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희년」과 함께, 새로운 천년대가 시작되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한국교회는 지나온 여사 속에서 교회가 수행한 역할을 자성하면서 새 천년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서는 새 천년에 대한 전망이 저마다 다른 것 같다. 21세기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리라는 희망적인 견해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있다. 한국교회는지난 세기 동안 세계 선교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나타냈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를 능동적으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세상 흐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그에 따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톨릭신문사로부터 학술상을 받았던 심상태 신부와 김진소 신부 그리고 가톨릭신문사에서 실시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의 연구 책임을 맡았던 강인철 교수를 모시고, 노길명 교수의 사회로 새로운 세기가 가져올 변화의 모습들을 진단하면서 그에 대한 교회의 대처 방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99년 12월 7일 오전 10시 본사 서울취재본부 회의실에서 좌담을 가졌다.
‘집안잔치’ 대희년 안되게 농어촌·빈민 교회 지원을
희년 정신 생활화 방법은 신앙선조들의 모범 실천
중세기적 질서는 외면·붕최 교회구조 수평·개방화 필요
기공·초월·명상 급속 확산 종교문화의 흐름 변화 우려
젊은이들 사이버 공간서 정신적 영신적 갈망 충족
묵상 잠심 수행법 개발로 신앙 기쁨 통로 마련해야
미래는 정치적 이념보다 종교 문화가 중심이 될 것
다종교 문화의 영향 증대 타종교 가치관 수용해야
■ 참석 : 김진소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장) 심상태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강인철 교수(한신대학교 종교학과)
■ 사회 : 노길명 교수(고려대학교 인문대학장·인문정보대학원장)
대희년의 의미와 생활화
사회 : 오늘의 주제를 다루기에 앞서, 「대희년」을 맞아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대희년의 정신을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희년의 의미와 그것을 생활화시키는 방법에 관해 두 분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김진소 신부 : 희년의 개념이나 역사적 배경 그리고 희년의 정신을 우리 문화권과는 생소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나 성서를 들어 설명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도록 우리 문화와 역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우리가 희년의 정신을 자신의 삶과 연결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다. 교우들은 자기 재산을 본래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존속되었죠. 그런 면에서 대희년 정신을 생활화하는 방법은 각 교회는 교회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이러한 신앙선조들의 모범을 각자의 처지대로 실천하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상태 신부 : 한국교회는 대희년의 본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교회 안에서 과도한 부채에 짓눌려 있는 빈약한 농어촌과 빈민지역 교회를 범교회적으로 지원하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는 한편, 교회 밖 일반 농어촌 주민들이나 도시 영세민의 부채를 부분 내지 전액 탕감하기 위해 효과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경제정의실천연합이나 참여연대 등 비정부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사회 소외 계층들이 대희년의 기쁨을 피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노력하여 대희년이 교회와 신자들의 좥집안잔치좦로만 그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약소한 빈국들의 부채를 탕감키 위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우리 교회도 이같은 연대활동에 참가, 빈국 들이 새 희망을 가지고 새 천년기를 맞도록 한다면 대희년에 바르게 기여한다고 하겠습니다.
정보화·지구화의 도전
사회 : 이제, 오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여러 변화의 모습들은 우리의 의식과 삶을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꾸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가운데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정보화와 지구화(地球化, globalization)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는 하나의 정보망 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에 따라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또한 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전 세계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세속적인 삶 뿐 아니라 신앙 생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도전일 수 있습니다. 정보화와 지구화가 한국교회에 가하는 도전들은 무엇이고 교회로서는 그러한 도전들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강인철 교수 : 정보사회의 커다란 특징중 하나가 정보의 대중화를 통해 탈중앙 집중화를 촉진하는 것이므로, 중앙집중적인 사목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분권화로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정보화의 엄청난 좥속도좦 역시 관료화의 정도가 심한 편인 가톨릭교회의 느린 변화에 도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교회는 좥가상공동체좦를 통해 진행되고 있는 관심사별, 기능별 새로운 공동체 형성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에 대한 교회의 대응은 정보화와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가운데, 정보사회에 대한 가톨릭의 윤리적 지침을 마련하는 것에서 우선적으로 개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심상태 신부 : 현재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와 지구화 과정은 재래 시공간 개념을 뿌리 부터 뒤흔들면서 한국교회가 조속히 쇄신을 이룩하도록 도전을 가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일 생활권 으로 변화한 지구촌 안에서 누구나 모든 정보를 동시적으로 공유하게 되는 수평화되고 개방화된 세계 질서안에서 주요 정책과 입장이 베일에 가려진 채 소수 지도층에 의해서 독점적으로 결정되고 대다수 성원들이 국외자로 머물게 되는 중세기적 교회질서는 필경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붕괴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교회가 시대적 과업인 「새복음화」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교회 구조의 수평화와 개방화를 이룩하고자 진실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수많은 정보들이 넘치고 지구가 하나의 생활공간으로 좁혀지는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정보와 가치들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에 예전에는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것들의 의미가 약화 되기 쉽습니다.