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움 그리고 결실의 계절. 이 가을 한껏 넉넉함을 나눌 수 있는 곳이 있다. 경남 산청 「성심원」.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이곳은 나환우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요즘 밤줍기가 한창이다. 밤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선 나즈막한 뒷동산에는 땀의 결실인 탐스러운 밤송이들이 가득하다. 뾰쪽뾰쪽한 가시 속에 영글은 밤들이 여기저기서 반짝반짝 빛을 낸다. 40년전. 이 마을을 찾은 나환우들이 6000평 넓은 땅에 2만 그루의 밤나무를 심었다. 언젠가 결실을 거둘 그날을 꿈꾸며.
햇살 눈부신 가을날의 오후. 곳곳에 빨간 장갑과 막대기를 들고 밤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눈에 띈다. "『, 여기 밤송이가 수북해』하는 소리가 건너편 에서 들린다.『엄마, 이것 좀 보세요』한 아이가 가시사이로 얼굴을 내민 밤송이를 들어 보이며 신기한듯 말한다. 「성심원」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10월 14일까지 밤줍기 행사를 마련한다. 이러한 행사를 갖는 이유는「성심원」식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기 위해. 현재 이 마을에는 320여명의 나환우들과 함께 성직자, 수도자, 직원 등 400여명의 식구들이 살아가고 있다.
성심원 식구들이 밤을 줍기에는 사실 어려움이 많았기에 근래 몇해 동안 성심원 뒤 동산 전체를 농협과 계약을 맺고 맡겼다. 하지만 「계약」이라며 성심원 식구들을 동산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다. 40년전 꿈이 담긴 그곳을. 그래서 올해는 직접 수확하러 나섰다. 결실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성심원 가족들에게 사랑을 모아 줄 봉사자 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주님의 뜻인지 지난 달 25일부터 봉사자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사랑의 결실들을 모아 한꾸러미씩 들고 내려오면 크기별로 선별한다. 40kg 한부대에 8만원 정도. 하루 반나절 땀흘려 얻은 수확은 적어도 7부대가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사랑의 나눔으로 성심원 식구들과 봉사자들은 더 큰 결실을 얻는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봉사자들의 가슴에는 넉넉함이 그리고 두 손에는 저마다 탐스런 밤 들이 담겨져 있다. 뒷동산에 흘린 봉사자들의 구슬땀이 가을 햇살을 받아 영롱히 빛을 발한다.
※문의=(055)973-6966 산청 성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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