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최북단 백령도. 인천에서 하루 두 번 운행하는 쾌속 여객선으로 4시간 남짓 가야 닿는 하늘과 사람과 땅이 맑은 외딴 섬.
4000여명의 주민 중 60%가 농사를 짓고 8%정도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주 소박한 한국의 전형적인 섬마을이다. 동경 124도 53분 북위 37도 52분, 우리나라 가장 서쪽에 위치한 백령도. 이 외딴 섬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함께 한국 교회와의 특별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앵베르(Imbert) 주교를 비롯해 모방(Maubant), 샤스땅(Chastan) 신부 등이 검거되면서 육로를 통한 선교사의 입국이 어려워지자 해상을 통한 길이 유력한 방안으로 떠올랐다.
1846년 페레올 주교로부터 해로를 통한 밀입국로 개척 지시를 받은 김대건 신부가 눈을 돌린 곳이 이곳 백령도였다. 매년 봄 중국어선들이 모여드는 것에 착안한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를 거점으로 하는 새로운 밀입국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백령도에 도착한 김대건 신부는 중국으로 향하는 선원들에게 조선에 머무르고 있던 페레올 주교의 서한과 입국로 등을 담은 지도를 전달한 후 안타깝게도 백령도 인근의 옹진반도 순위도에서 관헌들에게 체포돼 그해 순교의 관을 쓰게 됐던 것이다.
김대건 신부의 피가 서린 이 해로를 통해 17명의 선교사가 입국해 한국교회의 기초를 닦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후 이들 중 6명이 성인위에 올랐다. 6.25이전 북한 점령 지역이었던 백령도. 북녘땅 황해도 옹진의 장산곶이 손에 잡힐 듯한 백령도는 서울까지(210Km)의 거리보다 평양까지(143Km)가 훨씬 더 가깝다. 반세기가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남북간의 대치 상황에서 백령도는 국가 안보의 최전선.
백령도 주민 대부분은 6.25때 북한지역에서 피란 온 이들, 우리 현대사의 아픔이 이들의 삶 곳곳에 녹아있다. 폭격과 북한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물고자 백령도에 들렀던 이들은 4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껏 백령도 섬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바라보게 되는 고향 땅을 지척에 두고…. 황해도 옹진군이 고향인 전안나(66·백령본당) 할머니. 스무살되던 해 6.25를 만난 전할머니는 형제들과 함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잠시 백령도에 왔다 어쩔 수 없이 눌러앉은 실향민. 『백령도와 육지를 오가는 배가 고향 가까이 지나갈 땐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여요. 고향을 눈앞에 두고 못 가는 세월이 너무 한스럽습니다』
한때 백령도에는 전할머니와 같은 실향민들이 1만여명에 이르기까지 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육지로 떠났지만 백령도를 지키고 있는 적잖은 수의 노인들은 고향이 그리워 차마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백령도 사람들. 아픈 기억을 간직한 이들의 가장 큰 소원은 역시 남북 통일이다.
『얼마 전 TV에서 이산가족 찾기도 하고, 남북이 곧 통일될 것 같아 너무 기뻤는데 이젠 죽기 전에 고향 땅에 묻히신 부모님 묘에라도 가는 게 소원』이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전안나 할머니. 매일 지척에서 북한의 고향 땅을 보며 살아가고 있는 백령도의 실향민들에게 통일은 너무나 멀리 있는 듯하다.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북한 경비정의 영해 침범과 지난해 6월에 일어난 서해교전 등은 통일의 꿈을 키워가는 백령도 주민들에게 너무나 큰 벽이다. 더욱이 서해 교전 등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될 때는 조업활동도 중지되고 주민들의 생활까지 통제돼 분단의 아픔이 이들의 삶이 되고 만다.
17년간 백령본당 사목회장을 지낸 이관성(안드레아)씨는 『백령도의 노인들 중 대부분은 통일이 되면 고향을 찾아갈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간다』며 『남북이 모두 노력해 하루빨리 저들의 한이 풀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도서지역이 그러하듯 백령도에는 2~30대 젊은 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곤 직장과 학교 때문에 육지로 떠나가기 때문.
백령본당 주임 강영식 신부는 『본당의 주일학교 학생들은 100여명 정도 되지만 교리교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직장인들이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며 『바쁜 시간을 쪼개서 교회에서 활동하는 많은 신자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외딴 섬 백령도에도 대희년을 맞이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8월 개통된 인천교구 종합정보망의 화상전화와 고속 인터넷 등을 이용해 신자들에게 대희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백령본당은 「대희년 맞이 특강」, 「쉬는 신자 찾아가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도회지 신자 못지 않게 대희년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강영식 신부는 『지리적 여건상 대희년의 의미를 인식시키기에 힘든 점도 있지만 신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며 『2천년 대희년이 많은 실향민들에게 통일의 대희년이 돼 모두 기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백령도 사람들. 이들은 대희년이 자신들의 아픔을 감싸 안는 참된 해방과 은총의 해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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