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곡을 내려가 옆 방향으로 꺾어들었다. 그것은 우리 비참한 추방자들로선 참으로 슬픈 행렬이었다. 모두들 창백했고 비쩍 말라 있었다.
그저 얼마 안되는 살점만이 몸에 붙어 있었다. 등에는 봇짐을 맨채로 몇 발자국도 옮기기가 힘들었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이 참상을 알고 계시리라』
『1950년 12월. 남한의 전투기들이 밤낮 구별없이 폭음을 내며 수용소 위로 날아갔다. 그럴 때마다 대공포가 온 사방으로 불을 뿜었다. 비좁은 공간에 빽빽히 들어차서 수용소를 떠날 수도 없는 상황에다가 날은 엄청나게 추웠고 지독히도 배가 고팠다.
짚더미 위에는 병들어 죽어가는 동료 수사들이 누워있었다. 수용소 안과 문밖에는 항상 총을 든 경관이 지켜 서 있고 공동 성무일도와 미사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폭탄에 맞아죽을 것인가?
굶어죽을 것인가, 아니면 얼어죽을 것인가? 하느님, 우리의 이 참상을 굽어보소서!』
일명 「죽음의 행진」때 수용소로 끌려가 수많은 고초를 겪었던 어느 독일 선교사의 증언록 중 일부다. 한국전쟁 이후 3년만인 53년 7월 27일 휴전조약이 체결 될 때까지 남북한은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으며, 전 국토는 황폐화됐다.
이중에서도 공산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됐던 한국천주교회는 집계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49년 덕원수도원에서 첫 서원을 받고 수도생활에 입문했던 조재환(스테파노,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75) 수사. 그는 동료 선교사들이 끌려가던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49년 5월 9일 밤 11시께 갑자기 들이닥친 공산군이 우리를 한 곳으로 집결시켰죠. 그리고 수도회 식구 명단을 들고 외국인 선교사들을 차례로 부르더군요. 한국인 신부들은 이들대로 따로 집결시켰어요. 이때 외국인 선교사와 한국인 신부들을 다른 차에 구분해서 태우곤 떠나갔습니다. 이것이 그들과의 마지막이었죠』
조수사는 당시 덕원 수도원 수도자 80여명 중 40여명이 끌려갔다고 전했다. 그가 후에 전해들은 바로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경우 평양으로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며 수용소 생활을 하다 53년에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들 중에는 병마와 굶주림 때문에 많은 이들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끌려갔던 10여명의 한국인 사제들의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 소문으로는 모두 처형됐다는 얘기만 들려왔다.
『외국인 선교사들은 수용소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요. 특히 배고픔 때문에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중 많은 분들은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잖아요. 영문도 모르고 돌아가신 한국 신부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픕니다』
「죽음의 행진」은 두갈래로 진행됐다. 남한에서 끌려간 선교사들과 함흥, 원산, 평양을 거쳐 '옥사독 수용소'에 수용됐던 덕원, 함흥교구 성직자와 수도자들이다. 이 당시 순교했던 선교사들 중에는 초대 주한 교황사절을 지낸 번 주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등 고위 성직자도 포함돼 있다.
특히 「죽음의 행진」중 극심한 고문까지 받았던 번주교는 『신앙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언제나 소원이었다』고 고백한 것으로 전해져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 전후 희생된 천주교인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당시 피납되거나 피살된 평신도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문한 상황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지난 85년 발행한 '한국가톨릭대사전' 에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의 수를 150명으로 집계하고 있다. 희생자는 교구장 5명, 신부 82명, 수사 25명, 수녀 34명, 신학생이 4명인 것으로 나와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볼 때 당시「죽음의 행진」으로 고초를 겪었거나 피살된 이들 대부분이 박해에 굴하지 않고 신앙과 교회를 지키려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천주교 전례기 순교성인들 못지 않은 삶을 살았던「제2의 박해기」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모범적으로 이어 받으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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