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종말은 오지 않았다.
이날은 노스트라다무스가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1999년 제7의 달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예언했다는 바로 그날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세계를 휩쓴 노스트라다무스의 종말 예언은 이로써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이제 『제7의 달은 올 7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빠져나갈 구실을 찾고 있다. 이들은 「7의 달」은 2000년 7월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올 8월 13일이나 14일께가 멸망의 시기라고 말한다. 시한부 종말론의 끈질긴 생명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만 해도 수없이 해석되고 재해석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을 되풀이해 왔다.
999년의 세기말 증후군
2000년을 앞둔 1999년의 종말론은 1000년을 앞둔 999년의 세기말 분위기를 다시 한번 되풀이한다. 유럽 사회가 맞은 999년 역시 오늘날과 유사한 세기말에 대한 불안과 흥분, 종말의 두려움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공포는 삶의 쇄신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밤낮으로 속죄의 기도를 바치면서 심판을 대비해 선행과 자선 행위를 실천했다. 반면 광신적인 행위를 일삼아 부자나 고리대금업자, 마술사들을 살해하는 폭도들도 나타났다. 사악한 자를 징벌한다는 것이었다. 종말에 대한 두려움에 자살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종말의 징후들도 있었다. 유난히 전쟁과 전염병이 빈발했고 기근과 이교도의 침입도 빈번했다. 2월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5세가 사망했다.
12월 31일 밤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지상에서의 최후 미사」가 봉헌됐다. 하지만 미사가 끝난 후에도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오지 않았다. 33년 뒤, 종말 증후군이 되풀이됐다. 1033년은 예수가 죽은지 1000년째 되는 해였다. 그래도 종말은 오지 않았다.
되풀이되는 종말론
종말에 대한 공포스런 예언은 계속 되풀이됐고 모두 무위로 그쳤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종말론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금세기 들어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78년 11월 남미 가이아나의 밀림지역 신앙촌 「인민사원」에서 발생한 923명의 집단 자살 사건이다. 93년 4월에는 미 텍사스주 소도시 웨이코에서 「다윗파」 광신도들이 경찰과 51일간 대치 끝에 86명이 불을 질러 집단 자살했다. 이듬해 10월에는 스위스의 두 마을에서 「태양사원」 신도 48명이 집단 자살했다. 97년에는 「천국의 문」 신도들이 UFO를 타고 천국에 가 영생을 얻는다며 집단 자살했다. 일본에서는 95년 3월 20일 종말론을 신봉하는 옴진리교가 도쿄에서 아침 출근길에 독가스 테러를 자행해 8명이 사망하고 3700명이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베트남에서는 93년 10월 「천국직행」을 약속하는 교주에 의해 53명이 집단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11월 신을 자칭하며 종말론을 설교한 교주 2명과 800여명의 신도들이 체포됐다.
국내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87년 집단자살로 끝난 오대양사건에 이어 92년 「다미 선교회」의 종말론 소동, 97년 8월에는 영생교회 목사와 신도들의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생교회의 우종진 목사는 99년 8월 8일 지구 종말이 온다는 시한부 종말론을 폈다.
최근 들어서는 세기말이 IMF와 맞물려 이전의 종말론자들이 다시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과 같이 정확한 날짜를 못박지는 않고 있지만 1999년과 2000년 사이에 반드시 종말이 온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급박 종말론」. 국제종교문제연구소는 이들의 수를 전국적으로 15만명 선으로 추정한다.
종말론, 현실에 대한 거부?
시한부 종말론이 이처럼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기성 종교들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주장들이 가장 많다. 즉 기성 종교들이 지치고 소외된 영혼들을 감싸 안는데 실패함으로써 현세의 탈출로서 종말에 기대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너희를 배척한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너희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이비 교주의 설득은 엄청난 매력을 지닌다. 급속한 사회 변화와 이에 따른 가치관의 혼란, 사회적 불안 등은 종말론 급증의 원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IMF는 종말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IMF 이전에는 주로 무학자나 부녀자들이 종말론에 물들었지만 이후에는 좌절한 중산층과 젊은이들까지 부쩍 늘어났다.
사회 전반에 걸쳐 효력을 발휘하는 절대적 가치관이나 윤리 의식의 부재도 사이비 종교의 횡행에 있어 큰 원인이다.
