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께서는 이미 여러 해 전에 북한을 방문하시기 시작하셨고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김 박사님은 우리 조선의 보배입니다.」하는 말을 들었을 만큼 아주 긴밀한 친분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조선 어느 곳이든지 마음대로 다닐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계셨다고 한다. 수십 번 북한을 다녔고 가실 때마다 적지 않은 구호 물품을 가지고 가셨다고 한다. 당신은 연길에서 사시고 계시지만 당신의 마음은 언제나 굶주리고 있는 북한 땅에 가 있다고 하신다. 한 동포로서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의 한 가족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절대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쪽 북쪽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한 30분 여러 가지 좋은 말씀을 듣던 중에 외국에서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오셨다고 한다. 우리는 저녁 식사에 특별히 초대를 받고 나서 학교를 둘러보았다. 도서관에 들어갔더니 평양에서 보내온 이조실록 전권을 보관하고 있었다. 여기서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총장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초대하셨는데 경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권회장님과 나만이 따로 두만강이라는 식당으로 갔다.
「두만강」은 평양사람들이 직접 나와서 접대하는 연길에서 최고의 식당이었다. 총장님과 함께 나온 대학 실무를 총괄하시고 계시는 부총장이신 이중 박사님과 양회장님, 권회장님과 나 이렇게 다섯이 저녁을 나누게 되었는데 맛갈진 음식하며 특별히 금강산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주먹 두 개정도의 크기가 되는 차돌을 데워서 거기에 고기를 구워 먹는 불고기는 참으로 처음 구경하는 일품이었다. 독한 중국 술 한 병을 다 비우면서 9시가 넘도록 정겨운 담소를 나누고 호텔로 돌아왔다.
수녀님들은 이미 돌아와 계셨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방에 돌아와 보니 아침에 말하고 나갔었는데 침대에 있어야 할 담요가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연길에서 제일 비싸다고 하는 대우 호텔 객실 침대에 담요가 없고 침대 커버를 덮고 자라니 매우 민망스러웠다. 내일 다시 말하기로 하고 감사 기도를 드린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셋째 날 (3월 14일, 주일)
오늘은 도문까지 가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다. 조금 더 정성을 드려 강론을 준비하였다. 약 70㎞ 정도 떨어진 곳이지만 도로 공사를 하는 중이라서 두 시간 안에 갈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9시 정각에 출발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도로 사정이 너무나 나빠서 11시가 조금 넘어 도문 성당에 도착하였다. 전호성(분도) 회장님과 200명에 가까운 신자들이 이미 모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미사를 봉헌할 성당으로 들어갔으나 구경만 하고 사제관으로 지어놓은 집안에 스무평 정도 되는 방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석유 난로가 타고 있어서 춥지는 않았지만 너무 비좁아서 조금 불편한 가운데 미사를 봉헌하였다. 약 2년 전에 왜관에 있는 분도 수도원이 여기에 와서 상당히 큰 성당을 지었지만 방음 시설이 전혀 되어있지 않아 도무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서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성당 방음 장치를 하려면 우리 돈으로 약 800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잘 하면 한 달에 한 번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형편에서 아주 오랫만에 우리말로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의 기쁨은 사뭇 컸던 것 같다. 여기 회장님께서 성당 보수를 위하여 한국에 나온 일이 있었다고 한다. 도움을 주신 여러 신부님들 및 신자들의 이름을 크게 적어놓고 우리를 환영하여 주었다.
미사가 끝난 다음 모든 신자들을 이곳 회장님께서 운영하시는 식당으로 오시도록 초대하였지만 아무도 나의 초대를 받아주지 않아 조금 섭섭하였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신자들의 생활이 몹시 어려워서 누구의 초대를 받을 만큼 여유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식당에 와서 냉면을 시켜 먹는데 정장을 한 수녀님 한 분이 나타나셨다. 연길에서 미사를 돕기 위해서 오신 수녀님이셨는데 한 분은 사복을 하셨고 한 분은 정장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당신은 수도복을 입고 있느냐 하고 물어보니 조선족 예비 수녀님이셨다. 부산에 있는 올리베따노 수녀원에서 옛날 자신들이 세웠던 여기에 새로이 수녀원을 이루어 보고자 진출하여 있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수녀님들은 수도복을 입고 활동할 수 없으나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수녀들은 합법적으로 수도복을 입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의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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