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 조금만 더…』
『자, 이번엔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좋아요』
매일 아침 9시, 성모병원 재활의학과 재활치료실은 간절함이 배인 목소리로 새로운 하루의 장을 연다.
재활치료실 문을 들어서는 이들의 얼굴은 가지각색, 그러나 환자들 저마다의 눈은 미래에 열려있는 듯 결연함마저 느껴진다.가족들과 재활치료실에서 지내다시피 하며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있는 이영순(가명여45)씨, 지난해 여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한달간이나 의식을 찾지 못했다는 그는 지금 휠체어 신세를 지는 형편이지만 이제 가족들의 웃음을 되찾아 주고 있다.
『의식도 없이 꼼짝도 못했다는데 이만큼 나은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해요. 힘들어도 새 생명을 덤으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야지요』
요즘 들어 보행연습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김경환(가명·남·39)씨 얼굴에서는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다리 건설공사를 하다 5m 아래로 추락해 하반신이 마비된 그는 「장하지 보조기」와 「보행기」 등에 의지해 힘든 걸음을 떼면서도 농담을 던질 만큼 정신적으로 회복한 상태다.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재활치료실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걱정에 묻혀 살다시피 하던 가족들에게 오히려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활치료실은 환자들과 그 가족에겐 새로남의 장, 새 생명을 찾는 오아시스가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세계 병자의 날을 맞아 『질병이 인간을 공동체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라면, 치유는 그가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되찾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 말은 치료실의 환자들을 통해 더욱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이끈다.
지난 87년부터 환자들의 재활치료에 몸담아 온 성모병원 재활의학과장 문정림(루시아·여의도본당) 교수는 환자의 의지와 가족들의 지지, 그리고 사회의 관심과 배려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참다운 재활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재활의 학계에서는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이 부딪치는 첫 번째 벽은 가족이라고 지적한다.
태어난 지 채 3개월도 안된 아이가 소아마비라는 사실을 알릴 때 실망하는 아이들의 부모, 이제는 두발로 걷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 환자보다 더 크게 좌절하는 가족…. 재활의학 전문의들은 이런 가족들의 모습이 환자들의 재활 의지를 꺾어놓을 수 있다고 밝힌다.
다른 병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재활의학의 경우 가족들이 환자의 현실을 빨리 인정하고 재활치료를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환자의 남은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다른 치료과정에 비해 특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재활치료를 맡으며 환자의 가족이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에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문교수는 우울해 하거나 지치지 않는 긍정적인 사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환자, 그리고 그의 가족들을 하느님과 연결시켜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환자를 위한 최대한의 목표를 세울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봉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교수처럼 장애라는 큰 좌절을 맛본 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이들이 지니는 생각은 비슷하다. 교회가 이들의 입장에 한발 더 다가서길 바라는 마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의료계 일각 에서는 실제 위로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자들은 참여할 수도 없는 행사를 만들어 병원 관계자들만 자족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성모병원 원목실장 정동훈 신부는 『하느님의 구원사업 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들에게 보여주셨던 사랑과 열정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겐 많이 부족하다』고 역설한다. 정신부를 비롯한 뜻있는 의료계 인사들은 새로운 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가족과 병원, 지역의 본당이 연계되는 프로그램이 고민돼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실제 의료계 일선현장에서 뛰고 있는 관계자 들은 본당 호스피스와 가정간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환자를 둔 가족만이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게 아니라 지역의 본당공동체와 병원이 함께 나눠져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하느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그 어느 곳에서보다 깊이 되새기게 되는 병원, 이곳에서 묵상하게 되는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 10)는 예수의 말은 하느님께서 약하고 병든 이들을 통해 당신의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드러내신다는 평범한 진리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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