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라, 순교자의 꽃
『피어라, 순교자의 꽃이여(Florete Flores Martyru)』 조선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Mutel, 1854~1933) 주교의 좌우명이다. 박해시대 혹독한 핍박의 세월을 견뎌야 했던 신앙 선조들의 피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는 말 그대로 순교자의 피를 먹어 꽃을 피우고 순교자의 땀을 먹고 열매를 맺었다.
98년 12월말 현재 한국교회 신자수 380만4094명, 한국 전체 인구의 8.1%. 교세 증가율이 쇠퇴했다. 하나 아직도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높은 신자 증가율과 열심한 신앙.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후 네번에 걸친 대박해와 크고 작은 박해로 1만여명 이상의 신자 들이 목숨을 잃고 교회는 초토화됐다. 이후 그 땅 위에서 순교자의 피와 땀을 거름으로 한국교회는 이제 제삼천년기 세계 교회의 기대를 듬뿍 안고 있는 좥세계 속의 한국교회로 성장했다.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무신론을 표방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학살됐고 수없는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생들이 희생됐지만 이제 남한의 교회는 침묵의 땅 북한 교회는 물론 중국 땅의 복음화를 겨냥하고 북방 선교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세계 교회에서 온갖 지원 물품과 성금이 답지해 어려운 국민들에게 나눠주던 시절, 받기만 하던 지역교회에서 이제는 지진이나 민족, 인종 분쟁으로 생겨난 난민들을 돕기 위해 매년 정기적으로 성금을 모아 어려운 이웃 국가들을 지원하는 나누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해오는 과정에서 굵직한 국제 행사들을 훌륭하게 치러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차례에 걸친 방한과 103위 성인의 탄생은 세계 교회 속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드높였고 이후 해외 교회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국제 행사 유치가 이어졌다.
해외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외방선교회가 창립돼 성직자는 물론 수도자와 평신도 선교사들까지 복음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 나서고 있다. 9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전세계의 화두가 됐던 세계화는 이제 교회 안에서도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국교회는 온 인류, 하나의 하느님 백성으로서 전세계 인류와 함께 숨쉬고 호흡하는 세계 속의 교회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형제애 안에서 하나로 일치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장
머나먼 동방의 빛, 한국의 교회가 세계 교회에 비교적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가 시복되면서부터. 그 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03위 시성식을 거행하기 위해 방한함으로써 세계 교회는 오직 전쟁의 상처만 남아 빈곤과 질병으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만 알던 한국과 한국교회의 성숙된 모습을 보게 된다. 교황은 1989년 다시 한국을 방문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더욱 익숙하게 된 세계 교회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열린 서울 제44차 세계 성체대회에서 서로 만나 성장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확인했다.
당시 세계가 확인한 한국교회의 성장과 성숙은 단지 매머드 행사를 무리없이 치러냈다는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선 민족적 저력,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기본 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웠던 한국교회의 노력이 바탕을 이룬 것이었다. 여기에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대회,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한 교회 쇄신의 노력 들이 더해졌다. 어려운 시대에 세상의 등불이 되기 위해 노력한 한국교회의 당시는 성장과 성숙의 시기였다.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제삼천년기의 전망을 내다보면서 전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를 위한 중대한 사명에 한국교회가 특별한 소명을 받았음을 지적했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눈앞에 둔 지금 한국교회는 이 사명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해외선교
세계교회의 일원으로서 한국교회의 몫은 우선 해외선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순교자들이 뿌린 씨앗은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세계 만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각 수도회에서 한국인 남녀 수도자들을 파견해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펼치도록 했고 일부 교구에서는 사제수가 부족한 교구에 사제들을 파견했다. 일부 외국인 선교회에서도 평신도를 양성, 한국인 선교사로 해외에 파견했다. 특히 평신도 선교사의 경우 한국교회 역사상 공식적으로 처음 1990년에 6명을 파견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명씩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해외선교 파견은 각 교구나 수도회별로 교포들을 사목하는 교포사목, 또는 이주사목에서 시작 됐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 선교사의 해외파견이 본격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했다. 1981년 한국외방선교회가 파푸아 뉴기니에 선교 사제를 처음 파견한 것을 시작으로 선교사 파견이 더욱 강화됐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현재 가장 많이 파견돼 있는 곳은 아시아 대륙이다. 