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인 안정과 평화에만 관심을 가지려는 경향이 늘어나는 것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관심의 초점이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만의 세계로 좁혀지게 된다는 말씀 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종교의 모습도 바뀌기 쉽습니다. 교회나 사찰 같은 물리적 시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교계제도, 미사 같은 집단적인 예배의식처럼 눈에 보이는 종교들이 쇠퇴 하고, 그대신 정신적 또는 영적인 체험과 기쁨을 갖게 하는 소위 좥보이지 않는 종교좦들이 급증하게 됩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뉴 에이지운동이나, 우리 사회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는 기공·단전·초월·명상 등과 같은 비술(秘術)이나 영술(靈術)은 종교문화의 흐름이 근원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정보화가 수반하는 이러한 현상에 관해서 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강인철 교수 :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는 정보화와도 연관이 됩니다만 세계적 으로 조직적 구속을 싫어하는 추세 속에서 더욱 그런 양상이 부추겨진다고 봅니다. 강한 충성과 소속감을 요구하는 교회가 과연 이런 경향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로부터 오는 도전은 어떻게 감당 해낼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비교적 젊은층이 이같은 흐름에 매료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교회안에서 청년들은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렇게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고 구속도 약하고 개인주의적인 종교에 심취하고 있는 상황은 교회에 상당히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심상태 신부 : 저는 정보화 지구화 흐름등을 포함, 현대 사회로부터 가해지는 영신적 성격의 도전이 일정 기간동안 가톨릭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강박사님 지적대로 부정적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그에 대한 대응책을 신속 하게 모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정통교리에 대한 고백, 공동성사 생활의 참여, 교도권 지침에 대한 순응생활로 교회생활을 하도록 역설해 왔는데 이러한 신앙생활은 신자들로 하여금 피동적으로 살도록 하고 신앙생활의 깊이도 결여된 채 미숙한 처지에 머물도록 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사이버세대의 젊은이들은 갖가지 정보와 대면하고 있고 교회에서 맛볼 수 없던 정신적이거나 영신적인 갈망에 대한 충족을 사이버 공간 안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리 교회는 개인들의 영신적 갈망에 부응하는 묵상 잠심 수행방법 등을 계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신자들 내지 수행자들은 신앙생활 일반과 영적 체험의 진실성 내지 깊이를 스스로 확인하면서 신앙생활의 기쁨도 느끼고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할 통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여깁니다. 지금까지의 관행으로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키 힘들고 유배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복음과 전통문화의 만남
사회 : 정보화와 지구화의 물결은 문화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현상들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학자들은 동서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부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종교를 비롯한 문화가 세계사의 흐름을 좌우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는 이제 단순한 생활 양식의 차원을 넘어, 중요한 사회적 생산 수단이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화의 중요성과 함께, 복음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어떻게 만나야 하며 또한 바람직한 문화 창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톨릭 신앙이 우리의 전통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 만남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심상태 신부 : 가톨릭신앙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되 신앙의 주체인 「하느님 백성」은 특정문화에 고착된 집단이 아니라 역사 과정 안에서 새로운 민족의 편입을 통하여 새롭게 형성되는 열려진 문화를 창출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신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한국 내지 동아시아 전통문화와 접촉할 수 있고 또 그로써 교회와 전통문화가 함께 풍요로워집니다. 가톨릭신앙과 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함께 드러나 하느님 나라의 실상을 보다 풍요롭고 심도있게 드러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김진소 신부: 한국교회사를 볼 때 천주교회와 전통문화와의 만남은 적응과 충돌로 나타났습니다. 그 예가 유교와 무속과의 만남입니다. 천주교가 유교로부터 탄압 받은 1차적인 이유는 천주교가 제시하는 인간관 가치관 세계관과의 충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교의 교리와 천주교의 교리가 서로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이었음에도 천주교는 유교의 대표적인 사상인 효 사상을 발견하고 수용하여 상보적 기능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속을 미신으로 단정하였지만 무속에서 원천 출생 기원이라는 뜻을 가진 본향을 천당으로 이해하여 「우리 천당 찾아가세」하지 않고 「우리 본향 찾아가세」하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속의 특징이 죽은 영혼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는 「죄가운데 죽은 영혼 어찌하면 해원할고」하고 무속의 해원사상을 고해성사의 이해에서 차용하였습니다.
