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은 「대학 교수들의 대희년」이다. 그 사회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사회의 발전과 진보의 방향을 가늠하고 제시하는 이들 교수들을 일러 대표적인 지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톨릭 신앙을 지닌 지성인들은 가톨릭 교회의 복음적 가르침에 따라 그 사회가 하느님의 뜻에 걸맞는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도록 이끌 소명을 갖고 있다. 한국 가톨릭 지성인들의 현주소를 반성하고 새 시대에 걸맞는 가톨릭 지성인들의 소명을 생각해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성인」들이 과연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적절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 안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교육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이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지성인들은 또 과연 신자 대중으로부터 그 신앙과 사회적 신분, 지도적 위치에 걸맞는 존경과 권위를 갖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도 역시 자신 있게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국교회 복음화의 초창기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찾아 나선 이들은 지성인들이었다. 이들은 타락한 세도정치와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신분의 벽을 허물고 하느님 백성으로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기꺼이 순교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 지성인들 중에는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신앙과 삶을 훌륭하게 조화시키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한 훌륭한 인물들이 적지 않게 있었음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60년대 후반부터 정의구현에 앞장선 가톨릭 지성인들은 70년대 들어와서 지학순 주교 구속 이후 본격적으로 민주화의 선봉에 섬으로써 사회 안에서 능히 횃불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러한 헌신은 많은 비신자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반면 일부 가톨릭 지성인들은 시류에 편승해 복음 정신에 거스르는 행위를 일삼으면서 부패한 사회 구조에 합류 하기도 했다. 7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설립된 후 한국교회는 지지와 반대의 극단으로 갈라서 분열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민주화의 진전이 어느 정도 이뤄진 90년대 들어와서 가톨릭 교회는 전반적으로 이전의 활기와 활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급경사를 이루던 교세 성장 속도도 서서히 소개를 숙이더니 급기야는 증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교회의 대형화와 중산층화, 교세 성장률의 감소와 냉담률의 증가 등 부정적인 징후를 보이는 한국교회 안에서 가톨릭 지성인들도 그 소명에 대한 응답이 활력을 잃은 듯하다.
새 천년기의 첫해를 맞은 오늘날 가톨릭 지성인들은 자신의 지성과 이성, 그리고 신앙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어떻게 복음화에 기여하며 교회와 사회 안에서 자신의 소명을 실천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회의 가장 엘리트 집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부조리는 이들이 과연 지성과 양심을 가진 이들인지를 의심케 한다. 정치권에는 많은 신자 정치인들이 활동하고 있으나 이들의 행태에서는 복음의 향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경제분야에서도 가톨릭 지성인들의 정의로운 목소리는 크게 들려오지 않는다. IMF 위기는 극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빈부격차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그치지 않는다. 천박한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적인 것들을 상품화하고 부(富)는 그 자체 하나의 우상으로 자리잡았다.
사회적으로 가치관의 혼란은 더 이상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윤리 도덕은 상대적 가치로 전락했다. 특히 생명공학의 발전, 결혼과 가족 가치의 타락 등 생명 윤리는 바닥까지 떨어져 인간복제까지 시도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관의 형성을 주도하고 그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지성인들, 특히 신앙과 복음의 가르침에 정향돼 학문과 사회 참여를 하는 가톨릭 지성인들은 이제 새 천년을 향한 자신들의 소명을 다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
대희년으로 시작된 새 천년은 가톨릭 신자 지성인, 특별히 평신도 지성인들의 역할과 소명을 절실하게 요구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신앙에 있어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문다거나 세속적인 가치에 매몰돼 복음이 요구하는 소명에 충실하게 응답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와 사회가 복음화로 나아가는 길은 지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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