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점심시간 서울 y중학교 양호실. 1층 양호실로 향하는 복도에 청색 교복차림의 「결식」 학생 2~3명이 주위를 힐끔거리며 서 있다. 모든 학생들이 식사를 반쯤 마쳤을 오후 12시40분이지만 이들은 아직 식사를 못했다. 『얘들아 빨리 밥먹어』. 보다 못해 지나가던 선생님이 한 마디 던지지만 학생들은 함께 식사할 친구들이 더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여럿이 모이면 덜 쑥스러울테죠』(김모 선생). 일부 학생들은 교사와 마주치는 걸 꺼려 일부러 점심시간이 다 끝날 무렵인 1시 10분쯤에야 식사를 한다고 김선생은 전했다.
결식아동 15만명 시대. 교육부 통계에 의한 이 수치는 지난해보다 무려 2만여명이 증가한 숫자다. 여기에 미취학 아동 등 파악되지 않은 인원까지 합하면 더 많은 아이들이 밥을 굶거나 끼니를 거르고 있다. 국내 경제는 올해 들어 마이너스 성장이란 경제불황을 딛고 평균 8%라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일궈냈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소득은 훨씬 감소돼 빈부격차는 이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빈곤층이 1천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여파로 우리의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최소한의 생존권마저 빼앗겨가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인 김영재군. 영재는 지난해까지 5년동안 초등학교 4학년인 여동생과 함께 부모와 떨어져 친할머니 밑에서 살아야 했다. 실직한 아버지가 살길이 막막해져 아이들을 할머니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마저 동사무소에서 지원을 받아야 할만큼 넉넉치 못했다. 그래서 끼니 거르는 일이 일상사가 됐을 정도였다. 『할머니께서 그 연세에 일하시러 나가시면 우리 두 남매는 끼니를 제대로 찾아 먹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부모님이 보고 싶었을 때였습니다. 저도 힘든데 어린 동생이 엄마, 아빠보고 싶다고 울때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어요』
영재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무게가 그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듯 했다. 지금도 이 두 남매는 아침을 거르고 점심 또한 급식지원을 받고 있다. 올해 부모와 다시 합쳤지만 새벽에 들어와 오후에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얼굴 조차 보기 힘겨운 상황이다. 점심은 그렇다치더라도 저녁은 더 걱정이다. 영재는 그래서 자신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 동생과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새벽까지 일하다 오신 부모님이 깨실까봐 아침은 먹지 않고 학교에 갑니다. 이 다음에 훌륭한 과학자로 성공해 부모님 호강시켜드리고 동생한테도 맛있는 것 많이 사주고 싶어요』
이런 사정은 학교에서 점심을 급식받는 현진이도 마찬가지. 올해 중학교 1학년인 김현진 양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남동생을 사고로 잃고, 어머니 마저 가출해 아버지와 월세 임대 아파트에서 힘들게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진이 아버지는 길거리에서 테이프 장사를 하며 겨우 겨우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그래서 현진이는 사람의 정이 무척 그립다. 학교갔다 오면 거의 대부분 시간을 혼자서 보내야 하는 현진이. 물론 저녁식사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젠 홀로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있지만, 죽은 동생과 가출한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도 한다.
이런 결식 학생 중에는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도 많다. 중3인 김향유양. 김양의 경우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어머니는 가출하고, 지금까지 몸져 누운 아버지와 초등학교 3학년인 남동생과 살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지 수발을 들면서 소녀가장 노릇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향유는 학교에서 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자기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아버지 식사, 병간호, 동생 챙기는 일까지. 어린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극진히 아버지를 모셨고, 성적도 상위권에 들며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해냈다. 후에 이 일이 전해지면서 향유는 학교로부터 효행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향유는 학교로부터 점심급식을 권유받았지만 사양했다고 한다. 자신의 생활이 힘들기는 하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친구들에게 급식이 돌아가길 바랬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시지만 앞으로 커서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저에게 모실 아버지와 어린 동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현재 결식아동에 대한 지원의 대부분은 민간단체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없이 뜻있는 복지단체나 후원자들의 손에 아이들의 생존권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교회도 이러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의 경우만 해도 지금까지 200여명의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많은 본당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교구 사회복지회의 지원을 받은 서울 월계동, 낙성대, 도봉1동본당 등 여러 곳은 결식학생들에게 사랑의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얼마전 서울대교구 사회복지회에 한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중학교 1학년인 진아영양. 아영이의 경우 아버지는 초등학교 2학년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가출해 동생 진현(13)이와 친할머니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동사무소에서 매월 20만원 받던 것이 이들 가족 수입의 전부. 이러던 중 작년부터 사회복지회에서 진영이 장학금 명목으로 돈을 보내와 그 고마움의 표시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진영이는 편지에서 『더욱 더 열심히, 열심히 개미처럼 부지런히 노력해 무슨 일이든지 잘해내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지난해부터 여러 학교에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는 서울 월계동본당 봉사자들. 매주 월~금요일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아 결식학생들에게 빠짐없이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또한 방학 때는 이들 가정을 직접 찾아 다니며 밑반찬 등 필요한 생필품을 전하고 있다.
한 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희망의 제삼천년기를 앞둔 현재. 2천년 대희년의 설레임과 기쁨으로 세계 교회가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모른채 우리의 많은 아이들이 굶주림과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다. 심지어 『배고픔과 외로움이 없는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어느 한 어린이의 울부짖음이 텔레비젼에 방영돼 눈시울을 뜨겁게 하기도 했다.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결식아동들. 이제 결식문제는 금적적인 문제해결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사회의 보호망 아래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 사회, 교회, 가정이 함께 관심과 사랑을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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