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섭섭한 일이 많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만은 예외인 것 같다. 크게 섭섭했던 기억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남에게 좀더 미소를 띠며 용기와 관심을 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로 인해 섭섭함을 주지나 않았는지….
가슴 아프고 자존심 상했던 적은 가끔 있었던 것 같다. "독선적이다" "외국인이라 잘 모른다" "(외국인이)밥을 먹느냐" 등등의 답답한 오해가 가끔은 나를 섭섭하게 했던 것 같다. 25살에 한국에 들어와 45년 동안 '한국인 보다 더 한국인답게 살아왔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나에게 '역시 나는 이방인인가'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일들이었다. 최근 나를 가장 섭섭하게 만든 사건은 가난한 이웃 할머니가 병원으로부터 당한 착취(?) 사건이다.
내가 사는 마을의 한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계속 진통제 계통의 약을 복용해야 되었나보다. 문제는 언제인가부터 병원에서 「약 구하기가 어렵다」는 핑계를 대며 비싼 약값을 요구했던 것이다. 할머니는 당연히 비싼 약이려니 생각하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약값을 만들어야했다.
한 달에 10만원. 가난한 할머니의 살림에는 벅찬 돈이었다. 어느 날 나는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듣게 되었고 혹시나 조금이라도 싸게 약을 구할 수 없을까하는 생각으로 영등포에 있는 요셉의원을 소개해줬다.
요셉의원에 다녀오신 할머니는 한동안 밥도 제대로 드시지 않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불과 2000~3000원에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울화병이 난 것이다. 귀하고 비싼 약이라 한 달에 10만원은 들어야하는 줄 알고 있던 할머니에게 2000~3000원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그 동안 병원 측에 뜯기고, 착취당한 억울함이 또 다른 병을 불러왔던 것이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병원에서 할머니의 어려운 살림을 잘 몰랐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섭섭함을 감출 수 없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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