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선조들의 피로써 우뚝 선 한국천주교회. 목숨까지 버리며 하느님을 증거한 이들은 우리 신앙인들의 큰 자랑거리다. 특히 6·25를 전후로 한 「현대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또다른 의미를 선사한다. 본보는 이들의 행적을 발굴, 기념하고 보존키 위한 한 방안으로 「현대순교자를 증언한다」를 게재한다<편집자 주>
『정남규 동무 있소? 동인민위원회로 좀 가야 되겠소』
1950년 9월 16일 밤, 당시 명동성당 정남규(요한.당시 65세) 총회장의 집에 들이닥친 북한 정치보위부원은 정회장을 끌고 나갔고 그 후 정회장의 행방은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조종국(마르꼬.명동성당 청년회 회장.당시 50세), 김정희(안드레아.혜화동성당.건축업.당시 50세), 김한수(노렌조.경향잡지사 총무.당시 65세), 송경섭(루까.명동성당 청년회 부회장.당시 35세) 등을 포함해 모두 5명의 평신도가 한꺼번에 끌려 갔다. 후손들은 그들이 서대문 형무소를 거쳐 납북된 후 「죽음의 행진」길이나 이름 모를 수용소에서 유명을 달리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25 당시 비교적 희생된 과정이 밝혀진 성직자나 수도자, 신학생들과는 달리 세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들 납북 명동성당 회장단 중 정남규 회장은 전인적 봉사자로서 한국 가톨릭교회내 최초로 양로원을 설립, 운영한 분이다.
정회장은 1886년 5월 서울 옥인동에서 태어나 1903년 경성학당 졸업 후 탁지부 토지조사국 감사원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고 그 이듬해 명동성당에서 영세, 입교했다. 한일합방 후 일제의 수탈정책에 반대해 경북 상주 군수 자리도 마다하고 20여년의 공직생활을 청산한 정회장은 1923년 뮈텔 민대주교의 권유로 명동성당 회장을 맡게 됐다.
정회장은 일제로부터 교회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미등기된 전국 각 교회 재산을 정리, 이듬해 10월 「경성구 천주교회 유지재단」을 설립했다. 이어 「애긍회(愛矜會)」를 조직해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해 1926년 11월에는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로 무의탁 행려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서울 을지로1가에 세웠다.
사재를 털고 아들과 딸의 봉급마저 쪼개 운영하던 양로원은 날로 번창해 6.25 전까지 모두 267명의 노인을 수용했고 그중 235명의 무의탁 노인들이 정회장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조선일보 등 언론에서는 「자비로 양로원 건설」 「묵묵경영 12년」 「거리의 구세주」 등의 제목으로 그의 행적을 보도했다.
글을 잘 썼던 정회장은 1925년 79위 복자 시복을 위해 뮈텔 주교가 「황사영백서」 원본을 교황청에 보내려 하자 이를 필사했다. 그 필사원본이 현재 절두산 순교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황사영백서 필사본으로 이는 아들 정인준(공사가.73세)옹이 1986년 기증한 것이다. 정회장이 피납된 후 중단된 양로사업은 1958년 4월 재단법인 천주교 유지재단에서 서울 성가수녀회로 이관 「성가양로원」으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인준씨를 포함해 당시 납북된 명동회장단의 유족들은 매년 9월 16일 추도회를 갖는다. 1980년에는 납북 30주년 기념미사를 노기남 대주교 집전으로, 1990년에는 40주년 추도미사를 조순창 신부, 김상진 신부(정남규 회장의 외손자), 송진 신부(송경섭 부회장의 유복자) 주례로 명동성당에서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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