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팀은 이번 방문을 통해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와 IMF 구조조정 관련 사회-정치적 상황에 대한 직접적 체험과 지식을 넓히는 한편 경제위기 당시 한국의 경험과 성찰들을 태국과 인도네시아 교회 활동 단체들과 나누었다.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한국 천주교 연대는 아시아 경제위기의 심각성과 경제정의 구현을 위한 지속적인 교회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지난 해 11월 자율적으로 결성된 네트워크로 국제연대팀의 이번 방문에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 교회 단체간의 지속적인 협력문제 또한 논의됐다.
태국교회의 사회사목 활동 중 특기할 만한 사항은 주교회의 개발위원회(CCTD, Catholic Council of Thailand for Development) 산하의 교구별 사회활동센터(DISAC, Diocesan Social Action Center) 가 교구의 각 지역에 직접적이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친다는 점이다. 태국교회는 농촌과 도시 빈민, 여성, 외국노동자 등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자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에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태국의 수도 방콕 남쪽에 위치한 낭울리암(Nongque leam)공동체. 1993년 7명의 농부에 의해 시작된 이 유기농 공동체에는 현재 30여가구가 상주하며 사탕수수, 채소, 과일 등을 재배한다. 방콕교구 사회활동센터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 공동체에 87000BT(원화 350만원 정도)를 지원했으며 방콕 근교의 유기농 공동체 6곳을 지원 중이다. 한편 이 공동체들은 사회활동센터를 중심으로 정보교환 등의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방콕근교 슬럼가 역시 방콕교구 사회활동센터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난 97년 청소년실업과 마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주적으로 결성된 이곳 롱켐 공동체에서는 정부, 경찰, 교회의 협조 아래 의료사업, 공동기금 조성, 일자리 창출 등의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실제로 많은 청소년들이 마약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얻게 됐다고 전했다. 11개 마을의 대표들은 한국 방문팀을 비롯 우리와 동행한 방콕교구 사회활동센터 실무자에게 교회의 경제위기 극복 활동에 대한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프라차송로(prachasongkroh) 거리의 태국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개발위원회 사무실은 예상과는 달리 빈민가 한 모퉁이 초라한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태국의 사회사업 관련 교회기관들이 주교회의 건물에서 나와 활동현장에 있는 것에 대해 주교회의 정평위의 한 실무자는 『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호흡하는 일이 요구되며 이 곳 빈민가를 벗어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 거리에는 신용협동조합과 가내 하청 노동자를 위한 NGO들의 네트워크인 홈넷 타일랜드(Homenet Thailand) 등 기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 IMF 이후 태국 국민이 겪어야 했던 경제위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해외자본이 떠나가자 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가내 수공업 형태의 하청노동자로 전락하고 예전과 같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열악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도시에서 일거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두드러진 이농현상도 태국이 거쳐야 했던 큰 변화 중 하나다. 교회는 제빵, 수공예품 제작 등 각종 사업을 개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사회 저변에서부터 천천히 펼쳐가고 있다. 가톨릭신자가 전국민의 1~1.5%인 현실에서 소수인 가톨릭 교회의 선택은 종교의 구분 없이 사회가 가장 필요한 부분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오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었다.
불안한 정치 상황으로 인한 지역, 종교간 갈등이 연일 외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경제위 기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불길에 그슬리고 창유리가 깨진 건물이 방치돼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도로변은 구걸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인도네시아 주교회의 산하 위기센터(Crisis Center of Indonesian Bishop Conference)의 이스마르토노 (Ismartono) 신부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아직도 우려의 눈으로 국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 이라고 내비치며 불안과 갈등의 요소가 산재해 있음을 전했다. 또한 그는 위기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이후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3500명에 달한다고 밝히고 인도네시아 교회가 타종교와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역설했다. 위기센터에서는 종교간 갈등으로 인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종교간대화위원회, 교회일치위원회 등에서의 중재활동으로 종교간 이해와 협력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교회 역시 사회사목 관련 기관과 각 위원회의 실무자들의 활발한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국민의 단 3%가 가톨릭 신자이나 활동력이 방대해 교회와 사회에서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설명이다. 까리따스 인도네시아(LPPS)는 현재 370여 개의 사회 일반의 NGO와 연계해 교육, 보건, 사회경제 개발, 사회정의 촉진, 공동체의 자립, 단체간 연대와 협력 등의 각종 사업과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까리따스(LPPS)가 설립 당시부터 지원해온 노동단체인 YBM은 자카르타 근교에 실직자들을 위한 소득증대 사업을 펼치고 있는 단체다. 양어장, 봉제, 양잠, 유휴지경작, 수공예품 제작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 실직자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주된 활동이다. 가톨릭신자로 81년 이 단체를 설립한 타르모노(Tarmono)씨는 생산물의 판로모색 등 마케팅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하는 한편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 일부의 부당행위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카르타에서 3시간 거리의 보고르에서 보고르농업대학을 졸업한 18명의 청년단체인 ELSPPAT은 유기 농장을 경영하며 유기농법과 신종작물 재배법을 연구, 보급하고 있었다. 전원 가톨릭 신자인 그들은 농민 속으로 들어가 모든 계획에서 실행, 평가까지를 농민들과 함께 하며 소비망 구축, 직거래, 주문생산 등을 모색하는 등 농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일반 농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 과제라고 판단, 만화를 통한 홍보활동을 펼치는 등 꾸준하게 교육을 이어나가고 있다. 모든 학생이 가톨릭 신자인 관계로 회교도인 지역민에게 의심을 받았으나 현재는 그들의 종교의식에 초대받을 정도로 깊이 있는 이해와 호응을 받고 있다고 청년들은 전한다.
IMF 경제위기 해결방법에 대해 인도네시아 주교회의 산하 경제위원회(Economic commission of IBC)의 다투스(Datus) 신부는 가톨릭 단체의 노력들은 문제해결에 역부족이라고 말하며 회교와의 연대 또한 필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인도네시아 지역교회가 종교에 관계없이 지역공동체 개발을 위한 공동기금을 마련하고 있다좭고 밝히며 3000여 개의 섬들, 도시와 농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긴밀한 네트워크가 갖추어지는 것이 필요하나 이를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했다.
◆ 인도네시아 까리따스 사무총장 수나르카 신부
“지역 공동체의 자립이 최선의 목표”
▲ 인도네시아 까리따스 사무총장 수나르카 신부
인도네시아 까리따스(LPPS, Institute of social research and development) 사무총장 수나르카(Julianus Sunarka) 신부는 『시장가격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도시 서민층들이 IMF 경제위기로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IMF의 큰 원인이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격인 LPPS의 사업목적이 「자립」(self-reliance)에 있다고 설명한 뒤 다른 국가나 단체의 원조 없이 지역 공동체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IMF 이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여러 단체간의 네트워크 형성 등 연대 강화에 대한 방안입니다. 각 지역이 스스로 소규모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역자원을 개발해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목표입니다』
LPPS에서 지원하고 있는 YBM의 활동상황을 자립지원활동의 예로 소개하는 그는 앞으로도 사회정의, 인적·물적 자원개발, 연대와 사회적 관심사 육성, 공동체의 자립 지원, 단체간 커뮤니케이션 촉진, 국내외 개발 단체와의 협력 등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LPPS는 현재 370여 개 NGO와 연계해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여성개발, 교구간 연대 자금, 식량 등에 관한 12개 프로그램을 추진해오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함께 동티모르 구호, 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억 천만의 거대한 인구, 7000여㎞에 이르는 인도네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교회단체가 활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가 자립하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날까지 저희의 활동은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