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콧등이 시큰거린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북한의 식량난과 탈북아들의 문제는 비단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대전교구 사회복지전담 황용연(바오로 예레미야) 신부가 지난달 27일부터 3월 4일까지 일주일간 북한과 중국 국경지역을 둘러보고 왔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한 아동들의 실태와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대전교구 사회복지국에서 만난 황신부는 변경지역에서 목격한 참상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렀다.
"북한을 도망쳐 나온 탈북아들은 변경지역에 잠시 머물면서 허기를 채운 뒤 곧바로 중국 내륙지방으로 숨어들어 갑니다. 탈북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북한 조교(공안원)들의 감시가 강화돼 머뭇거릴 여유가 없어서지요. 현지에 파견된 조교들의 탈북아 색출작업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습니다"
황신부가 현지에서 파악한 탈북아들의 도피 경로는 이러했다. 일단 북한을 탈출하면 변경지역에서 끼니를 때우고는 중국 내륙으로 들어간다. 이들의 도피 발걸음은 흑룡강성이나 요녕성까지, 멀리는 하얼빈과 몽골까지 이어진다. 갈 길이 멀수록 위험부담은 따르지만 조교들의 손길이 그곳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황신부 일행의 변경지역 방문은 지난해 주교회의 사회복지위 상임위원회의에서 처음 거론됐다. 예산 중 일부를 탈북아들을 위해 배정하자는 황신부의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이번 방문도 그들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실질적인 구호 및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선 현지방문이 급선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지 실태를 파악하는데는 변경지역 조선족 신자공동체의 사전 도움을 받았다. 황신부 일행이 방문한 곳은 두만강에서 백두산 일대 변경지역 20여개 마을.
황신부가 전하는 탈북아들에 얽힌 사연 한 토막. "북한을 탈출한 한 여성이 이곳 농촌 청년과 결혼해 숨어 살다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다 북한 조교에게 붙잡혀 북송됐고 이 과정에서 태아는 유산되고 말았죠. 남편은 한이 맺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북한 당국이 밀가루 3톤을 내놓으라고 하자 '도문'의 신자공동체가 이를 마련해주고 여자를 다시 데려왔다고 합니다"
황신부는 현지에서 요행히 북한을 탈출한 20세 안팎의 남여 각 한명과 14세 여자 아이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탈북녀들은 현지 농촌 총각들과 결혼해 정착하기도 합니다. 올해 22세의 이 여자도 그런 경우였어요. 이들 가정은 대부분 순탄치가 못해요. 남편의 폭력과 학대가 심합니다. 우리가 만난 그 여자도 '굶지 않고 먹고 사는게 감지덕지'라고 말하더군요. 14세된 여자아이는 언니와 함께 탈북했다가 조교에 잡혀 북송되던중 혼자서 도망쳤다고 했습니다" 황신부는 그 여아를 자녀가 없는 가정에 입양을 주선키로 하고 현지 공동체에 신변보호를 요청해놓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번 방문에서 탈북아들이 내륙으로 도피하며 잠시 머무는 동안 이들을 도우는 것이 우선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그러한 일을 했는지를 확인하고 검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을 맡아서 할 책임감 있는 이를 찾는 것이 과제죠"
황신부는 "조선족 가운데 적당한 인물을 선정해 일을 맡겨 놓았다"면서 좬"기회가 되는대로 현지를 방문해 결과를 확인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황신부는 또 국내에서 수도회가 진출해 의료사업을 펴고 있는 '팔도진'도 탈북아들의 도피행로의 길목이라고 보고 탈북자들을 위한 지원을 주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는 없습니다. 현지 여건이 허락치 않을 뿐더러 계속 확인하고 보다 효과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탈북아들의 굶주림만이라도 해결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번 방문과 탈북아 지원사업을 위해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1000만원을 내놓았다. 황신부는 이 가운데 일부를 이번 방문길에 탈북아들을 위해 사용했다. 또 서울 평화시장본당 사회복지분과에서 지원한 의류들도 전달하고 왔다.
특히 대전교구 사회복지회와 도룡동본당은 앞으로 매년 500만원씩을 탈북아동 돕기에 쓸 예정이어서 탈북아 지원활동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연길주민 중에 과반수가 조선족입니다. 용정시는 80%가 조선족입니다. 이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에 대한 조선족들의 반감이 의외로 크다는데 놀랐습니다. 현지 관계자들의 오해를 풀어주느라 이틀동안 애를 먹었습니다"
황신부는 통일 이후나 혹은 북방선교를 위해서도 현지인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면서 "현지 당국자들도 의료서비스를 비롯한 복지분야 지원이 가능하다면 건물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등 최대한 협력할 용의가 있다며 매우 적극적인 의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의 성과는 무엇보다 현지에 관한 정확한 실태파악, 그리고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가닥을 잡았다는데 있다.
"회령은 한때 북한내 최대 공업단지 중 하나였습니다만 지금은 굴뚝에 연기나는 곳이 한군데도 없습니다. 굶주림에 견디다 못한 아이들은 남의 구토물에 달려들어 주워먹을 정도라고 합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식량난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하지요" 황신부는 "사회복지위원회가 쓰는 매년 수억원의 해외지원 예산 가운데 일부라도 동포들을 돕는 일에 활용한다면 탈북아들의 극한 상황도 점차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국교회 신자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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