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같이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동생 형관(7)이랑 엄마, 세식구가 대여섯평 남짓한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개미마을 세영이의 꿈은 아빠랑 같이 사는 것이다. 개미마을에 오고나서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 부도난 이후 10년 가까이 아빠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세영이에게서 또래들처럼 예쁜 인형을 갖고 싶다거나 좋은 집에서 산다는 등의 꿈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인 듯했다.
그러나 세영이의 소박한, 아니 터무니없기까지한 꿈도 세영이네 동네에서는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것임을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살아본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세영이도 이제 철이 들면 자신의 처지를 꽤나 슬퍼할 지 모를 일이다. 세영이네가 이곳에 이사온 것은 지난 1989년 2월, 역사적이라고 떠들어대던 88올림픽이 막 끝난 무렵이었다. 그러나 세영이네 같은 이들에게 올림픽은 또 다른 삶을 맛보게 한 일로 뇌리에 남아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주거환경 개선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재개발은 그나마 달동네를 전전하던 세영이네와 같은 빈민층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 버렸다. 재개발에 따른 강제철거와 전세값 폭등 등으로 서울 송파구 문정2동 일대로 밀려나온 빈민들이 모여살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비닐하우스촌 중 하나가 세영이가 살고 있는 개미마을이다.
세영이는 백일을 갓 지내고부터 엄마 아빠의 품에 안겨 개미마을에서 낯선 삶을 시작해야 했다. 세영이의 삶은 세 살 터울의 동생 형관이가 태어나고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익숙해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개미마을에서의 삶은 어린 세영이를 또래 친구들보다 빨리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다섯살 때부터 세식구만이 지내야 했던 개미마을에서의 삶은 세영이의 어린 마음에 적잖은 그늘을 남겨주었다. 달동네에 살 때만 해도 있던 주소가 이곳에선 부여되지 않아 세상에 첫발을 들여놓는 초등학교 입학부터 삶의 어려움을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취학연령이 돼도 입학통지서가 나오지 않는 곳, 그런 곳으로 세상은 이곳 아이들에게 첫 얼굴을 비친다. 같은 동네 언니 오빠들 중에는 몇 년씩 늦게 학교에 입학한 이들이 적잖다. 편법을 쓰지 않고 제대로 된 길을 찾아 보다 한해 두해 입학이 늦어진 결과이다. 세영이는 운(?)좋게도 제때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의 집에 임시로 주소지를 만들어 놓은 엄마 덕(?)에 버스로 몇 정거장을 가야 하는 학교이지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학교로 향하는 세영이의 발걸음이 무거운 건 거리가 멀어서만이 아니다. 집 전화도 없고 학교통신문도 안들어 가는 세영이네 마을이 비닐하우스촌이란 사실을 안 학급 친구들이 세영이와 같은 친구들을 따돌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왕따」0순위가 되는 아픔을 세영이는 어릴 때부터 맛보는 셈이다. 『여기서 사는 게 재밌어요. 딴 데 이사 가고 싶지 않아요』
가난하지만 개미마을에선 부침개 한 장이라도 나눠 먹는 인정이 있기 때문에 철 덜든 아이들조차도 불편하지만 따뜻한 삶을 떠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세영이의 엄마 류인숙(39)씨의 직업은 현재 두 개. 보험설계사는 낮 직업이고 밤엔 3시간씩 목욕탕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엄마가 너무 힘들게 일하시는 것 같아요』 일요일을 빼곤 세영이와 형관이가 엄마를 보는 시간은 대개 밤 11시. 이렇게 해서 벌어들이는 5~60만원의 수입이 세영이네 세식구의 빠듯한 살림을 지탱해 간다.
현재 99가구가 남은 개미마을 사람들 중 30%인 120여명이 세영이와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20%인 80여명은 영유아들, 반수 이상이 어린이인 가운데 독거노인도 20%에 이르러 실질적인 노동력이라곤 30%뿐인 3~40대 성인. 그러나 이들 중 누구 하나 게으른 이는 없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입들이 엄연해 세영이 엄마처럼 밤낮으로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도심지 사람들과 다른 유일한 것은 시작이 너무 가난했었다는 것뿐.
