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서서 일을 하다보니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혼이 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예요. 그렇지만 신이 나서 일하다 보면 손끝 하나하나마다 기가 모이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미아1동과 7동을 가로지르는 폭 좁은 도로를 따라 사거리를 지나쳐 오르다보면 흔히 '삼양동'이라는 지명으로 훨씬 많이 알려진 재개발지역에 다다른다. 이 재개발지역이 바라다 보이는 도로변 건물 2층에 오가는 차량과 시장의 소음을 마주하고 하나의 공동체 일터가 당당히 서 있다. 10여평 남짓한 일터, 이곳에서 다섯명의 손길과 몸짓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일터 주변의 온갖 소음을 묻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힘이 서려 있다.
이제 교회 내에서도 웬만큼 알려진 '솔샘일터 (대표=정옥순, 지도=이기우신부)'가 바로 이 힘의 근원지.
"주님, 저희들의 하루가 당신을 찬미하고 당신을 위한 길에 쓰일 수 있게 하소서"
매일 아침 9시면 어김없이 다섯 식구가 둘러앉은 가운데 시작되는 성무일도는 삼양동이라는 열악한 현장에서 공동체를 튼튼히 지탱해온 뿌리와도 같은 것이다. 지난 93년 10월 전례복을 만드는 봉제생산협동조합으로 시작된 '솔샘일터' 는 처음 1년 동안은 간판도 내걸지 않고 사업자 등록도 보류한 가운데 꿈 하나만으로 가꾸어온 공동체였다.
일을 하다 전망이 보이지 않으면 모두가 먼저 일하던 저마다의 일터로 돌아갈 것을 각오하고 시작된 공동체, 이들의 시작은 이토록 초라했다. 그러나 '솔샘일터'의 씨앗은 이미 91년부터 뿌려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북부공소로 운영하던 좥솔샘공동체좦의 목요미사와 기도모임에서 만나기 시작한 정옥순 (아나다시아) 대표를 비롯한 3명의 조합원들이 '솔샘일터'의 겨자씨였던 셈이다.
"지금도 빠듯하게 먹고 살지만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게 무엇보다 이 일을 그만 두고 싶지 않은 이유입니다"
지난해 8월부터 함께 하기 시작한 신덕례 (예비자)씨를 비롯한 조합원 대부분은 같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으로 뭉친 이들이기에 IMF도 그리 큰 힘 들이지 않고 이겨낼 수가 있었다. 정식 출범 2년이 지난 96년부터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먼 꿈으로만 생각되던 배당도 꾸준히 이뤄지게 됐다. 배당 때마다 조금씩 출자를 해 이제는 조합원들의 출자금도 320만원으로 불어났다.
하루종일 서서 재단, 재봉, 다림질을 해야 하는 중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일터에 넘쳐 흐르는 성가와 정감어린 대화가 오히려 노동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더구나 한해를 열심히 살고난 후 따게 된 열매를 빈민지역 어린이방 등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기쁨은 이들의 한해를 항상 들떠있게 한다.
"신앙과 삶이 하나가 돼 힘든 노동이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신앙을 다질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지난 97년부터 조합원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솔샘일터'를 지켜오고 있는 박춘옥수녀, 그는 일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공동체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꿈을 '솔샘일터'가 실험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올해는 조그만 전시매장을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막내 김문선 (루시아, 34)씨, 피정을 통해 노동의 기쁨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장영오씨, 더욱 많은 이들이 함께 일할 수 있길 바라는 정 대표…. 이들의 삶은 꿈꾸는 사람들만이 꿈을 얘기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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