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 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전신불수로 18년째 누워서만 지내는 배영희(엘리사벳.37)씨.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해 밥도 남이 떠먹여 주고, 대소변도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아니면 어찌 할 수 없는 그녀. 그러나 그녀가 머금는 부드러운 미소와 맑은 목소리 속엔 고통이나 좌절의 그림자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오로지 하느님 사랑안에서 느끼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그녀도 한땐 하느님을 원망했던 적도 있었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씩씩한 여군이 되고 싶었고 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도 되고 싶었던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그분이 하염없이 미웠던 적도 있었다.
영희씨는 1961년 12월 31일 서울 정릉에서 태어났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가내공업을 하는 아버지 배재원씨(84년 작고)와 어머니 이대희씨(61)사이 2남 2녀중 장녀인 영희씨는 말수가 별로 없는 내성적인 아이였다. 78년 중학교를 졸업한 영희씨는 몸이 약해 2년뒤인 80년에야 여상 야간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힘든 생활이었지만 남들보다 2년 늦게 들어간 고등학교였기에 영희씨에게 학교생활은 더욱 소중하고 기쁜 것이었다.
그해 10월 갑작스럽게 닥친 결핵성 뇌막염이 영희씨의 빛을 빼앗아 가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찾아온 실명(失明). 어젯밤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던 친구의 모습이 영희씨가 본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그러나 영희씨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84년 여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여윈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불행이 닥쳐왔다. 바로 전신마비 증세. 이제 그녀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게 됐다. 85년 인천에 있는 맹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87년 꽃동네로 옮겨오게 된다.
"꽃동네로 들어오던 날이 제 평생 가장 행복했던 날입니다. 건강할 때 조차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얻은 날이며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위안을 주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된 날이랍니다" 손목처럼 가느다란 다리. 앙상한 뼈만 남은 삐죽한 가슴.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는 그 누구보다도 두툼한 사랑이 있다. 사랑이 넘쳐넘쳐 행복한 미소를 짓게하고, 단아한 목소리를 내게 한다.
"여러 사람들이/사랑으로 모여/하나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 색색의 크고 작은 천들이 모여/재봉사의 손에 의해/한 보를 이루어 가듯이//서로 다른/조그만 지체들이 모여/한 몸 이루네//눈과 입 모여/하나 이루고/손과 발이 모여/하나 이루네/하나여서/외롭고 불편하던 것이/둘 셋이 모여/기쁨으로 한 몸 이루네//눈과 손짓으로/사랑스런 표정으로/알아듣고 살아가는 곳//주님의 사랑으로 이루어 지는 곳/이 곳은 바로/당신 사랑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그녀가 지은 시 '당신 사랑이 머무르는 곳에'다. 죄없고 티없고 순수한 영혼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꽃동네를 노래한 이 시는 이 곳을 찾는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영희씨의 맑은 영혼은 그녀로 하여금 하염없이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게 만든다.
그녀에겐 3가지 후회가 있다. 첫째는 효도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걱정만 끼쳐드린 부모님께 대한 죄스러움, 둘째는 동생에게 잘해 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 마지막으로 건강할 때 좀 더 열심히 하느님을 찬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건강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건강할 때 소외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과 나눔을 실천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선 더 큰 선물을 주실것 입니다"
고통의 나락에서 온전한 행복을 찾은 영희씨. 그녀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아니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진정 '사랑의 전령사'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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