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대한 반항심밖에 없었던 21살의 청년 김춘엽(안드레아·41)씨. 80년 어느 날 일어난 한 사건은 그 젊은이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 서울에서 지내던 그는 부산에 놀러와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다 사소한 시비로 술집 주인과 싸움이 붙었다. 평소 「욱」하던 젊은 혈기에 가득찬 그 청년에게는 순식간에 살인자라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부산교도소에 갇힌 김씨에게 피해자 동생이 찾아왔다.
그 동생의 말은 지금도 김씨 삶의 지표가 되고 있다. 『언니의 못다한 삶까지 잘 살아주셔야 해요. 만약 생명을 건질 수 있다면 주님 뜻에 따라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세요』그리고 성서 한권을 넣어주었다.
처음 선고는 사형. 사형이란 말을 듣고, 죽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단지 21년간 살면서 나쁜 짓만 한 것이 두렵고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한번 만 더 한번 만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하는 바람뿐이었다. 이런 김씨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지 고아로 힘들게 생활한 21살의 김씨에게 2심 판사는 무기징역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15년으로 감형됐다. 새 생명을 얻은 김씨는 하느님의 자녀로 또다시 태어났다.
주님을 알지는 못했지만, 피해자 동생의 용서, 또 교도사목회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가슴 뭉클한 것을 느꼈다. 『나 같은 죄인에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주나』싶은 생각마저 들어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레지오 등 신앙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김씨는 남은 삶을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살리라 마음먹었다. 15년의 수감생활 후, 95년 출소. 당시 교도사목회 임형락 지도신부와 함께 지내며 한 사람이라도 또다시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도록 보듬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96년 8월부터 부산 연산동에 출소자들을 위한 「빈터」를 마련했다.
하지만 전과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처음에는 주위에서 무슨 작은 일만 있어도 찾아와 죄인 심문하듯 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 때문인가? 점차 곱지 않던 주위의 시선도 달라졌다. 빈터를 거쳐간 이는 100여명. 이곳은 부산교구 교도사목회에서 지원하는 돈 160만원과 김씨의 월급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김씨는 아침, 저녁으로 형제들의 밥을 지어주며 뒷바라지 해주는 아내 박정아(세실리아.33)씨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현재 보험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또 여름철이 되면 냉면을 팔아 생활비를 메꾼다. 지금은 서울에서 지내는 아이의 방을 구해주기 위해 「안드레아」냉면을 팔러다닌다. 성실하고 넉넉한 성품 때문인지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곳에서 주문을 많이 한다.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산다는 김씨는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산다.
빈터에서 한 형제처럼 지내는 출소자들을 보며 김씨는 말한다. 『출소자 형제들에게 제일 힘든 것은 사회적응문제죠. 어렵사리 취직을 해도 몇 달 못 견디고,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심지어 가게에서 과자를 살 때도 간첩 취급을 받기도 해요』 하지만 김씨는 사회가 따뜻하다는 것을 안다. 단지 형제들이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벽을 허무는 것밖에 없겠죠』
아이를 낳고야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꼈다는 김씨. 그래서 더욱 그는 지난 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진실한 사랑을 나누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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