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O본당은 주일이면 하루종일 많은 신자들로 붐빈다. 본당신부의 적극적인 사목 덕분에 신자들은 늘 활기찬 모습으로 웃으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O본당의 이같은 활력은 미사를 통해서 또한번 느낄 수 있다. 주일에는 새벽미사부터 저녁미사 때 까지 내내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O본당의 모든 미사는 각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특성에 따라 고유한 분위기가 두드러지며 신자 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돋보인다. 성가대의 노랫소리 뿐 아니라 신자들의 우렁찬 성가소리는 한층 더 활기를 더하며 일상 생활에서 그 주일의 복음을 묵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본당신부의 강론은 활기찬 미사의 절정을 이룬다. O본당의 미사분위기와 신부의 명강론은 이웃본당신자들까지 찾을 정도로 소문이 나있다. 미사를 봉헌하는 데 있어서 성체를 모시는 것만큼 말씀의 전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신자들은 ㄱ신부의 강론을 통해서 깨닫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같은 미사 중에도 이같은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활기찬 분위기와는 달리 전혀 다른 태도로 임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발견된다. 미사가 시작된 후 삼삼오오 느즈막히 짝을 지어 들어와 맨 뒷좌석을 메우는 신자들. 앞좌석 분위기와는 달리 미사에 임하는 신자 들의 각양각색의 모습들이 눈에 띈다. 뒷좌석 한켠에 조용히 앉은 30대 중반의 한 신자는 신부의 강론을 경청하는 대신 주보를 열심히 본다. 독서부터 복음, 강론, 게시판 등 주보에 실린 이런저런 소식들까지 꼼꼼 하게 챙겨 읽는다. 늦게 들어와 복음과 강론을 처음부터 제대로 듣지못해 그냥 주보를 보면서 강론을 대신한다. 앞자리에 앉은 신자들과 공감대를 같이하기에는 ㄱ신부의 강론을 많이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미사가 시작된 지 20여분쯤 됐을까. 부부 한쌍이 느즈막히 입장함이 쑥스러운지 고개를 숙이며 들어와 출입문 근처 쪽에 자리를 잡는다. 이들은 자리가 없자 성당바닥에 주보를 깔고서는 그냥 앉는다. 그런 후 잠시도 쉬지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독서는 이미 듣지도 못했고 강론은 이들 부부의 관심 밖이다. 이웃본당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듣는 ㄱ신부의 강론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전혀 마음에 와 닿질 않는다. 이 부부가 소곤대는 소리에 분심이 든 옆자리에 앉은 신자가 눈길을 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잡담을 한다. 작은 목소리로 떠드는 이정도 소리쯤은 큰 피해를 주지도 않을뿐더러 신부님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론대에 서면 귀를 기울이는 신자들부터 주보를 보는 신자들, 졸고 있는 신자들 모습까지 훤히 보인다는 ㄱ신부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신앙 생활과 미사전례에 잘 참례하고 있지만 이런 소수의 신자들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해도 힘이 쭉 빠진다』고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ㄱ신부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 중 또 하나는 매일 미사 30분전에 성당에 도착해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할머니가 미사 내내 묵주알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할머니들에게는 미사전례에 대해 열번 스무번 설명을 해도 쉽게 수긍을 하지 않는다. 강론이 끝난 후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자 20대의 신자 2명이 출입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온다. 이들은 뒷줄에 서있는 사람들 틈에 잠깐 서있 다가 성체만 영하고선 다시 나간다. 왜 늦었냐는 물음에 김다니엘라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서 『이렇게 성체만이라도 모셨으니 이로써 미사는 드린 셈』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사실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부담스럽고 시간 내기가 힘들어 이런 식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미사가 끝날무렵 마침강복 전 공지시간. 이번주에는 유난히 전달할 사항이 많아 ㄱ신부가 미리 신자들에게 양해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3분쯤 지났 을까. 맨뒷좌석에 앉은 신자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때문에 뒷좌석에 남은 사람들조차 분위기가 흐트러진다. 매번 미사 때마다 휴대전화를 꺼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공지를 마침과 동시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퍼졌다. 빽빽하게 자리를 채웠던 신자들의 일부가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빠져나가고 전화벨소리까지 울리자 뒷자리에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미사를 봉헌하던 신자들은 끝내 눈살을 찌푸리고 만다.
『5분만 참으면 되는데 요즘 신자들이 그걸 못 참는다』며 할머니들은 젊은이들이 조금만 인내를 가지고 미사시간 만큼은 한주일을 봉헌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일찍부터 나와서 미사준비를 하며 한결같은 모습으로 봉헌하는 신자들이 뒷자리에 앉았다가 이같은 언짢은 기분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제인 ㄱ신부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ㄱ신부는 『이처럼 흐트러진 자세로 미사에 임하는 것을 볼 때 사목자로서 적지않은 책임을 느낀다』면서 『신자들이 조금만 더 관심과 성의를 갖고 미사참례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당연한 일을 새삼스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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