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살았던 역대 교황들 가운데 우리는 몇몇 교황들을 특별히 기억에 담고 있다. 탁월한 학자요 외교가이면서 소위 노동헌장(Rerum Novarum)을 반포해 오늘날 교회의 사회교리적 가르침에 기초를 놓았던 레오 13세 교황(1878~1903)을 우선 꼽을 수 있다.
1959년 1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소집함으로써 2천년 가톨릭 교회사에 혁신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요한 23세 교황(1958~1963)과 전임자의 뜻을 이어 2차 바티칸공의회를 완료하고 교회쇄신의 기틀을 다진 바오로 6세 교황(1963~1978)을 우리는 또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사그라들지 않는 사목적 열정으로 행동하는 교황이라는 애칭을 얻은 요한 바오로 2세 현 교황. 최초의 동구권 출신 교황이라는 점에서 선출 당시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지칠줄 모르는 해외 사목순방과 그가 내놓은 수많은 회칙과 권고, 문헌들은 호사가들로부터 한 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10억 가톨릭교회의 영적 아버지로서 가장 적임자였다는 평가를 듣게 만들었다.
반성과 용서청함
그러나 새로운 세기, 새로운 천년대를 앞둔 지금, 일련의 사건(?)들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바로 교회의 지난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청한다」는 그의 발언 때문이다.
『교회는 역사적 진실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진지한 역사적 탐구에 의해 자녀들의 과오가 발견된다면 교회는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교황은 지난 9월 바티칸 바오로 6세홀에서 전세계에서 온 8000여명의 순례객들에게 이같이 말하고 교회분열을 비롯한 몇가지 사안에 대해 교회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했다. 교황은 이에 앞서 94년 세계 추기경들이 모인 자리에서 2000년 대희년을 위한 준비로 교회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지한 양심성찰을 촉구하기도 했다. 교황은 내년 3월 8일 재의 수요일에 지난 시대 교회의 자녀들이 행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솔직한 자기 반성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이다. 지난 한세기를 살아온 한국교회는 이 땅, 이 현실에 당당할 수만 있을까. 반성하고 용서청할 일은 없을까. 고해성사 보는 마음으로 한국교회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전례의 토착화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자국어 미사가 허용된 뒤부터 오늘까지 한국 가톨릭교회 전례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수차례에 걸친 미사통상문 개정과 교회용어 개정, 기도문과 성가집 개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이들의 노력과 땀의 결실이 빛을 발해왔다.
그러나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늘 풀지못한 매듭처럼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이 토착화 문제다. 서양에서 전래된 가톨릭을 어떻게 우리 토양에 맞게 이식할 수 있을 것인가. 토착화를 위한 토착화가 아니라 성서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듯이 무속과 불교, 유교전통이 뿌리내린 이 땅에서 외래종교인 가톨릭을 우리 심성에 접목시키는 것, 이것은 바로 가톨릭의 근본 자세에 관한 문제이며 한국 가톨릭교회의 비전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토착화 노력을 절반의 실패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많은 학자,사목자들이 논의를 거듭해왔지만 한국교회 구성원 모두를 아우를만한 합의점은 어느 분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사전례는 로마식 일색이다. 전례주기에 따라 거행되는 각종 신심행사들도 한국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기도문과 교회용어를 현대에 맞게 개정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효과를 미심쩍어 하는 이들이 많다. 기도문이 바뀌었는데도 성가에서는 옛 용어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기도문이 계층, 연령, 상황에 맞게 다양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5세 어린이부터 80세 할아버지까지 같은 문구의 기도문을 그냥 외워야 한다면 무슨 감흥이 있을까.
우리 실정에 맞는 상제례예식은 수년간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안(試案)만 나와 있을 뿐이다. 혹 통일된 상제례예식서가 나온다한들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유난히 지역색이 강한 이 땅에서 각 지방별로 상제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서로 보존하고 인정해줄 부분은 무엇이며, 과감하게 통일시킬 부분은 무엇인지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가 선행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연도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국교회 초기부터 선교는 물론이고 문화와의 접촉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가톨릭의 대표적인 기도인 연도가 아직까지 통일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돼야 할까. 우리 사회의 지역색을 교회마저 탈피하지 못한다면 무슨 권위로 이 사회에 복음화를 부르짖을 수 있겠는가.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사목자들의 합의로 실행 가능한 부분들은 하루빨리 용기를 내어 시도해 보는 것이 토착화를 위해 좋다.
어른에겐 큰 절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가령 성당내 적당한 공간에 부모나 조상들의 위패나 유해를 모셔두고 수시로 참례하고 공경을 드리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돌아가신 부모를 기리며 그 앞에서 큰 절이라도 한다면 이것 역시 효의 표현일 수 있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망설이고 있다. 해서 되는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판단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가능한 것은 가능한대로 시행하는 교회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권위주의
한 신학자가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라는 말을 했다. 상당한 신학적 배경과 해설을 요하는 이 표현은 그러나 교회의 본질과 신성(神性)에 관한 교회론적 그리스도론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권위를 강요하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언행일치, 아버지 하느님을 향한 한결같은 믿음으로 권위를 이끌어내셨다. 권위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 압도당했다.
