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혈혈단신으로 이곳 유배지에서 한평생 산 것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삶이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웠으나 그 고독과 시련이 저는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주저하지 말고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제주에서 목포를 향해 고속선으로 약 한시간 달리면 가닿는 섬 추자도. 예부터 '바람가리 섬'이라 하여 후풍도(候風島)로도 불리고 42개의 대소군도(大小群島)가 마치 바둑판에 바둑돌들을 펼쳐 놓은 형상이라 하여 추자도(楸子島)로 이름붙여졌다고도 하는 이 섬은 이웃한 제주도.보길도와 함께 유배지로 이용돼 왔다. 지금은 1000여 가구에 3000여 주민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이곳 산중턱(하추자도 예초리) 한켠에 먼바다를 바라보며 황량히 누워있는 묘 하나가 있다. 묘비석 하나 없고 잡초로 뒤덮여 있어 얼핏보기에도 후손의 손길이 제대로 닿지 않은 묘임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바로 이 묘의 주인공이 황경한(黃景漢)이라 한다. 황경한. 그의 아버지는 황사영(알렉산델)이며 어머니는 정명련(또는 난주.마리아)이다. 그 유명한 백서(帛書) 사건으로 아버지가 1801년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형을 당한 후 할머니(윤혜)는 거제도로, 어머니는 제주도로 유배될 때 젖먹이로 그는 이곳에 버려졌다. 경한은 오씨성을 가진 한 뱃사공에 의해 구조돼 성장했고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이 자리에 묻혀 있다. 한많고 외롭고 기구한 운명을 살다간 사람이다. 그의 묘는 후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교회도 알지 못한 채 140~150년간이나 잊혀져 왔다.
“정난주는 무혈순교자”
그러다 1994년 어머니 정 마리아가 제주교구장 김창렬 주교로부터 '피흘리지 않은 순교자'로 선포된 것을 계기로 순교자의 후손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97년 11월 4일에는 김수환 추기경도 이곳을 다녀갔다. 금년으로 선교 100주년을 맞이한 제주교구는 이미 주변땅 600평을 매입, 성역화를 준비중에 있다.
이곳 공소 김대성 회장(스테파노.수협상무)은 황경한이 살던 집은 불타 없어졌고 그 집안에서 간직해온 젖먹이 때 옷이나 가첩 등이 그때 모두 소실돼 안타깝다고 전한다. 그는 또 일성록(日省錄)과 사학징의(邪學懲義)를 제시하며 경한이 추자도에 오게된 것은 「나이가 2세 이하로 어려 법에 따라 교수시키지 않고 영광군 추자도에 노비로 유배시킨다」는 판결문에 따른 것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지난 8월 20일 이곳 묘소를 찾아 공소 신자들과 역사적인 미사를 봉헌한 기톨릭신문사 사장 최홍길 신부는 『신앙때문에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어 이곳 절해고도에서 한맺힌 한평생을 살다가신 황경한의 그 모진 통한의 삶이 이제는 후손들의 정성과 이 지역 복음화로 열매를 거두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지난해 3월 가톨릭신문사 제3차 전국도보순례지로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순례할 때 풍랑 때문에 추자도행을 포기해야했던 권순기 총무국장은 남다른 감회를 술회하면서 신문사와 제주교구가 계획중인 정난주 마리아제(祭)가 성사되면 더많은 신자들이 이곳을 찾게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1908년 선교사 들어와
1908년 5월부터 선교사가 들어가 전교한 기록이 남아있는 이곳에는 1956년부터 공소가 시작됐고 현재는 75세대 210명이 등재돼 있으나 매월 한번씩의 주일미사에는 40~50명이 참례하고 있다. 교구에서는 이곳의 전교와 육지에서 방문해오는 신자들을 위해 새성전과 피정의 집 등을 건립할 계획으로 이미 403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7천여만원의 공사비를 모금해 두고 있다. 5억원의 공사비에 보태기 위해 금년 가을 멸치젖을 판매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3개월전 새로 이곳에 전교회장으로 부임해온 손영신(오틸리아)씨는 "이곳에서 하루속히 신앙의 불길이 되살아날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한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저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혈혈단신으로 이곳 유배지에서 한평생 산 것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삶이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웠으나 그 고독과 시련이 저를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주저하지 말고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그의 무덤을 돌아서올 때 귓전을 때리던 그의 외침은 이제 울림으로 전신을 휘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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