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알차고 재미있는 휴가를 계획하고 떠나지만 집에 돌아오면 「사람구경 」만 실컷 하고 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푸짐한 먹거리와 시원한 바람보다는 조금 힘들고 땀이 흐르지만 우리 조상들의 숨결과 얼이 담긴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잠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자기만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고 직접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문화 기행은 어떨까? 방학을 맞아 많은 청소년들이 해외의 문화를 탐방하기 위해 출국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도 유럽이나 미국 못지 않게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문화 유산들이 도처에 자리하고 있다. 자, 이제 자녀와 함께 지도를 꺼내 놓고 어느 시대, 어떤 곳으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찾아 갈 것인지 테마를 정해보자. 그곳에 가면 우리 신앙선조들이 숭고한 순교정신도 함께 만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안동하회마을
대문열면 갓쓴 양반 나올듯
원형보존 ‘객사’ 박해 증언
지정 문화재가 경주보다 오히려 많은 양반의 고장, 안동. 대표적인 동족마을인 하회마을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을 배출한 곳으로 깊은 내력과 함께 마을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어 민속 마을로 지정됐다.
큰 대문을 열고 마당에 서면 "여봐라"하고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대감이 성큼성큼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안동댐 기슭에 자리한 안동 민속촌에는 을해박해 때 깊은 산중으로 피신해 신앙공동체를 이뤘던 신앙선조들이 배교자의 밀고로 잡혀가 갇혔던 객사가 이곳으로 이전돼 원형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구담성당(054-652-3334) 및 안동시내의 성당에서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
강진
‘남도 답사 일번지’의 소박함
만덕산 자락에는 다산초당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지은 유홍준 교수가 "남도 답사 일번지"라고 칭했을 만큼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운 유적지가 숨어 있는 곳. 강진에 가면 바위 병풍이 우뚝 우뚝 솟은 월출산은 물론 구강포와 바다, 그 곳에 옹기종기 모인 섬들과 갯벌 등 그 화창한 풍광에 놀란다.
구강포 서쪽 기슭 만덕산 자락에는 다산 정약용의 초당이 있다. 신유박해 때 유배되어 와서 18년간 은거한 이곳에서 다산은 개인적인 시련과 고통속에서도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펼치며 '조선복음 전례사''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포'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강진성당(061-432-8884)에서 주일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
강화도
살아있는 작은 국토 박물관
갑곶돈대서 순교자 삶 묵상
단군이래 5천년 역사가 살아있는 작은 국토 박물관이 바로 강화다. 단군 이전으로 훨씬 거슬러 올라가 선사시대 청동기인들의 생활과 신앙을 엿볼 수 있는 고인돌 무덤은 과연 그 시대에 어떻게 그 많은 돌들을 어디서 옮겨왔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단군신화를 만날 수 있는 마니산 참성단, 전등사와 삼랑성도 있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을 피해 강화로 천도(1232년)했던 고종이 39년 저항의 역사를 이루어 낸 고려 궁터에는 인천지역 교우들이 순교한 곳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동헌이 보존돼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로 인해 무고한 천주교인들이 순교했던 갑곶돈대에 서면 역사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던 강화의 말없는 가르침이 들리는 듯 하다. 강화성당(032-933-2282), 온수성당 (032-937-7922), 내가성당(032-933-1853)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며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에는 인천가톨릭대학교가 있다.
서산
넉넉함이 가득한 백제의 미소
해미에선 순교자 찬가가 절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일의 태양을 떠올릴 수 있는 곳. 또한 시원한 바다와 함께 백제의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서산 마애삼존불의 그 유쾌한 미소는 보는 이들에게도 넉넉한 마음을 가져다 준다. 특히 바다로부터 뭍을 지켜야 했던 이곳 서산에는 서해안을 지키는 해미 읍성이 있다.
조선 초기에 건립됐는 데도 돌 축대가 가장 아름답고 잘 보존돼 있는 읍성중의 하나로 꼽힌다. 특히 해미 순교자탑과 순교자 묘가 있는 이곳에서는 성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가 10년의 옥고 끝에 옥사한 것을 비롯 태형, 자리개질, 생매장 등으로 순교한 교우의 숫자가 2천명이 넘었다. 생매장의 현장인 성밖의 개울가에선 순교자 찬가가 절로 나온다.
주일미사는 서산 동문동성당(041-669-1002), 석림동성당 (041-667-7033), 해미성당(041-688-1121)에서 봉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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