하지만 누구도 종말론을 처음 대했을 때 즉각 이에 빠지는 이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다가 어느 순간 종말을 확신하게 되고 그후부터는 자신의 확신을 더욱 강화하려는 행동을 보이게 된다. 종말은 구원의 완성
성서에는 세상 최후의 날에 민족들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기근과 지진이 일어난 뒤에 해가 어두워지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세상은 뇌성벽력과 화염에 휩싸여 파멸되는 가공할 재난이 밀어닥칠 것으로 표현한다(마태 24, 3~25, 46 마르 13, 3~37 루가 17, 26~36 I데살 4, 16~17 2데살 1, 7~8 묵시 14, 14~15 19, 11~12 이사 13, 10 34, 4 다니 7, 13)
하지만 이러한 무시무시한 재앙의 묘사들은 세상 종말의 파국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세상을 사랑해 아들까지도 희생했던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다시금 결정적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성서가 말하는 마지막 때는 우주의 물리적 종말의 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가 완전하게 완성되는 때를 이르는 것으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떠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고대하는 시기이다.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종말」에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종말 사건에 바탕을 두고 인류와 세상이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충만함에 이를 수 있도록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말 신앙은 항상 「현재적」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가톨릭 교회는 「대희년」이라 불러 기념하고 있다. 희년은 해방과 하느님의 은총의 해이다. 묶여 있던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해방을 얻는 해이다. 새로운 천년, 그리스도인들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 새롭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구원으로서의 종말을 고대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지향해나가는 시기이다.
■ 대중문화에 깃든 종말 증후군
영화·출판·음악 등 문화계 각 부문에 넓게 퍼져
▲ 영화 「딥 임팩트」에서 혜성의 지구 충돌을 묘사한 장면.
영화 「아마겟돈」,「딥 임펙트」등 혜성과의 충돌로 인한 종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미국 영화 「스트레인지 데이즈」, 스페인의 퇴마 신부를 그린 「야수의 날」, 국내 영화 「퇴마록」등은 대표적인 세기말적 영화이다.
출판가는 가장 대표적인 종말론의 전도사이다. 일본의 고토 벤이 지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해설서는 580만부가 팔려나갔다. 「시간의 종말」은 저명한 지성인ㄷ늘이 종말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을 비교, 논의한다. 「람세스」, 「시의 지문」, 「창세의 수호신」, 「문명의 종말」등 고대 문명과 영웅담을 담은 책들이 세기말 불안감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는 「드래곤 자라」, 「용의 신전」등 소위 「판타지 소설」이 큰 인기이다.
음악 속의 세기말 분위기는 데스 메탈(death metal)과 스래쉬 메탈(thradh metal)에서 발견된다. 종말과 죽음과 공포를 소재로 한 가사와 귀를 찢는 소음이 특징이다. 무대에서 병아리를 죽여 던지거나 돼지 피가 담긴 주머니를 칼로 찌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그룹이 없지만 이들의 새 앨범이 나오면 1만장씩 팔릴 정도이다.
■ 파티마 제3의 비밀, 어떻게 볼 것인가
‘종말 에시지’로 오해 말아야
성서기록·교회 가르침에 위배
가톨릭 교회 내에서 잘돗된 종말 예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소위 「파티마의 제3의 비밀」이다. 이 기록은 1917년 7월 23일 포르투갈 파티마에 발현한 성모에 대한 기록 중 제3부로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어린이 중 루시아가 후에 가르멜회에서 쓴 것이다. 1부는 지옥, 2부는 원죄없으신 성모 신심으로 러시아인들이 회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3부는 교회의 대시련을 예고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제3의 비밀이란 바로 이 3부로 1,2부와 달리 루시아 수녀의 간청으로 개봉되지 않고 있다.
이 제3의 비밀이라는 것이 바로 종말에 대한 예언이라고 종말론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이에 대해 올바른 신자라면 이 같은 허황된 종말론에 현혹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들어 파티마의 비밀레 대한 잘못된 신념이 확산되는 현상에 대해 멕시코 유카탄 대교구의 에밀리오 벨리 벨로자란 대주교는 엄중하게 경고했다.
대주교는 『얼마 전 일부 신자들이 파티마 성모의 메시지에 대한 잘못된 종말론적 메시지를 유포하고 있는것을 발견했다』며 『이러한 메시지는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성서의 기록과 완전히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참된 가톨릭 신자라면 이런 잘못된 저술들이 신자들을 현혹시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교구에서는 소위 「파티나 제3의 비밀」에 대해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