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 진행성 질병인 이것으로 인해 생기는 폐해가 중독자 자신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녀들이 가출하거나 부인이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등 가정이 풍비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정공동체의 와해로 사회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엔 경제한파 때문인지 알콜중독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실직을 하거나 부도 등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어 술제조업체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관계자들은 현재 국내 알콜중독자를 근 3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독자가 있는 한 가정에 자녀수를 3명으로 가정한다면 부인까지 합쳐 1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알콜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족들의 피해 사례
경기도 파주에 사는 김민선(가명.55)씨는 남편의 발자욱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요동친다. 기물을 파괴하거나 구타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죽인다'고 칼을 들이대기도 한다. 이렇게 당한지가 벌써 30년째. 이혼을 하고 싶어도 자녀들의 앞날이 걱정이 돼 선듯 용기를 내지 못하고 살다보니 나이가 50이 넘었다. 제발 오늘은 아무소리없이 그냥 잠이나 자기를 빌고 또 빈다.
서울에 사는 이미정(가명.34)씨. 그녀는 중독자 남편 때문에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도 정신질환에 시달려 입원시켰다. 박정자(가명.41)씨는 옷을 벗지 못하고 잔다. 남편의 폭행을 피해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애기를 안고 거리에서 쪼그려 밤을 지새운 날도 허다하다. 인천에 사는 최명순(가명.50)씨는 지난 달에 벌어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매맞는 모습을 본 아들이 부엌에 가서 칼을 가지고 남편을 찌르려 했습니다. 아버지를 인간쓰레기라 폭언하며 남편에게 대드는 아들의 모습도, 매맞고 있는 내 모습도 정상이 아니었습니다"그녀는 끝내 흐느낀다.
전문가, 연구기관 설치돼야
알콜중독자로 인해 가족들이 받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알콜이 우리 사회에 가정폭력의 주된 요인으로 자리잡은지도 꽤 오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작 가족자 모임 정도. 이를 연구하는 전문가도, 기관이나 단체도 거의 없다. 관계자료도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 대부분. 중독자 가족들의 고통 완화를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시급이 마련돼야 한다.
청소년 비행, 매맞는 아내, 존속살해 등 심각한 사회문제 뒷면에는 꼭 알콜이 연계돼 있다 할 정도다. 집안에 알콜중독자가 있으면 그 나머지 가족들도 우울증, 좌절감, 분노, 화병 등 각종 정신적 질환에 시달린다. 가정와해로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현상에 팔짱을 끼고 있을 수 만은 없다.
알콜중독자 가족모임인 '알아논' (AL-ANON)에서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모니카씨는 "한마디로 가족전체가 정신병 환자라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며 이제부턴 중독자 가족들이 적극 나서 이의 심각성을 알리고 국가에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녀는 올해 술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등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갈 생각이다. "나라의 장래가 달려있는 문제를 부끄럽다는 이유만으로 언제까지나 감추어 둘 수 만은 없습니다"
가족모임 '알아논'과 자녀모임 '알아틴'
미국에서 50여년전에 시작됐다는 알콜중독자 가족모임인 '알아논' (AL-ANON)은 현재 국내에는 50여개 그룹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온지가 15년 가까이 됐지만 한국사회의 풍토속에서 드러내놓고 활동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들은 '알콜중독자를 돕는 방법' '알콜중독에 대한 대처방법' 등을 배우고 의논한다. 또 충동적인 음주가들의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위안과 희망, 우정을 주고 있으며 단주친목(A.A) 12단계를 받아들여 실천함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참가자들은 ▲첫째 해야 할 일을 먼저하자 ▲나도 살고 , 남도 살게 하자 ▲여유있게 하자 ▲한(恨)을 버리고 신(神)께 맡기자 라는 표어들을 매일 명상하며 알콜중독자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알콜중독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자신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이해하려는 태도로 바꿈으로써 도움을 얻는 것이다.