세영이는 자라오면서 가슴 아픈 모습도 많이 보아야 했다. 매년 한 차례 인구센서스때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마을 사람들과 관청의 실랑이. 어른들의 고성이 오가면 간혹 마을 사람 중 누군가의 집이 헐리곤 하는 홍역을 치른다. 세영이네 집 앞에 있는 마을 공동 회의장은 수시로 뜯기곤 해서 세영이의 눈에는 강제철거가 연중 통과의례인 양 생각되곤 한다.
『요즘 엄마가 좋아할 일이 생겼어요』 세영이가 그토록 기뻐하는 일은 마을에 공동수도가 들어온 일. 올 4월에 관에서 선심 쓰듯 해 마을 한귀퉁이에 자리잡게 된 공동수도는 그나마 수도꼭지 3개, 수압도 형편없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겐 큰 변화인 셈이다. 이젠 그나마 멀리까지 가서 이웃의 물을 길어오거나 생수를 사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지난 89년 139가구가 모여 마을이 생기고 처음으로 관이 설치해준 공동물인 셈이다. 그간 마을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농사용 전기를 끌어쓰다 과태료낸 게 한두번이 아니었고 그나마 전기세도 일반 가정의 1.5배 이상씩을 내왔다. 얼키설키 엉킨 전깃줄의 그물망 속에 개미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잠자리에 들곤 했다. 지난해 화훼마을 화재도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다. 늘 과부하가 걸린 전선은 정전되기가 일쑤였고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손을 봐야 불을 밝힐 수 있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집 어디에도 전화가 없다. 비싼 핸드폰이 있기 전까진 오지나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세영이와 같은 또래의 이곳 아이들에게선 순박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앞으로 자라서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뭘 하고 싶다는 꿈을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들에게선 삶이 드리운 그늘이 짙게 느껴졌다. 『이곳은/내가 내린 마지막 역/더 이상의 철길은 없다/아니 기차는 없다/이곳에 나를 내려주고 너는 홀연히 사라졌다/기차를 꿈꾸지 않는 건/달려갈 철길이 없기 때문이다/더 이상의 철길이 없는 건/기다릴 역이 없다는 거다…기차가 사라지자…해가 사라지고/내가 사라졌다』는 시인의 고백이 세영이의 얼굴에서 전해져왔다.
이웃은 단지 나 외의 다른 사람으로 그치고 마는 것인가. 도시의 일상에서 쫓겨난 비닐하우스촌 사람들의 삶이 형제로 살아간다는 우리의 믿음에 큰 의문표를 던져주고 있다.
■ 비닐하우스촌의 현황·문제점
화려함 뒤에 감춰진 ‘자화상’
실태 담은 보고서 어디에도 없어
노출 꺼려 관심 사각지대 방치
교육·의료혜택 등 기본권도 무시
서울 외곽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비닐하우스촌에 대한 정확한 현황과 실태를 담은 보고서나 문서는 현재까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없다고 한다. 이것이 비닐하우스촌 문제의 가장 큰 출발점이다.
정부나 관의 공식 통계는 고사하고 일반의 관심 밖으로 사라진 존재로 있어왔기에 비닐하우스촌의 문제는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20여년 가까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으로조차 떠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지만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비닐하우스촌이 집중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우리 경제가 한참 호황을 구가하며 세계적인 경제성장의 성가를 드높이고 있던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칙을 지내며 집중된 세계인의 이목에 노출되기 꺼려했던 부분이 이른바 달동네의 빈민들이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주거환경 개선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된 재개발사업이었다.
마치 군의 소개작전처럼 진행되는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쫓겨난 이들은 다른 달동네를 전전하다 80년대 전세값 폭등으로 또 한번의 결정타를 맞고 도시외곽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들은 주로 시외곽의 황무지나 논밭에 자리를 잡고 집단적으로 거주해 왓지만 무허가라는 이유로 한곳에 수십년을 살아도 주소지가 부여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의료보험 혜택, 의무교육, 생활보호 등은 고사하고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전기, 상하수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아 이들의 삶터는 도심 속에 버려진 오지 아닌 오지로 남아왔다.
현재 송파구를 중심으로 5~6군데 남아 있는 7,800여 세대에 이르는 비닐하우스촌 사람들을 비롯해 40만명에 육박한다고 알려진 무허가 판자촌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주소지 찾기 운동」은 언제나 그래왔듯 현 정부의 인권에 대한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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