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7일, 때이른 새벽녘. 중국 심양에서 단동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박창일 신부 (예수성심전교수도회)는 내일 북한 천주교회로 보낼 구호물품 정리에 밤잠을 설쳤다. 기쁨과 설레임, 굉장히 부족한 물량이지만 동포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 만으로도 박신부는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
정의구현 사제단 북녘동포돕기 위원장, 중국 선교와 북한 돕기에 앞장서고 있는 가톨릭 명도회 지도신부, 인천교구 시노드 통일사목 분과위원장, 그리고 인천교구 연안본당 주 임신부. 그가 맡고 있는 직함들이다. 박신부는 본당 사목자로 있으면서도 사제의 양심으 로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동포들을 그냥 볼 수 없어 이 일에 뛰어들게 됐다. 「홍길동」 「박바람」. 동료 사제들이 너무나 바쁘게 활동하는 박신부를 보며 붙여준 별명이다. 두달에 한번 중국방문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는 박신부. 그는 가톨릭명도회 지도신부로 있으면서 중국교회를 통해 북측에 식량, 생필품, 여성 생리대 등 구호물품을 꾸준히 보내고 있다.
중국교회 관계자와 친분
박신부는 한번씩 중국에 갈 때마다 심양, 단동, 연길 등 여기저기를 다니며 강행군을 펼친다. 그리고 중국교회를 통한 북한 교회 지원을 절감하고 중국교회 관계자 및 사제들을 만나 친분을 쌓고 있다. 최근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구유조차 마련하지 못한 단동성당에 예쁜 구유세트를 선물하기도 했다.
북한에 보낼 생필품, 의류 등은 거의 중국에서 구입한다. 특히 요즘같은 겨울에 경유, 양말, 내의 등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박신부는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북한교회에서는 지속적으로 구호물품을 보내줘야 반깁니다. 이제는 2년 넘게 지원을 하다보니 서로간에 많은 신뢰가 쌓였어요』
『한국교회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창일 신부. 대희년의 의미가 원상회복이듯 남북으로 갈라진 이 현실을 회복하지 못하면 진정한 대희년 의 의미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박신부의 지론이다.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동포들과 나눌 때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 니다. 이를 통해 서로간의 오해와 편견을 풀 수 있겠죠. 순수한 신앙인의 마음가짐으로 도울 때 반드시 그런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정의구현 사제단은 지난 95년 1월 총회에서 북한동포 돕기를 결의하고 이후 각 교구, 본당, 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성금을 적립해왔다. 하지만 당시 개인, 단체 등이 북측을 도울 수 없다 는 정부 방침에 따라 도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신문에 보도된 한줄의 기사가 박신부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했다. 기사는 홍콩 까리따스에서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보내던 배가 좌초됐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기사 를 보고 홍콩 까리따스에서 북한을 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즉시 그곳에 의사를 타진했다. 비로소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박신부는 가슴벅찬 감격에 밤잠까지 설쳤다.
1인 1만원 1000일 운동
그는 3년 전부터 인천교구 연안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처음 부임해 본당 신자들에게 요청한 것이 바로 「1인 1만원 보내기 1000일 운동」. 박신부는 신자들에게 『1만원이면 북한 동포 한 사람이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북한 동포돕기에 동참해줄 것을 권고했다. 또한 본당 뿐만 아니라 최대한 여러 곳을 다니며 북한 현실을 담은 비디오와 강연 등을 통해 그들의 절실한 현실 알리기에 최선을 다했다.
처음 이러한 그의 모습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본당 사목이나 잘 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사제가 저렇게 나서느냐?』 혹은 『우리 주위에도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 이 많이 있는데 왜 북측 사람들까지 우리가 도와야 하느냐?』 『우리가 북을 돕는다고 해서 제대로 전달되겠느냐』 등. 신자들 뿐만 아니라 동료 사제들 중 일부도 박신부에게 질시를 보냈다. 박신부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어차피 넘어야될 장벽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알렸다. 그리고 뜻을 같이한 신자들에게 한치의 의혹도 사지 않기 위해 북측에 전달된 영수증을 본당 게시판에 그때마다 붙여놓고 있다. 즉 분배의 투명성을 정확하게 제시해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다.
순수한 열정에서 헌신하는 한 사제의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처음에 부정적으로 보던 많은 이들이 서서히 그의 뜻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어시장에서 장사하는 신자들이 북한동포돕기 봉투를 시장상인들에게 돌려 성금을 모금해 박신 부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박신부는 이제 본당 신자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며 웃음을 보였다.
『우리나라 어려운 이들과 북측 주민들이 힘든 것은 그 질이 다릅니다. 그들은 정말 생존의 문제가 달렸다는 것을 신자들에게 강조했어요』
통일의 그날까지 몸바쳐 투신하겠다고 힘주어 말하는 박창일 신부. 그는 한손에는 성경책을 또 다른 한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목자가 제대로 사회를 식별해야 바른 얘기를 신자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박신부 는 여러곳의 강연과 본당 사목 그리고 인천교구 시노드 통일사목 분과위원회 사업, 또한 가톨릭 명도회 지도신부로 그야말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를 열며 박신부는 간절한 소망 한가지를 가져본다. 바로 한국교회 신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통일과 북한동포 돕기에 관심과 사랑을 보내는 것. 그는 이러한 노력과 염원이 모여 마침내 통일에 대한 희망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이 일이 바로 하늘과 교회, 신자 그리고 나라를 위한 봉사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나갈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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