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기틀을 굳게 다져놓은 인물 중 명동성당 청년회장 조종국(마르꼬.당시 50세)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1950년 9월16일 다른 4명의 명동성당 회장단과 동시에 북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간 것은 당시의 유명한 청년 지성들과 함께 펼친 가톨릭 청년 운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데 큰 이유가 있었다.
조회장이 그날 밤 서울 다동(茶洞)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연행되어간 것은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된다. 9.28 수복 후 제2차 후퇴로 부산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부인 이순자(데레사) 여사의 목격담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밤 10시가 넘어 조회장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이미 잠자리에 든 조회장은 잠옷 차림으로 문에 서서 『누구십니까?』 하고 상대의 신원을 확인하기도 전에 밖에서는 『문 좀 여시우』 라며 거센 말투로 재촉했다. 조회장 내외는 이미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밖에 서 있던 군복 차림의 괴한 서너명이 조회장의 팔을 잡아챘다. 『당신이 조회장이오?』 『네 그렇소만』 이미 마음 속으로 각오는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수난에 당황했으나 조회장은 조용히 이마에 성호를 그으며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했다. 그렇게 끌려간 후 그의 소식을 전해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후손들은 그가 필시 다른 회장단과 함께 서대문 형무소를 거쳐 납북된 후 곧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납치되기 전에 만성맹장염을 앓고 있었다. 매년 재발돼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노모의 심려를 우려해 끝내 수술을 받지 않아 건강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평상시에도 수시로 병이 재발해 고생했는데 심신 모두 극도의 충격을 받았을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그는 납치된 지 얼마 못 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서울 태생인 조회장은 당시 교회에서 운영하던 학교(계성보통학교 전신)을 졸업하고 종로 네거리에 있는 화평당 약국에 취직, 약제업계에 투신했다. 10여년을 한결같이 성실하게 일하는 그를 눈여겨본 사장은 그를 사위로 맞아들여 약국의 모든 일을 맡겼다. 얼마 후 조선매약주식회사를 세운 그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다시 장교동에 대한약행을 설립하고 운영난에 빠진 보성제약을 인수하는 등 제약업계의 일인자가 된다.
사업에 빼어난 수완을 지녔던 그는 교회 중진으로서 가톨릭 청년 운동의 활성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명동성당 청년회 회장으로 가톨릭 청년 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조회장은 장면, 장발, 박병래, 김연권, 류흥렬, 한창우 등과 같은 열성회원들과 함께 지금의 계성학교 자리에 있던 조그만 사무실에 모여 토론하고 교리를 연구했다. 회원들은 나아가 프란치스꼬 제3회를 결성하고 정례 모임을 가지면서 특별 피정 같은 행사도 마련했다. 지난 1990년 8월 주교회의는 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의장 명의의 서한을 발송해 북한 당국에 의해 피납, 순교한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의 생사 여부와 행방 확인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요청서에 평신도들은 한명도 포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분명히 당시 수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이유로 박해를 받았으며 이들의 행적을 밝히고 신앙을 조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6?5를 전후해 박해받아 투옥되거나 행방불명된 수많은 평신도들이 지금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들의 사망 경위, 묘소 확인 등을 통해 성직자, 수도자, 신학생들과 함께 멀리는 시복시성까지 바라보면서 그 정신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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