사회 : 복음과 전통문화간의 만남은 복음의 측면에서 전통문화를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 한국의 문화 풍토와 역사체험에서 복음이 갖는 의미를 검토할 때에 비로소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상태 신부 : 하느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인간이 구원되기를 바라시기에 인간들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 속에서 그분의 은총의 결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실들은 문화의 상이성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서양문화안에서 형성된 가톨릭신앙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다른 세계 속에서 드러나는 은총의 결실들을 겸허한 자세로 익히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다 성숙하고 깊이있는 단계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진소 신부 : 저는 순교신심 안에서 그 문제를 조망해 보고 싶습니다. 전주교구 부부동정 순교자 유요한 이누갈다의 경우 어찌보면 「고행주의」 「금욕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불교용어인 「해탈」, 도교의 「무위사상」으로 설명했을 때 신자들이 보다 쉽게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사회 속에 현존하는 다종교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일상 생활에 알게모르게 습합되고 표현됩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가치관 같은 것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수용태세가 주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물결의 대안
사회 : 새로운 세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나타난 또 하나의 중요한 현상은 이윤 추구와 자유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인 금융 자본과 지배 세력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만들어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도 좥IMF 사태좦를 겪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 특히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에게는 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이 적지 않은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국제 질서의 변화에 대해 교회는 복음적 시각에서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에 대한 교회의 입장과 사목적 대안 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인철 교수 : 우리는 지금 효율과 경쟁을 숭배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인도하는 빈곤의 세계화냐, 혹은 좥세계 공동선좦의 구현을 지향하는 연대와 공존, 형제애의 세계화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공동선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는 좥시장의 우상좦에 맞서 가톨릭 경제윤리를 재정립하고 이를 신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동시에 지난 수세기 동안 교회가 구축한 지구적 네트워크를 지혜롭게 활용하여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을 완화하기 위해 초지역적인 교회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심상태 신부 :소유의 극대화를 추구함으로써 물신숭배를 조장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하고 생태계 위기를 촉발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은 교회가 추구하는 복음화 입장과는 분명히 대치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자신의 범세계적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윤의 일부를 공동선 증진과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는 나눔을 목표로 재생산에 투자하는 「아가페적 나눔의 기업질서」의 도입 내지 확립을 도모하는데 진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대안적 시장질서 구축에 성공한다면 사회와 세계 복음화에 결정적 기여를 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겠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
사회 : 새 세기 한국교회가 짚어가야 할 하나의 과제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관한 교회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민족 분단이라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 채 새로운 세기를 맞았습니다. 최근, 민족의 분단과 대립이 이와 같이 심화된 것에는 우리 교회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교회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인철 교수 :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문제는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두가지 큰 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교회가 민족통일에 대해 기여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된 교회의 재일치를 이루는 문제입니다. 먼저 교회의 재일치와 관련해서, 북한 신자들은 모두 허위 혹은 사이비 라는 남한 신자들의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 신자들의 고난에 찬 생생한 체험담에 기초하여 북한교회사를 재정리하고 이를 남쪽 신자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인도적인 차원의 대북 원조를 북한 가톨릭단체를 채널로 행한다면, 남북 신자 사이의 신뢰 구축과 함께 북한 신자들의 사회적 위상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에게 가톨릭 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어 장차 본격적인 선교가 가능해질 때 유리한 사회적 기초를 쌓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와 해결책
사회 : 한국교회가 자신의 고유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상 흐름에 대한 진단과 대응 뿐 아니라, 교회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 중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은 무엇인 지에 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김진소 신부 :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서양교회 종속화 현상을 탈피하는 것이고 또 하 나는 권위주의 청산입니다. 특별히 권위주의 청산에 대해 강조하고 싶어요. 이것은 가장 시대에 역행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느 조직이든 권위주의가 강화돼 있고 엄존해 있을 때 봉사하는 모습을 찾기 는 어렵습니다. 교회 내 권위주의가 위험한 것은, 권위주의에 억눌려 신자들이 자기 삶에 보람을 주는 모습으로써 신앙을 찾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고 교회안에 깊이 참여해서 봉사할 수 있는 공간도 제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발성 자의성의 가능성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구태 의연한 상황에서 과거를 답습하는 것도 바로 이 권위주의 탓입니다.