같은 아시아라는 지리적 이유와 함께 아시아인으로서의 심성에 많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선교에도 점점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다른 대륙에 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이 요구되는 아프리카 지역에도 여러 명의 선교사들이 파견돼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 바로 북방선교이다. 북방선교는 북한의 침묵의 교회와도 관련 되어 한국교회의 각별한 관심이 요구되는 분야이고 실제로 여러 교구와 많은 수도회들이 북방선교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방 선교, 보다 직접적으로는 중국과 북한 선교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은 장애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며 직접적인 선교활동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지역이므로 더욱 신중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복지활동의 국제화
세계 속의 한국교회라 할 때 극빈국이나 재난국의 지원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각국 교회는 한국교회가 전쟁의 상처에서 헤어나오려고 할 때 적지 않은 구호물품과 성금을 지원했다. 그후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거쳐 한국교회는 이제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다른 후진국 교회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또 교회는 그 자체로 보편성을 지니므로 인종과 민족, 국경을 넘어선 교회상의 구현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맥락 속에서 세계 각국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의 참다운 인간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외원조를 지속해온 선진국 교회들과 함께 그동안의 경제 발전과 교회 성장에 걸맞는 해외 원조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1992년 주교회의는 이러한 시대적 징표를 읽고 공식적 해외원조결정을 내린다. 그 임무를 맡은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로써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 복지 활동을 지원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게됐다. 매년 정기적으로 해외원조기금을 모으는 한편 지진 등 자연재해나 민족과 인종 분쟁 등으로 난민이 발생 하거나 긴급 구호 자금이 필요하게 되면 그때마다 수시로 성금을 모금,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 복음화의 선봉
한국교회의 역할이 특별히 요구되는 것은 새천년기 아시아 복음화의 사명이다. 2천년 대희년 준비의 일환으로 열리는 대륙별 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를 논의하는 아시아 특별총회가 지난해 4월과 5월 로마에서 열렸다. 그리고 지난 11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노드가 열린 지역에서 후속문헌을 발표하는 관례에 따라 인도를 방문해 새천년기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를 위한 지침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교회」를 발표했다. 아시아 교회는 새천년기 세계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에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인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는 불과 1억2500만명이다. 세계의 비그리스도인 85%가 아시아에 살고 있는 셈이다. 교황은 1995년 마닐라에서 열린 세계 청년대회에서 『제삼천년기는 아시아 복음화의 시대』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새천년기 보편교회가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지역교회 중 하나이다. 중국과 북한 선교는 나아가 러시아 선교와도 이어지며 이들 광할한 대륙의 엄청난 인구를 향한 복음의 선포는 한국교회가 받은 큰 은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참된 세계인은 참된 아시아인
진정으로 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아시아인이 될 필요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교회 속에서, 아시아 교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자신의 소명을 찾고 복음을 선포하고자 한다면 한국적 심성과 전통에 깊이 뿌리내려 체화된 신앙이 필요할 것이다. 흔히 말하듯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한국교회라거나 그저 미사 전례에 국악을 도입하는 데서 그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것이다. 토착화의 과제는 한국교회가 세계 속의 한국교회가 되기 위해 가 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며 한국교회의 그간의 성장과 성숙으로 볼 때 이제는 좀더 본격적으로 관심을 집중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돼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숙고하고 한국적인 정서와 신앙을 양육할 수 있도록 신학과 철학, 문학과 예술,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토착화된 신앙의 기틀을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에만 한국교회는 내적인 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 세계교회 속에서 나름대로의 소명을 가장 충실하게 실천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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