관 소장)」 신의주 성당의 벽화인 「성령강림(1928)」 서울 가르멜 수녀원의 제단화 「성모영보(1945)」 가르멜 수녀원에 보존돼 있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1941)」 등 종교성화를 위한 작업을 계속해왔다.
우석은 이같은 성화작업은 물론 59년에는 조각가 김세중씨, 건축가 이희태씨 등과 함께 한국인이 기획, 건축한 최초의 성전 혜화동성당을 신축하기도 했다.
서울대 미술학부 창설
광복이후 우석은 서울대학교 미술학부를 창설해 61년까지 초대 미술대학장을 역임하면서 「세계미술사좦 좥서양미술사」 등 이론서를 펴냈으며 후학양성에도 큰 힘을 쏟았다. 그 덕분에 오늘날 한국화단의 중진과 원로로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신앙을 전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여 한국가톨릭미술계의 기반도 튼튼하게 다졌다.
이와 함께 우석은 국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지냈으며 55년에는 한국미술가협회를 창립해 60년까지 지속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하며 미술계의 종합적인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또 1950년대에는 우석의 주도로 두차례 「성미술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1970년 탄생한 서울가톨릭미술가회 창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같은 우석의 공로는 1949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1958년 예술원상, 1984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무궁화장 수상 등으로 높이 평가됐다.
한편 우석은 성화가 아닌 일반 작업에서 초기 추상미술의 흐름을 이어왔다. 또한 우석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됐던 표현주의와 다다이즘을 이어받은 앵포르멜운동에 공감해 주관적이며 직관적인 비정형의 조형미를 탐색하며 추상표현주의를 구축해왔다. 1962년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한 우석은 이후 그만의 독특한 작업 세계를 선보였다.
추상표현주의 구축
70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그의 작품들은 색채를 극도로 절제하며 다양한 소재를 활용, 힘차고 폭발적인 운필로 격렬하면서도 정적인 추상세계를 표현해왔다. 우석은 그의 신앙심 때문이었는지 미국에서 추상작품을 하면서 예전과는 또다른 성화들을 최근까지 계속 작업해왔다.
「골롬바 아네스」 「정하상 바오로」 등 사실적이며 소박하게 그려진 성화들과 한복차림으로 표현된 좥성삼위일체좦를 그렸다.
이처럼 화가이며 교육자요 가톨릭신앙을 지켜내고 교회미술을 일으킨 선구자로 살아온 우석의 역사적인 작품들은 현재 한국 곳곳에 30여점이 보관돼 있으며 공개되지 않은 다수의 작품들은 미국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석 장발 선생이 백수를 맞으며 병약해 있지만 그가 교회사·미술사에 남긴 흔적은 한세기가 아닌 영원한 역사 속에 기억될 것이라며 미술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석의 제자이자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회장인 최종태(요셉·69·서울대 미대교수)씨는 『한국가톨릭미술의 선구자이신 장발 선생이 1920년대에 뿌린 씨가 오늘에서야 결실을 맺고있다』면서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가 남긴 모든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약력
1901년 인천 출생
1920년 동경미술학교 유학
1922년 미국 콜럼비아대학 미술사 미학과 유학
1925년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식 참석
1926년 서울 명동대성당 제단벽화 「14제자화」제작
1935년 평안북도 비현성당 「예수성심상」제작
1949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초대학장 재직(1961년까지)
1955년 한국미술가협회 창립
1959년 혜화동성당 설계 및 부조 제작 지휘
1961년 5·16 군사혁명 이후 도미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가톨릭미술 특별전 참가, 대한민국 문화훈장 무궁화장 수상
2001년 제28회 서울 가톨릭미술가회 참가(백수기념 특별작품 초대)
2001년 현재 미국 뉴욕 맨하탄에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