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25,40)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의 대장정을 이루어온 지 10년. 나라밖 가난한 나라들의 오지를 찾아 국경을 넘나들며 펼쳐온 교회의 해외의료지원 활동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89년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의 해외의료지원은 예수시대, 가난한 민중을 찾아다니던 열두제자들의 선교여정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국가톨릭병원협회와 가톨릭의사협회의 지원으로 이어져 온 가톨릭 해외의료지원단(단장=김중호 신부)의 그간 활동은 바오로사도의 선교여정을 떠올리게 한다.
고산병, 말라리아같은 향토병은 물론 부족간의 전쟁통을 헤집고 다녀야했던 해외의료지원단의 여정은 애초 소명의식이 없이는 떼기 힘든 발걸음이었을 터였다. 해외의료지원단이 타국의 가난한 이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난 86년. 당시 남미 에콰도르 꽈야낄대교구 빨마본당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최규엽 신부 등 한국인 선교사들이 그해 8월 한국가톨릭의사협회로 의료지원요청을 해오면서 우리 교회가 해외의료선교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이듬해 국내에서 각종 의약품 약1톤(2000만원 상당)을 모아 보낸 것이 첫 지원이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이듬해인 88년 12월에 지금까지 해외의료지원단을 이끌고 있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김중호 신부가 에콰도르 현지 답사를 통해 구체적인 의료지원 계획을 세운 것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대장정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89년 처음으로 4명으로 구성된 해외의료지원단을 구성해 그해 8월 2∼28일까지 어촌마을의 빨마본당에서 운영하는 「파티마의 성모 기념 본당 진료소」의 의료사업을 지원해 1045명의 환자에게 사랑의 인술을 전했다.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이승에서의 삶을 고하는 오지 가난한 이들의 생활은 의료지원단에게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
이듬해부터는 점차 의료지원단의 수를 늘려 조금이나마 도움이 더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매년 여름철 휴가를 반납하고 적게는 2주에서 많게는 한달 이상을 씻을 물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 변변치 않은 곳만을 찾아다녔던 의료지원단의 활동은 이들이 진료했던 환자의 수만 보아도 그 여정이 어떠했나를 짐작할 수 있다.
89년 1045명을 비롯해 90년 1665명, 92년 464명, 93년 1019명, 94년 1420명, 95년 250명, 97년 2160명, 98년 2350명, 99년 2759명 등 지금까지 총 1만 3000여명의 환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 해외의료지원단의 수가 매년 10명을 넘지 못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활동은 가히 땀의 강행군이었다고 할만하다. 대부분이 가톨릭신자로 꾸려져 소명의식이 넘친 의료지원단이었기에 이런 강행군을 견딜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일정 채우기도 힘들었을 지 모를 일이다.
92년 케냐를 다녀온 후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했던 김신부는 『땀 한 방울이 한 사람을 살린다는 생각에 환자들을 돌볼 때는 힘든 줄도 몰랐다』고 회고하고 『조금의 관심과 사랑 나눔이 좀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89∼90년 남미 에콰도르, 92∼95년 아프리카 케냐, 97∼99년 몽골로 이어져 오고 있는 해외의료지원단의 여정은 밟고 다닌 길만 수십만Km에 이르고 있다.
이길에서 이들은 교회가 지원한 X레이 촬영기 한대가 아프리카 한 지역의 자랑거리가 되다시피해 며칠을 걸어 찾아오는 환자도 만났으며, 몽골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의사라는 존재를 알게 된 노인도 만나는 등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상황들을 접했다. 때론 부족간의 극심한 전쟁으로 진료활동이 제약당하거나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랬던 96년은 의료지원단에게 그 민족만큼이나 아픈 상처로 기억되곤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IMF의 여파로 5,6000만원이 소요되는 경비 모으기도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김신부는 하느님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다며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나눌 줄 알고 도움을 청할 때 기꺼이 응하면 하느님나라에 다가서게 된다』고 강조한다. 하느님나라를 넓혀 나가기 위한 전령의 길을 자처하고 있는 가톨릭 해외의료지원단의 이어질 길을 기대해본다.
■ 해외의료지원단장 김중호 신부
“전 교회차원의 선교 필요”
『이제 선교전략도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지난 89년부터 올해로 꼭 10년째 한국가톨릭의사협외화 병원협회의 해외 오지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김중호 신부는 21세기는 선의를 가진 개인이나 단체차원이 아니라 전교구 나아가 전교회 차원의 선교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김신부가 지난 89년부터 돌아본 곳은 남미의 에콰도르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케냐, 그리고 최근 다녀온 몽골 등 3개 국가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모두가 6·25 전후의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오지들은 외과 내과 등 기본적인 의료혜택마저 제대로 받기힘든 곳.
올 7월 20~8월 3일까지 15일간 다녀온 몽골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의사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노인을 만날 정도로 그가 찾아다닌 곳은 상식을 벗어난 곳들이 많았다.
95년 케냐에서는 부족간의 전쟁으로 계획했던 진료활동을 마무리 짓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짐을 꾸릴 정도로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던 김신부는 오히려 지속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독일 스위스 등 선진국에서는 한번 찾은 곳에 대해서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지원을 통해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 부러울 뿐』이라고 털어놓는 김신부는 한꺼번에 쏟아 붓는 빗방울이 아니라 꾸준한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설파한다.
『우리는 능력도 있고 여건도 좋습니다. 다만 무관심하여 많은 훌륭한 선교의 황금어장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꾸준하고 지칠 줄 모르는 활동을 통해 물방울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김신부는 자신을 통해 언전가는 우리의 가슴에 있는 굳은 바위가 뚫리리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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