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는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에서 『묵주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찬미』이고, 『묵주기도 야말로 순수한 기도요 그 내용은 오로지 성서적이며, 구원의 역사에서 성모님이 하시는 여러 가지 역할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였다(46항). 즉, 묵주기도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모 마리아와 함께 묵상하는 것이다.
이러한 묵주기도 신심은 1830년 이후 성모 마리아가 발현해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호소하면서부터 더욱 가속화됐다. 세계 성모 발현지 가운데 특히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한 곳은 프랑스 루르드와 포르투갈 파티마다. 1858년 루르드에서 발현했을 때, 성모 마리아는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 으로 베르나데트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또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자신을「로사리오의 여왕」이라 밝히고 매일 묵주기도를 15단씩 바치면 전쟁이 끝나고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총 6번의 발현 중 세 번째 발현 때는 각 단을 바친 후 '구원을 비는 기도' 를 할 것을 지시했으며, 마지막 발현에서는 자신을「묵주기도의 어머니」라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역대 교황 가운데 레오 13세는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하였고, 비오 10세도 『묵주기도처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은 한국 초기교회에서도 볼 수 있다. 1801년 순교한 홍낙민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가 매일 묵주기도를 열렬히 바침으로써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얻어 처음에 배교했다가 마침내 순교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또 달레의「한국천주교회사」는 성 김대건 신부가 중국서 귀국할 당시 풍랑을 만났으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함으로써 구원을 얻었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김신부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선교사들이 조각배를 타고 황해를 건널 때 성모 마리아께 전구했으며 뱃길의 위험 뿐 아니라 그후 박해의 위험도 여러 차례 모면했다고 전한다.
초기 한국교회의 이러한 묵주기도에 대한 깊은 신심으로 교우들은 매일 묵주기도를 5단씩 바쳤고, 주일이면 15단씩 바치는 것이 일상화됐었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1841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교회 새 주보로 모시게 된 것도 이러한 초기교회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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