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바오로딸수도회 '할매' 도로테아 도또수녀는 16세에 10대의 나이로 입회, 올해로 수녀원 생활이 48년째다. 48년은 유기서원후 수녀로 살아온 연수이고 입회때부터 수녀원에서 살아온 세월을 헤아리면 이미 반백년을 넘어섰다.
2월 2일 봉헌의 날을 맞으며 도로테아수녀는 '그리스도께 더욱 온전히 삶을 맡길 수 있도록 또한 그리스도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보다 새로운 마음으로 바친다.
"수도생활은 진정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생활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것은 부르심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생활하며 수많은 지원자들을 보아왔지만 그리스도께서 불러 주신 이들만이 기쁘게 수도생활을 하게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테아수녀는 덧붙여 수도생활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온몸을 바치는 생활이라고 강조한다. 즉 '그리스도의 손, 발, 말이 되어 교회안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쓰여지도록 하는 것'이란다.
"사도직을 하면서 여러 분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할 때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수도생활의 기쁨을 상실할 수 도 있게 되거든요"
수도생활은 '내'가 아닌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기에 '사랑'의 생활이라고 말하는 도로테아수녀는 '세상안의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이해될 수 없는 기쁨과 신비일 것'이라고 환한 웃음을 보인다. 이태리 남부 나폴리 지역 인근 아벨리노 출신인 도로테아수녀는 여덟남매 중 막내로 성장 열여섯이 되는 해 성바오로딸회에 입회했다.
유기서원 후 시에나 지역에서 15년간 사도직활동을 하던 중 '한국으로 떠나라'는 발령을 받고 이태리를 떠난 지 올해로 33년이다. 66년 베네치아에서 일본으로 오는 배를 타고 한달여에 걸쳐 아시아 미지의 나라로 향했던 도로테아수녀는 이제 파스타 피자 등 이태리음식보다 김치와 한국음식을 더 즐겨먹는 '한국사람'으로 변했다.
처음 한국발령을 받고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몰라 지도를 찾다가 '이렇게 작은 나라'인가 했더니 곁에 있던 장상수녀가 '한국만 보지 말고 북쪽의 중국까지 선교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하던 것을 회고한 도로테아수녀. 30여년전 그 장상수녀의 예측대로 도로테아수녀는 3년전 북한선교 임무를 총본부로부터 받고 1년간 연길에서 체류했다.
아직 선교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의견속에 1년만에 철수하였지만 도로테아수녀는 북한교회에 갈 수 있는 길만 열린다면 언제든지 뛰어갈 생각이라고 의욕을 보이고 있다. 66년 10월 22일 한국 입국 날짜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도로테아수녀는 60년 한국에 진출했던 성바오로딸수도회의 발전을 지켜본 '산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미아리본원은 그때 당시 2층건물만 있는 상태였고 주변에는 집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죠. 공동묘지도 있었구요. 이제 수녀원을 둘러싸고 빽빽히 들어선 집들을 보면 그사이 생활이 꿈만 같아요"
도로테아수녀는 전주 대구 부산 등 전국에 분원을 새로 설립할 때마다 거의 선발대로 파견돼 특별히 '땅' 찾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한다. 서원이 들어설만한 지역을 찾기 위해 샅샅히 훑고 다닌 기억이 새롭다는 그는 한국에서의 30여년 생활은 생각할수록 신기롭기만 하고 보람으로 가득하다고 밝힌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생활하는데 벽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열려진 마음으로 부담없이 대해 준 한국사람들의 따뜻함에 형제애를 체험하며 살 수 있었죠"
입국후 첫 1년은 말공부로 인해 몸무게가 10kg 넘게 빠지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울기도 많이 했다고 도로테아수녀는 귀뜸한다-다시 돌아가야겠다거나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언젠가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념으로 버텨나갔다는 것.
도로테아수녀는 수도자의 영성에 대해 화제가 바뀌자 '그것은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수도자가 기도없이 일에만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으면 병이 걸리고 몸이 쇠약해 지듯이 수도자에게 있어 기도는 영성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양분입니다. 기도에서 힘을 얻지 못한다면 영성이 약해지고 세상밖의 것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만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면에서 도로테아수녀는 수도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입장에서 후배 수도자들에게 '가능한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세상안에 심을 수 있는 수도자가 되어달라'고 당부의 말을 전한다. '수도자에게 있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곧 영성이며 신앙'이라고 역설한 도로테아수녀는 간혹 기도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의논해 오는 후배수녀들을 만나면 '하느님 말씀에 더 깊이 관심을 쏟으라'는 얘기를 들려주곤 한다.
이에 덧붙여 도로테아수녀는 "수도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때 하느님 말씀중 한마디 말이라도 가슴에 새기고 이를 삶 안에서 실천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노력한다면 삶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2001년 수도서원 금경축을 앞두고 있는 도로테아수녀. 그는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성경구절을 수도생활의 좌우명처럼 여기고 있다.
'이 말씀만 가슴에 새기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한다면 다른 모든 것도 다 지킬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라고 덧붙인 도로테아수녀는 총본부에서 귀국하라는 명령이 내리지 않는한 이태리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북한선교를 해야지요. 언제 북한교회 문이 열릴지 모르는데요. TV 등을 볼 때 관련 뉴스는 하나도 놓치지 않아요"
수도자로서 선교사로서 거의 50개 성상을 살아온 도로테아수녀의 얼굴에는 수도생활의 은총에서 오는 넉넉함과 활기로움이 생생히 살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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