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강우일 주교)가 6월 「민족화해의 달」을 맞아 마련한 전국 심포지엄은 그동안 한국 교회의 북방선교 활동을 점검하고 새로운 통일사목 방향을 모색하는 장이 됐다. 특히 이날 참석자들은 향후 탈북자, 조선족·고려인 등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 나간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이를 위해 교회 내 뿐만 아니라 타종교와도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나가기로 했다.
■ 기조강연 - 최창무 대주교(광주대교구 부교구장)
"교회는 화해를 위하여 존재한다"
민족 화해는 온 민족이 함께 이우어야 할 지상명령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사명
교회의 사명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인 이후 이 사명을 꾸준히 이행하였다고 볼 수 있다. 교리 공부와 기도문을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우리말과 글을 널리 활용하고 민중의 계몽을 도왔다.
암울했던 민족의 수난기에는 민족의 자주 독립을 위한 노력과 인간의 존엄성과 종교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하여 힘썼으며, 교우끼리의 친교와 신앙 유지를 위한 끈기를 보여 주었다.
민족의 해방과 함께 찾아온 분단과 민족 상잔의 와중에서 가톨릭 사상의 보편성과 교회의 국제적 유대를 체험했다. 그러나 남북의 대치 상태와 공산당의 교회 박해 및 천주교 말살 정책은 많은 순교자를 냈으며 교회로 하여금 자기 방어와 반공정신 강화에 치중하게 하였다. 국제적으로도 냉전체제가 팽배하여 다른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민족화해위원회 출범
민족화해위원회가 출범한 직접 계기는 평양 교구장 서리로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방북을 실제로 준비한다는 것이었으나 민족의 해방 50년이 분단 50년이 됨으로 민족 상잔의 상처와 상호간의 증오와 비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교회의 반성과 회개에서 출발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다.
그동안 교회가 침묵의 교회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북한을 직접 돕거나 갈수는 없었지만 북한과 제한적이지만 교류가 있는 중국, 특히 동북 3성의 조선족과 교류하며 교회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러나 방법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민족화해위원회라고 이름을 걸고 현시점에서 교회가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여 시작한 노력이고 활동이다.
새로 발족된 민족화해위원회는 그의 활동을 세가지 방향으로 정했다.
첫째 기도운동이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평화통일이며 이를 위하여는 남북이 모두 지난 날의 과오를 뉘우치고 미움을 거두며 상호비방과 의심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은 기도로써 하느님과 화해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둘째 평화를 위한 교육을 하는 것이다. 냉전체제에 물들어 있는 남북은 교육을 통해 냉전체제의 편협하고 상호불신하는 생각과 태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선 화해학교를 개설하고 우도 좌도 아닌 중용의 처지를 넓게 알리고자 했다.
셋째 화해와 일치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모금운동을 통하여 경제 기획의 실패와 큰 물 피해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북녘 형제들을 돕고자 했다. 이는 화해를 위한 최소한의 진실성의 표현이며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증거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족화해를 위한 과제와 전망
남북의 분단, 6.25 전쟁 이를 통하여 생긴 1000만 이상의 이산가족, 남북 대치로 50여년간 미움과 불신과 파괴로 상처를 입은 우리 민족의 이 고통을 외면하면서, 또 최근에는 남쪽은 차츰 자본자유주의 체제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북쪽은 경제정책의 실패와 수해로 말미암아 식량의 절대량 부족으로 수백만명이 기아로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원의식을 갖출 수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실제로 우리 민족, 우리 교회의 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으며 선교사명을 이행할 자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점과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전문적 연구와 협조로써 선의의 모든 사람과 연대하여 교회 고유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펴 나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의 일은 어느 한 사람, 혹은 어느 단체의 일이 아니고 온 민족이 함께 이루어야 할 지상명령이다.
이 일을 바로 이룰 때 민족의 번영은 물론이고 이웃 민족을 위한 빛도 될 것이며 축복이 될 것이다.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의 소명이 이웃 민족들의 구원이고 축복이었다면 새 이스라엘인 교회도 그의 사명을 다할 때 민족들의 발전과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교회가 자기 민족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며 기쁨과 희망으로 바꾸어 낼 때 민족의 구원과 평화의 밑거름이 되겠고 구세주 예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하는 길이 될 것이다.
