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학원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 학원들을 끼고 오락실, 까페, PC방, 비디오방들이 한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이곳에는 재수생은 물론 엄청난 수의 재학생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린다.
길에서 만난 한 고3 학생.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요령있게 가르쳐 주니까 머리에 더 잘 들어온다』고 말한다 학교 선생님들 수업이 학원에서 배우는 것만 못하다는 것일까.
서울 모 고등학교 수업시간. 조는 아이들은 졸고 노는 아이들은 논다. 공부에 관심있는 아이들은 한 반에서 몇이나 될까. 고3 김모군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야 그냥 출석 체크만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 공부해서 뭘 어떻게 하겠어요』라며 건들거린다.
특히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 이미 『교실이 모두 무너졌다』고 말한다. 실업계는 고등학교 학생의 40%,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수업시간에도 자리를 비우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이고 학교 근처 당구장에는 아침부터 아이들이 붐빈다.
상위권 외에는 들러리
선생님들도 성적이 하위권에 머무는 아이들을 위해서 별 뾰족한 수가 없다.『어차피 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인데 특기를 살리려는 노력이나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각별한 배려를 할 수 있는 현실이 못됩니다』
더욱이 급속하게 떨어지는 교권은 이제 자칫 아이들의 몸에 손이나 몽둥이를 댔다가는 당장 학부모가 쳐들어오거나 경찰서로 신고가 들어간다.
신고를 하고서도 거기에 일말의 죄책감을 갖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인문계의 경우 진학 상담, 실업계의 경우 취업상담이나 문제 학생과의 싸움이 전부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는 것도 드물거니와 선생님들도 그런 고민을 들어줄 여유도 없다.
무너진 교육은 필연적으로 문제 학생을 양산한다. 매년 가출하는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이 12만명. 그중 7만에서 8만명 정도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학생들이다.
한국청소년 선도회의 조사에 따르면 가출을 선택한 아이들의 가장 큰 이유가 학교가기 싫어서(40%), 부모와의 갈등(25%), 불량한 친구 관계(25%), 학교 선생님과의 갈등(3%) 등이다.
교육 현장의 붕괴가 이제 일부 문제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총 인원은 약 140만명 정도. 그중 상위 10~20%만이 수업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한다. 나머지, 즉 대학을 갈 수 있을만한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은 들러리다.
학교의 목적 자체가 상위 교육기관에 진학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취지에 적합하지 않은 학생들의 학교 생활은 무의미하다.
허물어진 스승과 제자 관계
무엇보다 교육 현장의 근간인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가 허물어졌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허물어진지 오래이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선배를 향해서는 깍듯하게 머리숙여 인사를 하면서도 교사를 보면 피하거나 눈을 맞춰도 고개 한 번 끄덕이면 그만입니다.
요즘에는 아예 그런 꼴 안 당하게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닙니다 교사들의 입장에서도 「사서 고생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이다.
걸핏하면 경찰에 신고를 하기 때문에 전 같으면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인간을 만들겠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눈을 돌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아이들이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는 그대로 학부모들의 자세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직접적으로 항의가 들어온다. 수업시간에 교실로 들어오거나 교무실로 쳐들어와 항의를 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사교육 팽창과 공교육의 위축
교단의 명예와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아무리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천직으로 삼아 사명감으로 일하던 교직은 이제 환멸의 대상으로 변해 교단을 등지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지난 4월 헌법 재판소의 「과외 금지조항」 위헌 결정은 가뜩이나 어려운 학교 교육의 울타리를 더 좁게 만들 우려를 갖고 있다. 과외 교습이 전면 허용됨에 따라 학교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학교 수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은 좀더 자유롭게 「높은 실력」을 갖고 있는 과외 선생님을 찾아다닐 우려가 농후하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공교육 위축을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미 학교 교육은 사교육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혹은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책가방을 싸 학원으로 향한다.
