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은 성소주일이자 신학생들의 대희년이다. 저마다 사제의 꿈을 안고 신학교에 입학한 신학생들의 하루는 어떻게 이뤄질까? 그리고 그들이 닮고 싶어하는 올바른 사제상은 무엇일까?
본보는 2천년 대희년 00학번으로 입학한 새내기 신학생들의 신학교 일상을 담아 보았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6시. 기상 음악소리가 새로운 하루를 알린다. 일순간 고요하던 신학원이 학생들의 분주함으로 활력을 되찾는다.
올해 신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김영훈(베드로) 신학생. 그는 6시30분에 있을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히 서두른다. 아직 잠이 덜깨 눈을 부비며 세면장으로 달려가는 동료들도 한두명 보인다.
양업관 5층 성당. 정복을 입은 1 ,2학년 신학생들이 새벽기도를 위해 하나 둘 모여든다. 김군도 다른 동료들처럼 지정된 좌석에 앉아 기도전까지 조용히 묵상에 들어간다.
시계바늘이 오전 6시30분을 가리키자 정복을 입은 100여명의 신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새벽기도를 바치기 시작한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생들은 성무일도로 활기찬 하루를 연다.
신학교에서 생활한지 이제 두달. 김군에겐 아직 이곳의 모든 것이 새로울 따름이다. 이제 조금씩 적응해나가는 그로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일부 동료들중에는 규칙적인 취침시간에 애를 먹기도 한다.
오전 9시 진리관 1층 강의실. 박일 신부의 영성훈화 시간이다. 이 수업은 조금 독특하게 시작된다. 한 신학생의 멋들어진 피아노 연주가 있은 후 본 강의가 진행된다. 박신부는 이날 강의에서 사제의 소명과 처세에 관해 얘기했다.
독신생활, 자기 개방 등에 대한 열띤 훈화가 있었다. 모두가 진지하게 박신부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서 이날 훈화시간은 박신부의 신학교 시절 경험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화두는 보신탕. 그가 보신탕을 못먹어 겪었던 에피소드에 신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개고기를 먹지 못하는 김영훈 신학생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박신부의 얘기를 경청했다.
『신학교 때까지 개고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저도 결국 사제가 돼서 먹게 됐어요. 여러분은 앞으로 사제직분에 요청되는 모든 것에 자신의 개성과 상관없이 기꺼이 문을 열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박신부의 이 일성이 김군에게 깊은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는 사제로서의 인덕과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신학생들은 모처럼 원감 신부와 한 자리에 모였다. 1학년 들을 담당하는 사제는 4명. 원감, 생활지도 신부가 각각 1명이고, 영성지도 신부가 2명이다.
이 만남에서 신학생들은 그동안의 애로사항과 궁금했던 점을 스스럼 없이 얘기하며 이야기 꽃을 피워나갔다. 김군은 토요일 오후 여유롭게 이뤄진 이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마냥 어렵게만 생각되던 원감 신부님이 오늘따라 아버지처럼 따뜻하고 형님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훈훈한 대화의 시간이 끝나고 신학생들은 각자의 취미생활을 즐겼다. 삼삼오오 취향대로 짝을 이룬 이들은 조깅, 테니스, 농구, 탁구 등의 운동을 하며 토요일 오후의 기쁨을 만끽했다.
또한 휴게실에서 바둑을 두거나 TV 시청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신학생도 눈에 띈다. 김군은 동료들과 탁구를 쳤다.
신학교에는 소위 「3S」라 해서 신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덕목이 있다. 라틴어로 Sanctitas(성덕), Sapientia(지혜), Sanitas(건강)가 그것. 신학교에서는 그만큼 건강을 상당히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그도 축구, 탁구 등을 틈나는대로 한다.
『이곳 생활이 일반 신자들이 생각하는 만큼 엄하고 딱딱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살면서 느꼈습니다. 남자들이 여럿이 함께 살아 다소 삭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함께 뒹굴고 나누며 사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절실히 깨닫고 있어요』
현재 양업관에 함께 생활하는 1, 2학년 신학생들은 99명. 1학년이 55명이고 2학년이 44명이다. 양업관은 2천년 대희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해 새롭게 단장됐다. 각종 편의 시설은 물론이고 17명씩 한방을 쓰던 것을 11명으로 줄였다.
신학교는 지난해부터 1, 2학년을 대상으로 「영성의 해」를 선포하고 이들의 영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저학년의 경우 무엇보다 사제의 길을 가기 위한 기본적인 영성교육이 절실하기 때문.
여기에 2학년 때까지 외출을 허용하지 않으며 신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1학년 이수과목은 라틴어, 신학원론, 영성신학입문, 논리학, 독어, 영어, 철학개론 등 9과목 15학점. 작년까지 23학점에서 대폭 축소됐다.
학문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영성관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서다. 김군은 두달 남짓 공동생활을 하는 동안 진한 동료애를 체험하고 있다.
처음 어색했던 분위기는 점차 사라지고 같은 길을 가는 든든한 동료이자 친구로서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얻는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탓에 가끔 사소한 의견차이가 생기긴 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내 풀리고 만다.
중2때부터 사제의 꿈을 키워온 김영훈 신학생. 본당에서 전례부 활동을 하며 성서모임인 신앙학교에도 참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비신학생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며 성소를 착실히 키워나왔다.
김군이 신학교 가는데는 당시 본당 신부와 신학생의 영향이 컸다. 사목자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본당 신부와 신학생의 모습이 그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의 뜻에 따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제가 되길 희망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목자. 김군은 신자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사제가 되게 이끌어달라고 주님께 늘 기도를 바친다.
『밖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길을 가는 선배님들을 보면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겠어요. 인내와 열정속에서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잡아나가는 그들의 노력에 제 마음이 숙연해지더군요. 저또한 그 뒤를 열심히 따라가도록 노력해야죠』
저녁 7시. 식사를 마친 신학생들이 15분부터 시작될 묵주의 기도를 바치기 위해 하나 둘 운동장에 모여든다. 신학생들은 시작 종소리와 함께 신학교 교정을 거닐며 묵주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한다. 이 시간부터 신학생들은 대침묵에 들어간다.
김군도 동료들과 조를 이뤄 부지런히 묵주알을 굴리며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그는 기도중에 앞으로의 머나먼 여정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요청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분별력이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선배 사제들이 걸었던 그 길을 저 또한 제대로 가기 위해 저의 모든 것을 바칠거예요. 예수님의 삶과 모습을 닮도록 노력할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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