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기분에 빠져들고 싶은 유혹에 손가락 움직이는 일조차 꺼려지는 일요일, 김병란 (가명·엘리사벳·82) 할머니를 비롯한 「요셉의 집」(지도=방정영 신부)] 가족들은 여느 날보다 분주한 아침을 맞는다.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백암리, 한적한 농촌마을의 일요일은 요셉의 집 할머니들에 의해 시작된다. 다른 날보다 일찍 시작된 하루의 초입에서 할머니들은 오히려 머리 단장이며 옷 매무새 고치는 일로 모처럼 황혼에서 새벽으로 돌아온 분주함을 즐기는 표정들이다. 할머니들이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개 세마리와 닭장 안의 닭들도 덩달아 이른 아침을 맞는다. 먹이를 주는 할머니들의 손길에서 들뜬 기분을 느꼈는지 이들도 반가움에 겨워 한참동안 할머니들 주위를 맴돈다.
외출의 기회가 거의 없는 요셉의 집 할머니들에게 일요일은 또다른 해방을 체험하는 날이다. 젖어있던 일상으로부터 일주일만의 탈주인 셈이다. 평소엔 꺼내 보이지도 않고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새옷들도 이날 할머니를 따라 모처럼 세상빛을 보게 된다. 봉사자의 손길에 이끌려 차에 오르는 할머니들의 상기된 얼굴에선 회한의 삶을 엿보게 하는 쓸쓸함이 느껴지 기도 한다. 요셉의 집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남성정신지체장애인들의 공동체인 「성가원」. 이곳에서 매주 봉헌되는 1시간 남짓의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나선 나들이길 내내 할머니들은 차창 밖의 세상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 지 모르는 할머니들의 주일 나들이길, 이 길은 할머니들이 세상과 이어가는 대화인 셈이다. 『미사 때 그이 말이야. 원장 수녀님이 없어서 그런지 더 힘이 드나봐…』 미사 중의 사소한 일이며 계절을 뿜어내는 산야 풍경은 미사를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들의 한 주일 내 얘깃거리가 되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삶의 버팀목이 된다. 백암리 마을 사람들은 언제인가부터 자신들의 마음 한곳을 차지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단지 마음씨 착하고 순한 이들이라고 알고 있을 뿐 이들이 오갈 데 없이 버려진 할머니들이라는 사실 을 모른다. 그만큼 티없는 얼굴로 대해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80여년 삶이 이들의 얼굴에서 아 픔의 흔적마저 지워버렸기 때문인가.
현재 김병란, 김형란(가명·마리아·80) 할머니 자매를 비롯해 김순자(가명·수산나·82), 박명자(가명·세레나·58) 할머니 등 황혼을 이미 넘어선 이들이 꾸려가고 있는 요셉의 집에는 그러나 조각조각난 서로의 마음을 부둥켜안고자 하는 할머니들의 따뜻함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깊게 흐르고 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길거리 좌판으로 연명하다 올 3월에 요셉의 집을 찾은 김씨 할머니 자매와 자식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수산나 할머니,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정신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장애를 겪다 2년 전부터 이 곳을 남은 삶터로 삼은 세레나 할머니 뿐 아니라 이곳을 거쳐간 이들 대부분이 사회의 그늘 깊은 곳에 묻혀 존재도 잊혀진 채 지내다 요셉의 집을 통해 세상의 새로운 빛을 보게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지탱해온 것은 삶에 대한 애착이나 가족에 대한 집착, 그 어느 것도 아니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한번은 미사를 빠졌는데 한 주일이 왜 그리도 적막하고 산 것 같지가 않던지…』 마리아 할머니의 한마디. 버림받은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식을 줄 모르는 신앙심, 하느님에 대한 사랑임을 요셉의 집 가족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요셉의 집』 할머니들 마냥 건강이 괜찮은 이들에겐 시골 생활이 괜찮지만 병으로 혼자 생활이 어려운 할머니들은 봉사자가 상주하는 서울 정릉의 자매기관 「유스티노의 집」에 옮겨져 병수발을 받다 하느님의 곁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요셉의 집엔 말못할 걱정거리가 생겼다. IMF 이후 줄어든 후원의 손길이 계속 곤두박질칠 줄만 알았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지도를 맡고 있는 방정영 신부(서울 상계종합사회복지 관장)의 부친이 지난 93년 시골 농가를 인수해 운영해오다 지난 97년 선종한 이후 방신부가 이어 가업처럼 운영해오고 있지만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다. 매년 몇 차례씩 수리를 하며 버텨오고는 있지만 할머니들이 남은 여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방신부의 소망은 얼룩이 질 판이다. 그나마 IMF 이후엔 매주 한번 이상 찾던 봉사자들의 손길마저 끊겨 겨우 한달에 한번 외부인의 정기적인 손길만이 닿고 있는 형편이다.
4년째 매달 한차례씩 봉사를 나와 할머니들의 무료한 생활에 힘을 주고 있는 서울 면목동본당 신혜정 (안나) 박정은(안나)씨는 『자신을 버린 가족들마저 애써 감추며 감싸 안으려는 할머니들을 보며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고 밝히고 『무관심 속에 버려지는 큰 아픔을 지니고 살아오신 분들이 최소한 사랑을 나눴던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생을 마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인가시설이어서 요셉의 집 가족들은 쓸쓸하게 지내야 될 때가 많다. 새천년이니 대희년이 하는 떠들썩함은 딴 세상의 것인 양 할머니들에겐 별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나마 알려진 시설은 명절이나 절기마다 찾는 이들이 있는데다 봉사자의 손길도 꾸준한데 이곳에선 빨래나 자잘한 집안일은 물론이고 김장마저 할머니들이 손수 담그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의 힘은 더욱 빛을 발해 지켜보는 이들을 가슴 뭉클하게 만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노구를 이끌고 손수 닭을 치고 집 앞의 텃밭을 일궈 웬만한 반찬은 자급자족하는 것은 물론 여름 내 인근 산에서 캔 산나물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1년에 네차례씩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 10명에게 장학금을 전해오고 있다.
방정영 신부는 『따뜻한 사랑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새롭게 체험한 이들이 나눔의 기적을 일으키는 요셉의 집과 같은 곳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요셉의 집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할머니들이 적지 않은데 어려운 여건 때문에 모실 수가 없어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놓는다. 내년 봄에는 여름철만 되면 물이 새는 집을 깨끗이 단장해 할머니들을 더 모시고 봉사자도 상근시켜 할머니들을 보다 잘 모실 수 있었으면 하는 방신부의 희망은 혼자 꿈 꾸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대희년의 희망이 함께 하는 삶의 기쁨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이는 요셉의 집 가족들만이 아닐 것이다. 『내년에는 보다 많은 할머니들을 미사에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버려진 아픔을 딛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여생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닐까요』 그늘진 곳, 그 곳에서는 사랑의 손을 내밀어줄 이를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줄 숨은 보석들이 그들 중에 숨어있음을 요셉의 집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의=요셉의 집 (0335)332-7026, 유스티노의 집 (02)941-2070 도움주실분=국민은행 601-01-0611-531 (예금주 가톨릭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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