한 고3 학생은 어느 모로 보나 학원이나 과외 수업이 학교 수업보다 낫다고 말한다. 『한 반에 50명씩 되는 학생들, 게다가 저마다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일일이 신경써야 하고 온갖 잡무에 시달리는 학교 선생님보다 강의만 신경 쓰는 학원 강사가 훨씬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지요』
고액 과외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위헌 결정 후 가장 우려되는 부분도 바로 고액과외 문제이다. 유명 학원 강사들이 개인지도나 소그룹 과외로 나설 경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소위「쪽집게 과외」가 성행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현직 교사의 교단 이탈도 우려된다. 교단의 명예가 실추되고 천직으로서의 사명감마저 상실한 교사들이 돈벌이가 되는 과외 시장으로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과외가 성행할 경우 일반 국민들, 특히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계층간 불화감은 극에 달할 것이며 학교 교육은 더 이상 경쟁력을 상실한 유명무실하고 형식적인 대규모 학생 집합소가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학교를 그대로 두어도 좋은 것인가.
학교 교육의 파행은 자연스럽게 대안 교육의 모색을 가져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소위 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10개가 훨씬 넘는 대안학교들이 생겨났다. 획일화된 교육, 성적 지상주의, 통제 위주의 교육, 숨막히는 교실, 촌지, 구타 등 제도교육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그 이유이다.
대안학교에 대한 인식은 더 이상 문제아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교육 현장의 개발로 발전했다. 「학교는 죽었다」는 명제, 그리고 이 명제가 현실로 나타나는 교육 현장 속에서 대안학교는 나름대로의 영역과 모범을 발견해가고 있는 것이다.
대안학교는 기존의 학교 교육 체계 속에서는 결코 꿈꿀 수 없는 이상적인 교육 제도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대안학교, 그러나…
하지만 결코 대안 학교가 기존의 학교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당연한 평가이다. 다만 제도 교육에 새로운 가능성과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교육적 실험을 하는 역할에는 매우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있다.
대안 교육으로서「가정 학교」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부모들로부터 나온 자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난해 초 처음으로 학교를 벗어나 집에서 개별, 또는 집단적으로 자녀 교육을 실시하는 홈 스쿨링이 나타났고 이와 유사한 대안적 실험들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좀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은 나름대로 자기 확신과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는 10대들의 자퇴이다. 10대의 벤처기업 사장, 검정고시로 서울대에 들어간 이, 국내 최연소 인터넷 웹진 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자 등등 그럴듯한 직함의 자퇴생들은 비정상적인 학교 교육의 폐해를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들은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것이며 우리 나라 교육 체계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도들로부터 부분적인 영감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결국 문제는 학교 교육의 정상화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학교 교육에 대한 교회 가르침
상호이해의 정신 기르고
전인적 형성 이루는 특별한 장소
종사자의 사명 또한 숭고하며 중대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학교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그리스도적 교육에 관한 선언 참조).
『모든 교육기관 중 학교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학교는 그 사명에 의해 지적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려하며 올바른 판단력을 기르고 과거 세대들로부터 이어받은 문화상의 유산에로 사람을 인도하며 그 가치관을 발전시키며 직업 생활을 준비시키고 갖가지 소질과 신분의 학생들 사이에 교우 생활을 조성하여 상호 이해의 정신을 길러준다』
『따라서 인간 사회를 대표하여 학교에서 교육의 임무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소명은 숭고하며 중대하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이 발표한 「가톨릭학교에 관한 지침」에서는 학교는 『문화적 유산과의 생생만 만남을 통해서 전인적 형성이 이뤄지는 특정한 장소』라고 규정하고 특별히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 공학의 발달로 말미암은 비인격화와 대량생산 산고 방식의 위험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본연의 인격 형성의 기관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학교는 진정한 공동체라야 하며 그 공동체의 가치는 성원들간의 대인적이고 진실한 인간 관계를 통하여 또 개인적이고 진실한 인간 관계를 통하여 또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학교 전체에 흐르는 인생관에 호흡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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