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5%정도이며 앞으로도 하락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1988년 농림수산물 수입개방이후 발생한 무역수지 적자는 90년 29억 달러 93년 50억 달러 96년 85억 달러로 급증했으며 그 반대로 양곡 생산량은 90년 701만톤에서 96년 550만톤으로 감소했다.
농가인구도 4백83만 8000명으로 90년 총인구 대비 농가인구 15.5%에 비해 10.8%로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밥중 두끼 이상은 남의 손으로 만든 수입품을 간식까지 곁들여 꼬박 꼬박 먹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농약으로 범벅이 된 밥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밥의 위기다.
오늘의 농촌과 그 원인
한국 농업의 현상황은 한마디로 3무(三無)로 표현된다. 농사지을 것도 없고 농사 지을 사람도 없으며 농사를 짓게하는 정책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 쌀을 제외한 밀, 콩, 옥수수 등 곡물의 경우 91%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더욱이 한중수교 이후 밀려드는 중국산 농산물의 거센 파도는 농촌을 거의 파탄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산업간 소득불균형과 생활환경의 격차로 대표되는 농업과 농촌의 문제는 그 직접적인 원인이 농민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정부는 수출 주도형 공업화성장 전력을 펼쳐왔고 낙후된 기술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풍부한 노동력 뿐이었으므로 자연 저임금정책을 유도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 저임금정책은 저농산물가격 정책으로 이어져 농업부분의 상대적 낙후를 불러왔다. 수입농산물에 의존하는 저농산물 가격정책이 보편화 돼왔다.
다시말해 농정의 목표가 공업부문과 수출부문의 성장을 지원하는 보조적 기능 및 역할에 초점을 맞춰 설정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별농가나 농민복지 증진은 무시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의 눈부신 산업경제는 농업의 희생 위에 꽃핀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농업 희생의 최대 수혜자인 재벌들이 농산물 개방이후 다투어 수입전선에 뛰어들어 다시한번 농민들의 목을 죄고 있다. 정부의 농업정책은 외형상 도시경제 발전에는 크게 기여했으나 개별 농가의 경제적 후생 증진이나 도농간의 균형된 발전도모에는 실패함으로써 다시 일반 국민경제로 부담이 되돌아 오고 있다.
급격한 이농현상이 그것인데 도시 과밀화로 인해 소요되는 공공비용은 엄청나다. 이런 와중에서도 정부는 지난 5월 농어촌 지역의 전교생 1백명 미만의 2055개 학교를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해 이농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줏대없는 농정과 함께 우리의 농업을 위기의 농업으로 만든 또하나의 이유는 소비자들의 비판의식 부재를 들 수 있다.
정부의 저급 자본주의에 물든 소비자들은 대다수가 무조건 싸고 좋은 것을 찾는다. 여기에다 정체불명의 농약으로 범벅이된 수입농산물이 시골을 한번 돌고 오면 우리 농산물로 둔갑하는 상황에서 가격만을 따지는 소비자들은 농민들에게 있어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림돌이다.
또한 수입농산물 판정률이 일본의 27배 미국의 53배나 관대한 검역체계로 이름모를 병해충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들어오고 있고 93년 미국산 수입 밀에서 허용기준치 132배의 카벤다짐 검출, 97년 미국 네브라스카산 쇠고기의 O-157 대장균 검출 98년 수입곡물의 아플라 톡신 초과 검출, 99년 벨기에산 축산물에서 다이옥신 검출 등 잇달은 대형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94년 맹독성 농약의 허용기준 완화에 이어 95년에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선검사 후통관' 체계를 아예 '선통관 후검사' 제도로 바꿈으로써 국민의 건강이 절대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해결방안
이렇듯 피폐해진 오늘의 농촌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은 공동체 정신의 구현으로 집약될 수 있다. 제대로 된 농촌을 만들자는 얘기는 제대로된 밥을 먹자는 이야기다. 독이없는 밥을 나눠먹자는 그것이다. 농촌공동체의 경우 땅살리기, 생명식품 생산 등을 통해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고 도시 공동체의 경우 밥상 살리기, 건강한 소비생활을 통해 생산자의 생활을 염려하는 더불어 사는 삶이 이루어 질때 농촌문제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이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구현에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역시 정부 정책이다. 수입농수산물의 검역을 강화하고 억제하면서 도농간의 직거래 등에 지원하고 농민들의 생활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인식 아래 우리농촌살리기 운동본부는 직접지불제 도입을 주장한다. 직접지불제란 정부가 농업 생산자 개개인에게 직접 소득을 보조하는 지원 제도로 WTO에서도 농가소득 보장, 환경보전, 농업구조 조정 등을 목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제도다. 예를들어 밀의 경우 겨울철 환경정화 기능(한평당 3.5㎏의 이산화 탄소 흡수 2.5㎏의 산소 배출)을 이유로 실시할 수 있다.
현재 우르과이 라운드에서 농업보조금 감축을 주장한 미국, 유럽 등의 농업 선진국들은 이에 따른 농가수입 감소액을 직접지불제로 전환하여 WTO협정에 위배되지않는 각종 직불제를 계속개발해 농가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농가 평균 소득의 20%에 해당하는 연평균 9100달러의 직접지불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고 스위스 농가는 82%가 그 혜택을 받고 있다.
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농촌살리기는 얼마든지 가능한 셈이다. 국가정책의 선행과 함께 농촌살리기의 또하나의 주체는 바로 교회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어머니와 교사'에서 "어떻게해야 농공간의 생산능률의 불균형을 축소 시킬것인가, 농사로써 인격을 발전시키며 자신과 희망을 갖고 미래를 꿈꾸며 살수 있게 하는가 등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고 김수환추기경도 1971년 세계주교회의에서 가난한 농민과 농촌문제를 토의하자고 호소한 바 있다.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의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슬픔과 번뇌"(사목헌장 1항)라는 정신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교회는 농민들이 고도경제성장의 희생자가 되지않고 정당한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지켜갈 수 있도록 대변자와 옹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농촌사목계획을 수립하고 장기적인 사목방향을 제시하면서 농촌본당을 조직적으로 후원하는데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실생활과 연계된 도농생활공동체 운동 등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촌살리기의 주체는 역시 농민 자신들이다.
정호경신부는 "농민 구원을 향한 농민운동의 기본과제는 쩖 스스로 쩗 함께 쩘 삶이다"라고 일갈 한 바 있다. 농민 스스로가 각종 교육활동, 조사.연구활동, 각종 모임 등을 통해 각자 안에서 농업과 농민의 소명을 자각하고 조직연대활동을 통해 공동체성을 확립해 가야 한다.
또한 생산. 소비. 유통 등을 협동하는 공동화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소외된 이웃과 고락을 함께하며 생명농업 실천, 반공해 활동 등을 통한 도시공동체와의 생활연대 추진 등의 현장활동과 농민을 비인간화 시키는 구조적 모순에 맞서 농지제도 개선, 생산비 보장 요구, 농업세제 시장 활동 등의 정책활동을 함께 병행해가야 한다.
결국 건강한 밥은 농민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와 정부, 교회 그리고 우주만물이 어우러져 만드는 협동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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