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사진작가 석동일(에밀리아노.47)씨. 그에게는 언제인가부터 새로운 신앙(?)이 하나 생겼다. 동강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 동강을 훼손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확신이다.
동강(東江).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한국 최고의 비경이 숨어 있는 곳, 전인미답 지역으로 태고의 신비가 숨쉬는 100리 길, 한국에 남은 마지막 자연 강,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곳…. 어떤 미사여구로도 표현할 길이 막막한 이 아름다운 동강이 수몰된다는 사실이 석동일씨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보고 나서지요. 길이 없어 아무도 가보지 못한 동강의 심장부를 래프팅을 통해 보면서 이것은 보존돼야 한다는 강한 의식이 나를 사로잡았죠. 너무나 신비롭고 경건하며 심지어 성스럽기까지 한 동강의 속살을 보면서 신앙체험과도 같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사실 동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겐 그저 그렇고 그런 낮선 강 중의 하나였다. 남한강의 수많은 지류 중 하나로써 영월을 감싸고 돈다 해서 '영월 동강', 즉 어느 지역의 한 강쯤으로 알려져 있었다.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60호로 지정된 백룡동굴이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에게는 동굴이 함께 수몰된다는 안타까움 정도만이 남아있을 정도였다.
석동일씨도 20년 가까이 동강주변을 다니면서도 사실 동강을 잘 몰랐다. 단지 백룡동굴 사진을 찍기 위해 오갔을 뿐이다. 영월댐 건설로 동강 일대가 수몰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해 5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래프팅을 하면서 숨겨진 비경을 발견하게 되고 이때부터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됐다. 동굴사진작가에서 '동강 지킴이'가 된 석동일씨는 우선 서울의 친구와 환경단체 회원, 각 언론 매체를 초청해 동강의 비경을 소개했다. 동강이 수장되는 것을 막으려면 먼저 동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보름 이상을 현지에 머물면서 노력해온 석씨의 지성으로 동강 살리기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원주교구 정의평회위원회(위원장=김영진 신부)에서도 지역 현안에 적극 나선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공식적으로 영월댐 반대운동에 돌입했고, 몇몇 교구 정평위와 전국 환경사제 모임에서도 적극 동조하고 있어 석동일씨는 크게 고무되고 있다.
"교회에서 적극 나서 줘 큰 힘이 되고 있다. 사제단에서 원한다면 영월댐 추진의 내막, 동강의 자연 생태 등에 대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석씨는 나아가 동강 답사까지 안내하겠다며 사제단의 활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처음 동강에 머물면서 "영월댐 건설 반대"라고 외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미 당시 주민들은 영월댐 건설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였고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아내려고 유실수를 심는 등 엄청난 투자(?)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수몰 가구가 500여 세대가 됩니다. 이들 중 많게는 10억원 가까이 투자를 해놓아 수몰될 경우 수십억원의 보상금을 타게 되지요. 그러니 동강을 살리자는 제가 곱게 보이기는 커녕 집안 말아먹을 귀신으로 보이겠죠" 실제 지난 여름에는 낫이나 몽둥이를 든 주민과 마주치기도 했다. "당신이 뭐냐, 동강이 당신 강이냐"며 무섭게 항의를 해왔다. 그러나 며칠 뒤 석씨는 주민들을 다시 찾았다. 밤을 새워 토론하며 그들을 설득했다.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댐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홍수 예방 효과도 없으며 상수원으로도 부적합한 사실 등 수자원 공사에서 내세우는 논리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밝혀내기도 했다. 심지어 7개뿐이라는 동굴수가 244개나 되며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몰라 댐의 안정성에 결정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제기했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으로 시작한 이 일이 어느 정도 성과를 얻어서일까?
석씨는 지난해 교보환경문화상과 환경기자클럽이 주는 '올해의 환경인상'을 받았다. 수자원 공사에서도 환경평가를 다시 하기로 해 수몰을 1년 연장시켰다. 더욱 고삐를 쪼아야 한다는 심정에 최근에는 공동조사를 제안했다. 그러고는 순교하는 심정으로 석씨는 동강과 함께 살기 위해 동강의 심장부에 있는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로 이주한다.
더 이상 서울 시민이 아니라 동강을 끼고 살아가는 현지 주민으로 살면서 동강 유역을 정밀 탐사하고, 카메라로는 동강의 흐름을 기록하고 증언하고자 한다. 또한 '동강 자연 생태학교'를 세워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려 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