제도적.정책적 지원 필요
대다수 알콜중독자 가정은 경제적으로도 곤궁하다. 정신적인 고통과 생활의 피폐로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다. 가장들의 계속되는 음주로 인해 부인들이 파출부나 일용근로자 등으로 생계비를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가자들은 ▲진료비 감면 등 의료 혜택 필요 ▲가족들의 치료와 상담을 위한 쉼터 마련 ▲언론매체 등을 통한 예방교육과 홍보 등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경미한 음주 사고시 음주자에게 '감옥'이나 '단주모임'(A갂) 중 한가지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박모니카씨는 무엇보다도 '관대한 우리나라의 음주문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으며 사회 전반적인 의식개혁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중독자 가족들의 익명성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주류제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등 중독자 가족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알콜중독자 가족모임의 고통'을 공론화 시킬 생각이라고 한다. 그녀는 또 전 교회 차원의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 알아논·알아틴 전국 연락처
▶알아논(ALANON)
■ 서울 ▲본부사무실 752-1808 ▲서울 구로3동성당 교육관내 제2교실 864-9062 ▲신당종합복지관 295-9477 ▲화곡본동성당 602-0834 ▲양재성당 지하 교리실 714-9428 ▲신정동성당 꽂꽂이 646-2799 ▲강남고속버스터미널 10층 성당 694-9176 ▲사당동 가리따스 수녀원 595-7338 ▲왕십리 골롬반 지하 937-2294 ▲반포성당 591-5185 ▲창동성당 973-1826
■ 경기 ▲김포읍성당 (0341) 984-0667 ▲성남 수진동성당 (0342) 756-8486 ▲남양주시 평내성당 (0346) 591-2933 ▲부천시 성가병원 1층 소강당 (032) 655-3027 ▲인천 만수1동성당 (032) 811-6910
■ 충남 ▲공주 계룡면 양화공동체 (0415) 841-3333
■ 전남 ▲광주 성요한병원 지하 A·A사무실 (62) 368-0889 ▲순천 성가를로병원 2층 봉사자실 (0661) 53-6119 ▲목포 신정동 골롬반수녀원 (0631) 74-0062
■ 전북 ▲전주 코오롱스포츠센터 3층 (0652) 224-7032
■ 경남 ▲부산 서면 태화쇼핑뒤 중앙부레쉬 옆 A·A옥상 (051) 819-1118 ▲울산 한빛병원 사회사업과 2층 (051) 809-6050 ▲마산 동서병원 알콜치료센터내 (0551) 31-2341
■ 경북 ▲문경성당 (0581) 572-2889
▶ 자녀친목(ALATEEN)
■ 서울 ▲본부사무실 752-1808 ▲사당동 까리따스수녀원 595-7338 ▲창동성당 973-1826 ▲광주 성요한병원 내 A·A사무실 (62) 386-0869
◆ 알콜중독자 대하는 방법(금지사항)
1. 설교나 도덕심을 강요하거나 야단·책망·비난 또는 협박을 하지 말고 술에 취해 있거나 때어 있을 때 언쟁을 하지 마라. 술을 쏟아 버리거나 화를 내거나 음주의 결과를 감싸주지 말 것.
2. 화를 내지 마라. 화를 냄으로써 자신을 파멸시키고 중독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3. 당신의 불안감 때문에 중독자가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하려고 하지 마라.
4. 중독자가 약속하는 것을 받아 들이지 마라.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고통을 연장시키는 방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독자와 합의한 것은 바꾸지 마라.
5. 중독자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 들이지 마라. 이렇게 하면 거짓말을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
6. 중독자가 당신을 속이지 않도록 해라. 당신이 속으면 그는 책임을 회피하게 되고 당신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 버리게 된다.
7. 중독자가 당신을 이용하지 못하게 해라. 당신이 이용되면 그가 책임회피하는 것을 돕는 결과가 된다.
8. 위의 일곱가지를 규칙처럼 따르려고 하지 마라. 위에 제시된 것은 단순한 「지침서」에 불과하므로 각자의 식견과 평가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
9. 가족친목 모임에 곡 참가해라.
10. 무엇보다 알콜중독은 진행성 질병이며 음주를 계속하는 한 악화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 전문가 의견 - 가톨릭대 성모병원 이정태 교수
“알콜중독증도 치료 받아야 하는 질병”
가족 모두에게 질병 야기시키는 「가족병」
교회도 건강한 음주문화 정착 교육 필요
『알콜중독증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가히 병적이라 할만 하기에 이런 어려움의 현상에 「가족병」이라는 말은 알콜중독증의 유전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동시에 환경적인 측면도 중요시한 용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젠 알콜중독증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며 사회전체나 각 가정, 개인이 도덕적으로 혹은 의지박약으로 알콜중독증을 보는 시각을 탈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는 질병으로 보아야만 한다고 이교수는 강조한다.
이교수는 알콜중독증 환자들의 가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가족을 돕는 방법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비정부간 기구(NGO)로서, 가족친목모임인 알아논과 자녀친목을 위한 알아틴, 최근엔 성인자녀틴목모임인 아코아(ACOA)가 결성되어 가족들을 돕고, 알콜중독증이 대물림하여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방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교수는 최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술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을 모두 알콜중독증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교수는 알콜중독증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소홀애선 안될 것이라며, 음주운전방지 캠페인이나 과음방지운동 등의 확산과 알콜중독증이 의학적인 질병이라는 사실, 가족모두에게 질병을 야기시키는 가족병이라는 것을 홍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교수는 교회차원에서도 도울 수 있는 방안이 개발돼야 한다며 먼저 누구나 손쉽게 알콜중독증 선별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치를 교회내에 마련하자고 말한다. 선별검사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한다. 이교수는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알콜중독증 치료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기관과 연계를 갖고 전문의의 진찰과 진단 그리고 치료가 취해질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교수는 이와함게 알콜중독증 강좌개최, 「술 즐겁게 마시는 방법」등을 교육하고, 경각심을 고취시켜 건강한 음주문화 정착에 한몫할 것을 교회에 요청했다.
한편 86년부터 가톨릭대학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이정태 교수는 94년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 초청으로 죤 홉킨스대학에서 약물남용프로그램 과정을 이수했다. 이후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신경정신과 알콜중독증 프로그램 개설, 알콜중독증 가족들과 환자·전문인을 위한 무료강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알콜중독 퇴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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