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조선 배 한척이 폭풍에 밀려 광동(廣東) 해역에 이르렀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허기와 풍랑으로 죽어갔다. 그때 어떤 영국배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하지만 그 중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구조됐는데 그가 바로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이었다. 그리고 그는 건강을 회복하라는 배려로 조선 신학생이 유학하고 있던 홍콩으로 보내졌다. 당시 배의 선주로 무역업을 하던 김기량은 이처럼 폭풍우를 만나 표류하게 됨으로써 천주교에 입문하게된 특이한 경우다. 이곳에서 그는 파리외방전교회 루세이유 신부와 조선 신학생 이바울리노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1857년 세례를 받았다. 김기량은 제주도의 첫 영세자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천주교회의 불모지였던 이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주님의 일꾼으로 활동했다.
교회사가에 따르면 김기량은 표류 이전에 이미 천주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던 터에 조선 신학생을 만나게 되자 물을 만난 물고기 처럼 천주교의 주요 교리를 배워나갔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풍성한 영성을 엿볼 수 있다. 놀랍게도 김기량은 하느님을 알게되면서 이미 순교할 결심을 가졌다. 당시 천주교가 박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그는 루세이유 신부에게 『나는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먼저 천주교 교리를 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귀국하면 박해를 받을지 모르며, 아마도 저를 죽일 것 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천주님을 위한 좋은 일입니다』라고 늘상 얘기했다고 한다. 김기량은 자신이 천주교에 입문하게된 것을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으로 이해한 것이다. 1816년 태어난 그는 양반 출신으로 어느 정도 학식도 갖추고 있었다. 1858년 홍콩에서 귀국한 후 고향에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했지만 처음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기량은 집안식구 20여명을 천주교에 입교시키는 것도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이어 자신의 배에서 일하던 선원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대부분 예비신자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몇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면서 김기량의 신앙적 깊이는 점점 더해갔다. 1866년 박해 때 잠시 교리 공부를 멈추고 있던 그는 잠잠해지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다 그 사실을 안 제주 목사가 관가에 끌고와 곤장을 때리고 책들을 압수한 뒤 귀양을 보내기도 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그는 그동안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절감했다. 김기량은 자신의 의지와 신앙 열정이 탄압에 의해 주춤거렸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겪은 후 그의 신앙심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특히 그는 천주가사를 저술하며 스스로의 순교 신심을 다지기도 했다. 이 가사를 보면 스스로가 얼마나 애틋하게 순교 신심을 키워왔는지를 알 수 있다. 다음은 그가 지은 천주가사의 한 대목.
『어와 벗님네야 / 치명(致命)길로 횡행하세 / 어렵다 치명 길이야 / 평생소원 사주모(事主母)요 / 주야앙망 천당이로다 / 펠릭스 베드로는 능도(能到)주대전하옵소서』이처럼 교리 실천과 복음전파에 노력했던 김기량은 마침내 1899년 체포돼 교수형을 당하며 제주도의 첫 순교자가 된다. 당시 교우 네명이 그와 함께 체포되어 통영 관아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김기량은 온갖 문초와 형벌을 받았으며 한때는 곧 죽을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그런 혹독한 고문 속에서 그는 『나는 치명하여 죽을 것이니, 그대들도 마음을 변치 말고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권면했다. 늘 부족했던 자신의 신앙을 반성하고 순교의지를 다져왔던 김기량. 그는 살이 찢기는 고통속에서도 자신은 물론 동료들까지 격려하며 순교자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결국 관아에서는 장살형(杖殺刑)만으로 죽일 수 없다고 판단해 교수형에 처했다. 게다가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을 두려워했던 관가에서는 시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 김기량이 또한 제주도의 첫 순교자로서 교회사에 남게된 것이다. 제주의 사도 김기량의 순교로 다시 이곳의 복음사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의 가족들이나 그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이들도 이후 어떻게 됐는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김기량이 순교하고 제주에 다시 복음이 전래된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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