■ 발제 1 ‘분단과 한국교회 : 반성적 고찰’ - 강인철 교수<한신대 종교사회학>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교회운동」이야말로 종교운동의 특수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교회와 사회 사이의 생산적인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천주교 통일운동의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족교회운동」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남한과 북한 교회가 모두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통일운동의 종교적인 측면들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국가권력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정치권력과의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교회의 재통합을 위한 전략과 관련하여, 북한교회와 신자들의 존재를 사실상 부정함과 동시에 남한교회의 일방적인 주도성을 강조하는 「재건주의」노선은 남한 주도의 민족통일이 이루어져 북한에서 자유롭게 선교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하기 이전에는 한계를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재건주의 노선」은 민족 통일 이후만을 고려하면서 그에 대비한 활동에 치중하는 「준비론적인」태도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교회 및 신자들과의 수평적인 「협력주의」가 좀 더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겠다. 수평적인 「협력주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남한과 북한 교회간의 신뢰이며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보다 활발한 상호 접촉과 교류일 것이다.
앞으로 남북간에는 비교적 활발한 경제 교류와 협력이 선행되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치적 교류와 협력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까지 북한선교의 주역은 명백히 북한신자들인 것이다. 이 기간동안 남한 교회의 역할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한의 신자공동체가 선교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서, 성가집, 교육자료 등의 제공을 비롯해 북한인 성직자 양성을 돕는 것 또한 포함될 것이다.
둘째, 북한의 신자공동체가 북한 정부와 주민들의 긍정적인 평판을 얻음으로써 북한사회 안에 뿌리내리고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아지도록 돕는 것이다. 셋째, 현재의 북한선교를 돕기 위해 또한 차우희 직접 선교에 대비하여, 내부 자원을 비축하고 체제를 정비하는 일이다.
현재의 민족화해위원회나 「민족화해 가톨릭 네트워크」에서 이와 관련된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노선에 입각한 「민족교회운동」의 부상은 천주교 통일운동의 커다란 발전을 뜻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 등과 비교할 때, 천주교 통일운동은 아직 허다한 문제 내지 과제들을 남겨 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천주교 통일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내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교회 안에는 강한 분단지향성과 제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성직자와 평신도에게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신자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서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에도 어긋나는 발언과 행동들이 빈발하고, 그런 일들이 일정 기간 반복되면서 어려운 노력 끝에 탄생한 공식 문서가 미사여구만 가득 찬 「죽은 문서」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 발제 2 ‘대북지원 활동의 현황과 과제’ - 정광웅 신부<서울대교구 민화위 본부장>
“대북지원활동은 조용히 계속 돼야한다”
80년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 기념 주교위원회가 특별주교위원회로 설치된 후, 82년 10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의 결의에 따라 북한선교부가 설치되었다.
북한선교부 활동은 83년부터 실천단계로 접어들어 「침묵의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행사를 주관하면서 북한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85년에 북한선교위원회로 개칭하여 주교회의 전국위원회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된다.
이후 96년은 본격적인 대북지원 활동이 시작된 시기였다. 서울대교구 민화위는 대북식량지원을 위해 8월 1일부터 「북녘형제와 국수 나누기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5만5000여명의 신자가 「국수나누기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96년도에 5억여원, 97년도에 49억원 등 50억 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대북지원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97년에는 북한 동포와의 사랑 나눔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3월 27일 6대 종단 및 시민단체와 함께 「북한동포에게 옥수수 10만톤 보내기 운동」을 호소하였고, 춘천교구를 비롯해 광주대교구, 대구대교구 등 전국 교구와 평협, 가톨릭농민회 등 전국 단체의 호응을 가져왔다.
서울 민화위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북녘형제에게 옥수수 1만톤 보내기」「금요일에 한끼 굶기」운동을 펼쳤으며 97년 한해동안 밀가루, 옥수수, 감사 등 25억원에 해당하는 식량과 물품을 보냈다.
한국 교회는 이처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복음적 지표로 삼아 90년대 민족복음화의 길을 충실히 열어 나갓고, 특히 북한사회가 극심한 수해로 수십 수백만 주민들이 기아사태로 죽어가고 고통받는 비극적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교회는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중심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활동을 주도하고, 북한교회에 대해서도 통일사목적 해법 모색을 위해 최창무 대주교의 사목적 방북을 실현시키는 등 획기적인 계기 마련에 소홀함이 없었다.
민족화해는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 새 천년을 맞이한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뚜렷이 부각되는「시대의 징표」이다.
이런 점에서 민족화해운동은 참다운 통일과 평화를 일구어 내는 역사의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는 통일을 원하기 이전에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민족화해운동의 이정표로 삼아 민족화해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 다행히 한국 교회는 2천년 대희년을 바로 앞둔 시점에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를 재탄생시켰다.
이제 모든 교구가 민족화해위원회를 발족시켜 주교회의 기구와 유기적 연관을 지으면서 민족화해위운동을 힘차게 펴 나간다면, 21세기에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물론이고 남북한 교회의 하나됨을 이루어 아시아 복음화와 세계복음화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대북지원 활동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은 연속선상에서 지속적이고 조용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고, 모금활동의 지속적 전개를 위해서 계속적 홍보가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