사회 : 최근 실시된 여러 사회조사 결과들을 보면, 신자들이 교회에 대해 갖는 불만으로 「성직자들의 지나친 권위주의」가 높게 지적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행정가나 교육가로서의 사제」보다는 「기도하고 봉사하는 사제」를 바라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50~60년대에도 성직자들의 권위는 대단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신자들이 평소 시간에도 성당에서 장궤틀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성당 마당에서 경본을 읽는 신부님들의 모습을 신자들이 자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들의 권위는 성직자 자신보다도 신자들에 의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심상태 신부 :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는 영성빈곤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청정하고 심도깊은 영신적 삶을 교회안에서 추구하려는 뭇 구도자들이 못내 아쉬워하는 부분이 바로 교회 지도층의 영성빈곤이라고 자인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자들이나 구도적 예비신자들은 삭막하고 혼탁하며 살벌하기까지 한 사회생활에 지치고 시달린 나머지 교회 안에서 대조적으로 온아하고 청정 하며 화목한 분위기를 맛보고 위로와 의지를 찾고자 하는데, 바로 사회에서 염증을 느낄 정도로 늘상 부딛치기 때문에 교회안에서 만이라도 피하고자 했던 같은 부류의 인간상을 대하고는 실망하고 되돌 아서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입니다. 영성에 대한 갈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현대인들의 갈망에 부응하기 위하여 교회 지도층들이 현세적 권력층이나 지도층들에게서 느끼는 권위주의적 자세를 탈피하여 초탈한 영성적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도록 관리자로서가 아니라 수행자적 복음의 증거자로 살아가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강인철 교수 : 저는 그같은 영성빈곤을 물량주의 성장지상주의적 사고방식과 연결해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당 신축붐과 신자증가 운동의 바탕에 물량주의나 성장 제일주의적 사고 방식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됩니다. 성당 신축붐은 본당 소형화를 통해 비대화되고 관료화 된 본당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저변에 제도의 양적인 확대와 신자수의 증가를 교회발전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물량주의적 사고 방식이 깔려 있지 않은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들의 의식과 행동
사회 : 교회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교회의 구조적 측면 뿐 아니라 신자들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 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동안 교회 안팎에서 연구된 조사 결과들을 보면, 우리 신자들은 종교 의식과 신앙 생활간에 상당한 괴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과 그에 대한 치유 방안은 무엇인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인철 교수 : 가톨릭교회의 윤리 규범이 실생활이나 사회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교회의 지침이 지나치게 모호하거나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들을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주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는 평신도 지도자들, 사회 봉사 투자에 인색한 본당, 입시철이면 수험생과 부모들의 기복적인 신앙을 부추기는 관행, 일부 사제 들의 귀족적인 생활 등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자세나 교회 관행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부터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김진소 신부 : 사회적으로 말한다면 좥철학의 빈곤좦현상으로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깊이가 없다는 것은 연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 안에서 연구단체는 교회에 도움도 되지 못하고 소비단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너무 전례 중심적이라는 것이죠. 전례에 중심을 두다보니 성당이 웅장해지고 화려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우리들이 복음에 젖어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복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근본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지만 늘 복음의 말씀을 생활에 반추하고 사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심상태 신부 : 저는 신앙과 삶의 괴리 원인을 좥서양 교회적인 생활양식의 고수 현상좦에서 찾고 싶 습니다. 서양인들은 합리적인 생활양식에 젖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지성적인 의식보다 정감적 직관적 체험이 삶에서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는 지성을 겨냥한 교리교육 성사생활 영위 교회지침의 순응 형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내용의 진실성을 지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정감적 직관적으로 좥아니다좦 싶을 때 자신의 판단에 따른 삶을 살고 여기서 종교의식 내지 신앙의식과 실천적 삶의 괴리가 생긴 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세계 속 한국교회의 역할
사회 : 한국교회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교회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성장을 보였 다는 것은 세계교회 안에서 담당해야 할 책무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황님께서도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한국교회가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해 줄 것을 당부하신 것 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세계교회를 위해 한국교회가 담당해야할 과제와 그 구체적인 방안에 관해 심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심상태 신부 : 한국교회는 제삼천년기에 한국사회의 복음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복음화와 세계 교회의 활성화에 적극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보편교회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온 구미 교회들이 60년대 이래 쇠퇴 기미를 완연히 드러내어 더 이상 주도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대륙에서 유일 하게 안정적 여건에 처해있는 한국교회는 아시아와 세계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다른 아시아 교회들 과의 연대를 도모하는 한편 한국인 내지 아시아인 특유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실정에 적합한 사상, 전례, 공동체와 사목모델 등을 정립함으로써 한국교회의 질적 성숙을 도모하고 아울러 아시아 복음 화와 세계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야할 역사적 과업을 부여받고 있다고 역설하고 싶습니다.
김진소 신부 : 한국교회가 아시아인의 심성 문화와 만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중심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보물처럼 내놓는 것이 순교신심이라고 한다면 이제 그것을 정리 체계화해서 외국에 수출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우리 문화 가치관에서 생성된 순교신심을 다른 교회에 제공할 수 없다면, 우리 순교자들의 정신을 남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이 없으면 습관적 노래로 그치고 말 것 같습니다.
사회 : 21세기는 우리에게 여러 측면에서 도전적인 과제들을 부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에 대해 위기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일깨움으로써 교회의 역동성 과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시대의 징표를 복음 적 시각에서 깨달아 그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느냐 또는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가 이러한 흐름에 적절히 대처한다면, 지난 세기에 이루었던 성장과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귀한 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희년의 은총과 평화가 새해 내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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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