이러한 권위주의의 산물로서 한국교회의 성직자중심주의는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방통행식, 상명하달식 사목형태의 난맥상은 이미 한국교회 구성원 전체가 공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목(司牧)은 우리들의 삶과 신앙이 실현되는 현장이다. 마치 목자를 따르는 양들의 그림처럼, 그러한 이미지의 사목은 오늘날 교회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다. 성직자가 관리자로 혹은 행정가로 군림하고 소위 평신도들은 그에 맹종하는 조직이라면, 예수님은 그런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시종교인 가톨릭이 위로부터 오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래에서부터,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고 전파하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될 때 참된 의미의 사목이 되살아나고 교회의 권위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과연 지금의 본당 조직은 이러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에 걸맞는 것인지, 위로 아래로 쌍방향으로 열린 교회가 되기 위해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한다.
교구간 벽을 허물자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가 독립 교회로 첫 발을 디딘 이후 168년. 그간 군종교구를 포함해 15개 교구가 생겨났고 1명의 추기경과 32명의 주교가 탄생했다. 신자도 조선교구 설정 당시 1만5천이던 것이 380만명으로 늘어나며 선교지교회의 모습을 벗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한국교회의 교구분할 상황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게 분할된 배경이야 논외로 하더라도 현행 교구체제에서 비롯되는 각가지 불균형과 그에 따른 사목의 어려움, 불평등들은 한번쯤 현행 교구체계의 문제점을 되새기게 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금의 교구분할은 우선 극심한 재정적 불균형을 초래했다. 대도시 교구 한 본당의 예산이 지방 한 교구의 모든 본당예산을 포함한 전체 예산을 훨씬 웃도는게 현실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방치해둘 수 밖에 없을까. 『이제껏 큰 문제없이 그렇게 살아왔으니좭, 좬애초에 그렇게 된 것인데 어쩌겠느냐』는 식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모 본당이 교사연수회를 제주도로 간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요즘은 외국으로 간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지방교구 시골 본당신자들은 평생 가보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것이 제주도 구경이다. 이런 불균형을 교회가 앞장서서 극복하고 서로 나누어야 한다. 어렵고 가난한 교구에 필요한 사목 시설을 지어준다거나, 매년 일정액을 지원해주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혹은 시골 신자들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피정이나 교육을 시켜줄 수도 있다. 좀더 쾌적하고 좋은 환경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함께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뿐만 아니라 십수년전 시도됐다가 중단된 교구간 사제교류도 재개돼야 한다. 사제 인력이 필요한 곳에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제들의 교류를 정례화하는 것도 연구돼야 한다. 지역색이 달라서, 혹은 정서가 달라서 등의 이유는 설득력이 없다.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교회 아닌가. 이런 교류를 통해 상대방의 어려움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을 때 다른 여러 분야의 교류도 훨씬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나 혹은 우리만의 편리에 안주할 때 교구간 이기, 교구간 벽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높아질 것이다.
사적 계시 논란
20세기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사적 계시 논란이다. 1950년대 소위 상주 황데레사 사건부터 나주 윤율리아 사건, 전주 문선구 신부 사건 등 사적 계시에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 마리아 신심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면서 비롯된 이러한 논란들은 대부분이 해당 교구 교구장에 의해 철퇴를 맞거나 흐지부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련자들은 그들만의 주장을 거듭하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내적인 기반없이 외형적으로 급성장해 온 한국교회의 병폐이다. 사적계시들은 다분히 기복적인 한국 신자들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지닌채 파급돼 갔다.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교회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예비신자 교리가 신앙교육의 절대적 기회인 한국교회 현실에선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 모른다. 따라서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내적 성숙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한번 내려진 교도권의 결정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순명은 물론이고 교회 당국에서도 보다 철저한 감독과 제재가 필요하다. 최근 모 방송사에서 화제성 특집으로 나주 윤율리아 사건을 다룬 것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교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새 천년의 희망
그동안 한국교회는 눈부실 정도의 성장을 거듭하며 우리 사회의 인권, 정의, 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끊임없는 선교열정은 세기말을 맞으며 더욱 타오르고 있고, 이 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잣대로서의 카리스마를 그대로 유지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세기 한국교회의 삶은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반성이 자책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새로운 도약과 개선을 위한 반성이어야 한다. 솔직한 자기 반성과 고백은 늘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
본란에서 개괄적으로 다루어진 주제들은 앞으로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대안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비판과 반성들을, 그리고 제안들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넓은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교회 구성원 모두의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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