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을지로 3가, 지하철 운행을 앞두고 역무원들의 기침이 하나 둘 지하역사로 번지기 시작하면 지난 밤 빈 속에 소주잔깨나 비워냈을 듯한 얼굴의 노숙자들은 무거운 몸을 부리기 시작한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는 이들 중에는 ㅁ씨도 끼여있다. 지난밤 동료 노숙자들과 서울역 근처 지하도에서 무료급식 단체가 나눠주는 국밥을 두 그릇이나 비워낸 그는 기자에게서 천원 짜리 몇장을 얻어 자리를 떴었다. 그나마 이날같이 소주 몇 병이라도 살 돈이 있는 날은 행복한 밤이라고 ㅁ씨는 말한다. 서울역 근처에서 배회하던 그의 잠자리는 언제나 을지로 3가 지하도, 서울역 부근처럼 단속이 심하지도 않고 인파가 적어 조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순이 훨씬 넘어보이는 ㅁ씨, 그러나 그의 나이는 놀랍게도 47세. 8년째 이어지고 있는 힘든 노숙 생활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가족이 있고 직장이 있던 그, 친구들 사이에선 잘 나가는 회사원으로 인정받던 그가 이 생활을 시작한 것은 빚보증을 잘못 서면서였다. 몇번의 재기에 실패하면서 이제 ㅁ씨의 얼굴은 그의 가족도 몰라볼 정도로 변해버렸다. 노숙자들이 돌아왔다. 아니 IMF의 아픈 과거와 함께 우리 기억의 저편으로 애써 지우려 했던 존재의 무거움이 겨울과 함께 되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역 지하도의 노숙자 풍경은 IMF 원년이라던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노숙자들이 누워지내던 자리마다 노숙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나붙고 노숙방지초소에 경찰이 상주하며 노숙자들이 아예 발을 딛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경찰의 감시 눈을 피해 시민 단체의 무료급식과 이로 연명하는 노숙자의 삶은 이어지고 있었다. 10월 말 현재 서울의 전체 노숙자는 3500여명. 서울시와 시민단체 등이 나서 11월초부터 노숙자 수용시설 입소를 위한 상담을 벌이고 있지만 노숙자들은 관심이 없다는 표정들이다. 자활을 위해 시민단체나 상담소를 찾는 이들이 이어지던 지난해와 달라진 또하나의 모습이다. 이제 노숙문제가 외환위기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고질적인 「사회문제」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다. 노숙자들에게 「식당」으로 통하는 서울역, 이곳에 걸어서 닿을 수 있는 서소문, 을지로 등지에 주로 퍼져있던 노숙자들은 이제 혜화동, 미아동, 수유동 등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명 「쪽방」으로 불리는 무허가 여인숙도 IMF가 만들어낸 우리시대의 슬픈 모습. 한평 남짓의 쪽방은 성인 두 사람이 누우면 돌아눕기도 힘들다. 전기장판이 깔리고 낮은 천장에 알전구가 달린 쪽방은 그래도 부지런하거나 운이 좋은 노숙자들의 몫이다. 잠만 자는데 5∼6000원, 그나마 따뜻한 물이라도 나오는 곳은 8000원, 일자리라도 잡아 큰 건을 하면 선납 12∼15만원을 주고 한달은 걱정없이 지낼 수 있다. 이런 「쪽방」이 서울역 근처 남대문경찰서 뒷편을 중심으로 남대문로 인근에 수백곳이 넘는다. 서울시는 12월까지 1500여명 이상의 노숙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IMF가 한창이던 지난해 겨울의 4800여명에 육박하는 수치다. 관계자들은 『날씨가 추워지면서 건설현장에서 일거리가 줄고 있기 때문에 노숙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한다. 지난 92년 2월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해온 요한의 집 김봉현(사도요한)씨는 이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서울역 일대에선 「노숙자들의 대부」로 통하는 그는 IMF라는 시험대를 거치며 누구보다 예리한 눈으로 노숙자들과 신자, 그리고 교회를 꿰뚫어보게 된 이들 중의 한사람. 『IMF전에는 동정심으로나마 가난한 이웃을 돕던 이들이 IMF를 거치면서 나눔의 정신보다는 오히려 개인주의적인 면이 깊어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매달 100여명이 넘던 요한의 집 후원자가 80%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 그의 쓸쓸한 말보다 무거운 현실로 다가왔다. 『현재의 노숙자들은 실직으로 인한 이들이라기 보다 자발적인 노숙자들입니다. 자활의 의지를 잃어버린 이들이지요. 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와 정부의 노숙자정책은 그간의 응급구호 활동에서 자활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본당 차원의 교육을 강조하는 김씨는 좬신자들이 이들을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도록 노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면서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것좭 을 역설한다. 뜻있는 몇몇 단체나 개인 차원에 머물고 있는 노숙자 문제를 보다 큰 그릇으로 담아내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근래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1월 18일 「한국가톨릭실직노숙자복지협의회」의 발족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개별화되고 지역화되어 있는 교회내 실직노숙자 쉼터와…상담기관 등의 한계를 딛고…교회의 정신에 충실히 따르며…실직노숙자들의 실질적인 재활과 자활을 도움으로써 세상사회의 복음화와 인간복지의 증진에 기여한다』는 창립선언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겐 모처럼의 반가운 메아리인 셈이다. 매번 사회단체들의 무료급식이 있을 때면 노숙자들의 틈에서는 낯익은 이가 눈에 띈다. 노숙자 지킴이 백형우(가명·세자 요한· 서울 중림동본당)씨. 97년 IMF가 터지자 서울역으로 몰려들어 뒤엉키는 노숙자와 사회단체들. 백씨는 자칫 큰 문제로 번질 뻔한 문제들의 중간에 나서 해결사역을 톡톡히 해왔다. 『한번은 수녀님께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시다가 낭패를 보실 뻔한 일을 보게 됐죠. 가녀린 수녀님도 어려움을 무릅쓰고 나서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뜻이 있는 노숙자 10여명을 규합해 숙식을 시키며 하루에 적게는 수백명, 많을 때는 1000여명이 넘게 몰려드는 노숙자들 사이의 질서잡기에 나섰다. 술을 먹고 오는 노숙자들을 따로 떼어내 달래서 보내고 힘만 믿고 나서는 이들은 혼을 내주기도 했다며 쑥스런 웃음을 짓는 백씨. 감옥을 수차례 드나들며 신앙에 눈을 뜨게 됐다는 그는 서울역 근처에서 부인과 붕어빵 장사를 하면서도 노숙자 문제라면 일손을 접고 달려간다. 자신의 집에 재워주던 노숙자가 반년을 애써 모은 돈을 들고 달아나 버려도 그 돈이 노숙자의 희망이 되어주길 기원하는 백씨.
노숙자들이 모두 잠자릴 찾아 돌아간 시간, 비닐 커튼 속 알전구 빛이 희미한 붕어빵 리어카 한켠에서 김치 반찬 한가지로 부인과 늦은 저녁을 드는 백씨의 모습에서 감동이 전해져 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희망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장 나쁜 일은 희망을 접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지만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에게 힘이 돼주었으면 합니다』 서울역 근처에 조그만 가게라도 차려 생면부지의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늙고 싶다는 그의 바램은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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