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희년은 해방과 자유를, 평화를 담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5월 21일은 교육자들의 대희년이었다. 2000년에도 계속되는 교육문제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끊이지 않는 문제인가 보다.
방송매체를 보면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자유와 평화를 달라고 아우성들이다. 학생들은 참다못해 보호받아야 될 한 인격체라고 소리 높이고 있고, 학교를 마치 요술램프처럼 생각하는 학부모의 소리도 만만치 않다.
교사들은 마치「동네 북이 된 심경」이라 토로하고, 책상에 앉아「21세기의 비전을 펼치는 이들의 정책」을, 꿈만 꾸고 있다 한다. 이들에게 대희년은 무슨 의미일까?
학교사목을 해오면서 이즈음 다시 한번 깊은 한숨과 함께 생각에 잠겨 보지만 대책이 없다. 답답하다.『사람을 살리고 교육을 살리신 예수님(마르5, 41)』이라는 부제로 전국 가톨릭 교육자 대회가 열렸다.
교육을 살아나게 하는 방법이, 사람을 살리는 묘안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의미로『2천년 대희년, 교육으로 새 세상을』이라는 주제를 걸었다.
교육은 신명나는 생명의 삶
신학교 스승이신 신부님께서 3천년기의 테마는「생명」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대안학교(자율시범학교) 관계자들은「생태주의(生態主義)」를 한목소리로 말한다. 예수님께선『나는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 6)』라고 말씀하셨다.
근본으로 돌아가「생명」을 생각해 본다. 신명나는 생명의 삶!?교육!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생각해 볼 때 인것 같다.「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교육의 대명제가 있다.
교사란 누구인가? 교육에 관계하는 모든 이, 즉 교육관계자, 현장교사, 학부모 (그 누가 관계없다 말할 수 있는가?), 교육사업가 그리고 학생을 포함해서 모두가 아닐까? 그러면 교육이란 무엇인가?「사람답게 양육하는 모든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무엇이든 다 가르칠 수 있는가?
가르쳐야 할 것과 스스로 배우는 것이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디서 배우는가? 교실에서, 가정에서, 사회 안에서, 자연 안에서, 결국 세상 안에서이다. 무엇을 배우는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아완성을 이루는 배움일 것이다.
어떻게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가? 개인이 지닌 이성과 감성을 망라해서 배우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가정에선 사람됨을, 교실에선 진리를, 사회에선 공동선을, 자연을 통해 상생(相生)을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그러자면 모두가 협력하여야 한다. 동일한 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달리 크게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왜 교실이 무너지고 학교가 무너진다고 하는가?
지·덕·체 교육은 완전한 인격완성을 위한 그 목표 라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말해야 한다.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컨베어벨트 위의 부속품을 하나하나 조립하듯, 우리의 자녀를 콘크리트 사각 교실에 묶어 둘 수 없으며 그래서 교실뿐 아니라 가정, 사회, 자연, 세상 안에서 교육해야 하기에 교실은 무너져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교사의 질 넘어서는 교육 필요
마치 만화에나 나올법한 머리만 큰 화성인을 만들듯 하는 노릇, 지적 교육만의 편식교육을 집어치우고 전인격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더 이상 현장 교사의 전유물이 아니며 학생의 부모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지금까지의 학교가 무너지고 사람을 살리고 살맛나는 학교교육, 생명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또 더욱 강력한 공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교육의 중심자리를 결코 내놓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작아져야 한다. 지식교육을 다단계나 세분화하여 줄여야만 하고 인성, 마음교육, 몸교육, 전인교육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 자리에 교회는 마음과 정신, 영성 교육을 학교에 보태야 한다. 교회도 지역내 기타 전문인사 및 기관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자녀에게 협력 주체로서의 역할을 다 해야만 한다. 지역 안의 전문기관, 단체와 맺는 긴밀한 일치를 통해 공교육은 작아지고 강해져야만 한다.
또한 교회는 세상 안에 빛과 소금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회개해야 한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로써 존엄성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배려를 미루어서는 안 된다.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과 하늘까지 닿을 만한 보이지 않는 담을 학교도 교회도 이제는 허물고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회개해야 한다.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가르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웃과 자연, 그리스도 앞에 겸손해야 한다. 이용하는 방법만을 배우고 존재 이유를 묻지 않는, 그래서 감사할 줄 모르는 지식, 배움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 대한 깊은 묵상은, 사람을 살리는 교육, 세상을 열어 갈 유일한 희망임을 늘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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