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최초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돼 고향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낸 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줬으면 좋겠습니다』
『늙은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저 북에 두고 온 가족들 목소리라도 한 번 들으면 여한이 없겠어요』
6월 13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시작을 지켜보던 이산가족들은 기대와 설렘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척에 그리운 고향을 두고 숨죽여 살아온 50여년의 세월. 죽기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망인 실향민들은 이제서야 그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며 환호성을 울렸다.
이러한 열망을 반영하듯 최근 이산가족들의 가족찾기와 북한주민접촉 신청건수가 폭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15배 정도나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통일부 한 관계자는 『정상회담 발표 이후 실향민들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가운데 회담의 성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남한 최북단에 위치, 남북분단의 상징마을인 경기도 파주시 대성동 전창권(55)씨는 『지난 94년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했다가 김일성 사망으로 무산됐을 때 실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무엇보다 시급한 이산가족 문제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물꼬가 트여서 빠른 시일내에 구체적인 진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1000만 남북이산 가족 중 실향민 1세대는 대부분 세상을 등지고 10~20대에 내려온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이들도 이제 60~70대의 나이로 이산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실향민 세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은 실향민들의 고령화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최우선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런 점을 감안해 새천년 신년사에서 『이산가족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고령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상봉실현 등 민간차원의 이산가족교류 성사를 위해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다양한 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한 바 있다.
황해도 벽성이 고향으로 1.4 후퇴때 부모님과 함께 남하한 김성재(73)씨는 『아버지,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도 북에 두고온 누나와 남동생 생각에 눈을 제대로 감지 못했다』며 『제발 더 늦기 전에 우리 가족의 생사라도 한번 확인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상봉을 주선하는 업체가 처음으로 생겨나고 각종 인터넷을 통한 이산가족 교류사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강원도 속초시에 문을 연 이산가족 주선업체 (주) 백두산에 따르면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는 속초지역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및 상봉을 주선하기로 했다. 의뢰인이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이나 상봉을 신청하면 북한의 가족에 대한 자료를 모아 중국에 있는 본사와 연락, 가족상봉이나 서신교환 등을 주선하게 된다.
통계청이 추정한 집계에 따르면 현재 남한의 52세 이상 이산가족 세대는 모두 123만여명. 그중 69세 이상 고령자가 69만명이다. 연령별로는 △80세 이상 6만 3727명 △75~79세 7만 9830명 △70~74세 12만 1301명 △65~69세 17만 6702명 등이다. 2세대와 3세대를 포함하면 남한의 이산가족만 767만여명이나 된다.
핏줄에 대한 그리움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인가. 1000만 이산가족들의 가슴 속에는 「죽기 전에 꼭 만나야 한다」는 일념 뿐이다. 지난해 소떼가 북한을 향하던 임진각에는 실향민들이 나와 그 행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실향민들이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온 헤어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이대로 묻힐 때 그것은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이어지는 한이 될 것이다.
얼마전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던 평양청소년예술단과 교예단 공연은 여러 가지로 화제가 됐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데도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드는 실향민들의 행렬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들의 애착과 갈망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예술단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직접 김포 공항을 찾아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 정말 고향에 가고 싶다』며 절규하던 한 실향민의 눈물은 보는 이들을 숙연케했다.
평북 삭주에서 9세때 아버지와 함께 월남한 강원도 속초시에 사는 김순봉(66)씨는 원래 이름이 병각이었는데 부친이 월남 뒤 새봉(鳳)자를 넣어 바꿨고 손자들의 이름에도 학(鶴)자를 넣었다며 『새들처럼 고향으로 날아가라고 이름을 지은 작고한 부친의 한이 풀렸으면 한다』고 전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