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3월 16일, 화요일)
목단강 성당을 찾아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눈이 쏟아진다. 눈발을 헤치며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니 도문 역이 나왔다. 내가 여섯 살 때 여기서 살다가 패주 하는 일본군과 함께 기차를 타기 위하여 넓은 역 광장에서 밤늦은 시간에 고생하던 기억이 새로웠다.
눈이 펄펄 쏟아지는 날에 기차 여행은 더욱 운치가 있었다. 아침 9시 50분 발 하얼빈 가는 기차를 타고 떠났는데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지철근 회장 부인이 연길에서 만들어 온 김밥을 먹으면서 맥주까지 곁들이니 낭만 바로 그것이었다.
오후 2시가 넘으면서 꽤 큰 도시가 나타났다. 그래도 한참 가서 목단강 역에 도착하였다. 말로만 들었던 목단강, 지금 함께 있는 데레사가 사는 곳이다. 조그만 시골 이려니 했는데 인구 100만이 넘는 큰 도시다. 역으로 나가니 고 신부님을 비롯하여 여러 신자들이 마중하여 주었다. 고 신부님께서 사시는 공소 집에 도착하여 일단 짐을 챙기고 나서 미사를 지낼 준비를 하였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고 신부님께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여 주셨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고 또 착하게 살려고 한다면 하느님께서 분명히 우리의 생활을 기쁨으로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을 나누고 미사를 끝냈다. 모두가 자리에 앉아 차와 준비한 과일을 나누게 되었는데 많은 신자들이 돌아간 후에 준비하여 가지고 갔던 미화 4,000불을 신부님께 드렸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시내 구경을 좀 했으면 했는데 신부님께서 지금 짓다가 중단하고 있는 성당부터 가서 보자고 하셔서 모두가 다시 택시를 타고 성당으로 향하였다. 아직도 눈발이 그치지 않고 내리는 중에 새로 지은 성당으로 들어갔다. 아래층에는 성당 사무실과 사제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뒤쪽으로 양로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 2층 성당에 올라가니 150평은 되어 보이는 상당히 넓은 성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준공 허가를 받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 만큼 다 되어 있었다. 그러나 중국 법에 의하면 설계도상에 모든 것이 끝나기까지는 준공허가,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에 아직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면 제대 오른편에 김대건 신부님의 대형 영정을 모셔놓았고 뒤편 성가대 앞에는 대형 103위 한국 성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곳 조선족들을 위한 성전이라서 한국 순교 성인들을 주보로 모시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 성당이 지어지기까지 이러한 사연이 있었다.
인천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용길(요한) 신부님이 우연히 중국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김 데레사라고 하는 부인을 알게 되어 중국 교회를 위하여 뜻 있는 일을 하나 하기로 하여 이 목단강시를 찾아 조경태(안젤로, 94년 작고) 회장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회장님은 간도 일대에 100여 곳에 공소를 세우도록 힘써 온 이곳 천주교회의 기둥 같으신 회장님이셨다고 한다. 매우 가난하게 사시면서 교회 일에만 전념하신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고 전한다. 이신부님께서 조회장님과 함께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중국 교회의 모습을 둘러보시고 여기 목단강에 성당을 지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한다. 인천 송림동 본당을 맡고 계셨던 이신부님은 본당 신자들을 설득하여 모금활동을 벌였고 1996년에 땅을 매입하고 9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잘 진행되다가 우리 나라가 경제 환난을 당하고 환율이 곱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마지막 공사비를 마련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지금 남은 공사는 난방공사 하나만 하면 끝나게 되어 있는데 모자라는 금액은 미화 2만 불만 있으면 충분하게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목단강 시의 모든 우리 조선족 신자들은 한국교회에서 마감하여 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공소로 돌아왔다. 날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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